▲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소헌)

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 2014나11910 해고무효확인 등

1. 사건의 개요

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노동조합)는 2012년 1월30일부터 2012년 7월17일까지 170일에 걸쳐 공정방송과 제작 자율성 회복을 목적으로 파업을 했다.
나. 사측은 파업이 당시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목적으로 한 불법파업이라고 하면서 정영하 본부장 등 6명을 해고하고, 38명에 대해 정직 이상의 중징계를 했다.
다. 징계를 받은 정영하 외 43명은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14년 1월17일 이 사건 파업은 정당한 쟁의행위이므로 사측의 징계는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2가합16200 판결).
라. 사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서울고등법원에서 심리가 이뤄졌다.

2. 2심 법원의 판단

2심 법원은 2015년 4월29일 1심 판결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파업의 정당성을 재차 확인하면서 사측의 항소를 기각했는데 그 핵심은 다음과 같다(서울고등법원 2015.4.29 선고 2014나11910 판결).

가. 노동조합이 이 사건 파업에 이른 주된 목적은 김재철 사장이라는 특정한 경영자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받고자 하는 데 있고, 그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방송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조치를 약속하고도 이를 지키지 않고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김재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그러므로 이 사건 파업의 주된 목적은 방송의 공정성 보장에 있다고 할 것이다.

나. 공정방송의 의무는 방송법 등 관계법규 및 피고(MBC) 단체협약에 의해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 할 것이어서,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의 마련과 그 준수 또한 교섭 여부가 근로관계의 자율성에 맡겨진 사항이 아니라 사용자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0조에 따라 단체교섭의 의무를 지는 사항(이른바 의무적 교섭사항)이라 할 것이다.

다. 기존에 합의된 단체협약을 사용자가 지키지 않는 경우 그 준수를 요구하기 위한 행위는 단순히 기존의 단체협약의 해석·적용에 관한 사항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협약의 이행을 실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것으로서 어디까지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쟁의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라. 피고(MBC)는 방송법 등의 관계법령 및 단체협약에 의해 인정된 공정방송의 의무를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그 구성원인 근로자의 구체적인 근로환경 또는 근로조건을 악화시켰다 할 것이므로, 원고들을 비롯한 피고의 근로자들은 그 시정을 구하기 위한 쟁의행위에 나아갈 수 있다.

3. 평석

가. 공정방송은 MBC 구성원의 근로조건

방송법 제4조제1항은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은 보장된다”고 하면서 제4항에서 “종합편성 또는 보도에 관한 전문편성을 행하는 방송사업자는 방송프로그램 제작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취재 및 제작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 방송편성규약을 제정하고 이를 공표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MBC 단체협약 제20조는 “회사와 조합은 국민의 알 권리의 충족과 문화수준의 질적 향상을 위한 공정방송 실현에 최선을 다한다”고 정하고 있고, 제21조는 “회사와 조합은 공정방송을 저해하는 내·외의 어떠한 압력이나 간섭을 배제하고 방송의 독립을 지킨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공정방송은 추상적 구호가 아니라, 방송법과 단체협약으로 노사 양측에 요구되는 의무임과 동시에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다. 1심 판결에 이어 2심에서도 ‘공정방송은 MBC 구성원들의 근로관계의 기초를 형성하는 원칙’이라는 점을 재차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번 2심 판결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나. 방송의 공정성 보장이 쟁의행위의 목적이 될 수 있는지

2심 판결은 방송의 공정성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단순히 추상적으로 방송의 공정성이 의심된다는 사정만으로 쟁의행위를 할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방송의 제작·편성·보도 등 구체적인 업무수행 과정에서 방송의 공정성을 실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실제적으로 근로환경 내지 근로조건 등에 영향을 미치게 됐다면,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하고 쟁의행위에 나아가는 것은 정당한 쟁의행위라고 판시했다. 실제로 이번 사건에서는 사측의 공정방송 훼손으로 MBC 구성원들의 근로조건이 얼마나 심각하게 침해됐는지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사측의 극소수 경영진의 지시로 수많은 방송 아이템들이 거부된 사실, 이에 맞서던 PD들이 비제작부서로 전보된 사실, 시민들에게 외면받던 MBC 기자들의 자괴감, 그 과정에서 기자와 PD들이 우울증 등을 앓는 등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실 등을 구체적인 증거로 입증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2심 판결은 ‘사실을 이기는 주장은 없다’는 원칙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의의가 있다.

다. 단체협약 준수와 근로조건

대법원은 단체협약의 유효기간 중 그 개폐를 요구하는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평화의무를 인정하고 있다(대법원 1992.9.1 선고 92누7733 판결 참조). 그런데 반대로 단체협약의 준수를 촉구하는 쟁의행위는 단체협약의 해석·적용에 관한 ‘권리분쟁’으로 쟁의행위의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견해가 있다. 권리분쟁은 노동위원회·법원 등 법적 구제절차를 이용해야지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견해에 의하면 단체협약 개정 요구도(평화의무 위반), 기존 단체협약의 이행 요구도(권리분쟁) 쟁의행위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기묘한 결과에 이르게 된다. 이번 2심 판결은 1심과 마찬가지로 기존에 합의된 단체협약을 사용자가 지키지 않는 경우 그 준수를 요구하기 위한 행위는 단체협약의 이행을 실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위한 것으로서 어디까지나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을 목적으로 한 정당한 쟁의행위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용자가 기존의 단체협약을 이행하지 않아 저해된 근로조건을 원상으로 회복하기 위한 쟁의행위는 헌법 제33조제1항이 보장한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단체행동권’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4. 결 론

이번 판결은 공정방송이 추상적 구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방송인들의 기본적인 근로조건으로서 사용자가 이를 침해할 경우 공정방송 회복을 위한 파업은 정당한 쟁의행위라는 점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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