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우리 헌법은 비교적 ‘잘 만든’ 헌법에 속한다. 제헌국회는 불과 47일 만에 미국·프랑스 등의 정치적 자유주의헌법과 노동계급 중심의 소비에트헌법, 사회국가 원리를 천명한 독일 바이마르헌법 등 전 시대 입헌주의 성과물을 모두 반영한 헌법을 공포했다. 이후 우리 헌법은 국가현실과 무관하게 다른 나라의 좋다는 제도는 죄다 가져다 쓰는 법률시장의 아나바다운동에 앞장서 왔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법정에서 서로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저마다의 헌법상 근거를 동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 헌법 제21조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 헌법 제33조 ①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하여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위에서 보듯이 우리 헌법은 ‘언론의 자유’와 ‘노동 3권’을 명시하고 있다. 위 규정들은 어떻게 충돌할 수 있을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사용자는 헌법상 언론의 자유에 의해 자신의 주장을 노동자들에게 펼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사용자 권리라는 측면만을 강조하다 보면 사용자의 우월한 지위와 이에 따른 영향력으로 인해 노조활동은 크게 위축되며, 결국 노동 3권이 침해받게 된다. “헌법에 의한 근로자의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보장해 근로조건의 유지·개선과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 향상을 도모”하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다음과 같이 규율하고 있다.

☞ 노조법 제81조(부당노동행위) 사용자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수 없다.

4.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와 노동조합의 전임자에게 급여를 지원하거나 노동조합의 운영비를 원조하는 행위.

즉 사용자의 선전활동은 그 양태에 따라 노조법상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용자의 발언할 수 있는 자유와 노동 3권을 침해하는 부당노동행위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이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2011도15497)을 살펴보자.

한국철도공사가 전국철도노조와의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이후 단체교섭이 결렬되자 노조는 2010년 5월12일 오전 4시에 파업을 예고했다. 파업 예정일을 하루 앞두고 공사 기술본부장이자 사용자측 A교섭위원이 노동자들을 상대로 직원설명회를 개최하려고 사업소에 도착해 진입을 시도했다. 노조간부들은 A교섭위원이 청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몸으로 가로막는 등의 행위를 했다. 검찰은 "위력으로 업무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기소했다.

1심은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는 취지로, 2심은 A교섭위원의 행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해 업무방해죄의 보호대상이 되는 업무가 아니므로 무죄라고 판결했다. 이처럼 하급심의 결론이 엇갈린 가운데 대법원은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단순히 비판적인 견해를 표명하거나 근로자를 상대로 집단적인 설명회 등을 개최해 회사의 경영상황 및 정책방향 등 입장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행위 또는 비록 파업이 예정된 상황이라 하더라도 그 파업의 정당성과 적법성 여부 및 파업이 회사나 근로자에 미치는 영향 등을 설명하는 행위는 거기에 징계 등 불이익의 위협 또는 이익제공의 약속 등이 포함돼 있거나 다른 지배·개입의 정황 등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해칠 수 있는 요소가 연관돼 있지 않는 한, 사용자에게 노동조합의 조직이나 운영 및 활동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의사가 있다고 가볍게 단정할 것은 아니다”고 하면서 2심을 파기·환송했다.

위 사안은 사용자측이 노조의 쟁의행위 직전에 그 쟁의행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었던 종전 설명회의 연장선상에서 직원설명회를 개최한 것으로 지배·개입의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매우 크다. 다시 말해 파업에 불법성이 명백하지 않은 한 A교섭위원의 설명회 개최는 사실상 파업을 저지하는 결과를 초래해 노조의 운영에 개입하는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있다. 과거 대법원은 노조활동을 위축시키는 경우에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한다고 판시한 바 있는데(97누8076) 이러한 입장에 비춰 볼 때 파업이 임박한 시점에서 사용자의 언론활동은 위축효과를 발생시키기에 충분하다.

추측하건대 위 판결에서 대법원은 파업에 대한 부정적 시각에서 출발해 사용자 언론자유의 한계를 넓게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헌법상 명시된 노동 3권을 주장하면 빨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현실, 노조를 ‘불온한 사람들의 집단’쯤으로 여기는 현실이 대법원에서도 반복되고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되는 대목이다. 경제적·사회적 약자인 노동자들이 인간다운 생활을 향유하기 위해서는 법원이 상식적인 판단을 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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