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한 사람의 노동자가 현장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우리는 경찰청 영양사를 통해 봤다. 2011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현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전의경 급식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초등학생들의 급식비에도 못 미치는 한 끼당 1천940원의 급식비, 그리고 영양사가 배치된 곳이 7.1%에 불과한 전의경 급식 현실이 지적된 것이다. 국회 지적 이후 전의경 급식비는 1천원가량 올랐고, 전국적으로 영양사들이 채용되기 시작했다. 2013년 45명, 지난해에는 48명이 채용됐다.

노동자들은 처음 채용됐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전의경들이 직접 음식을 만들다 보니 식단도 엉망이었고, 식재료를 납품하는 대기업들이 너무 높은 가격으로 납품을 했다. 후드는 청소를 너무 오랫동안 하지 않아 기름이 뚝뚝 떨어졌고, 급식실 타일은 너무 더러워서 보기 힘들었다고 했다. 노동자들은 채용되자마자 급식실 청소부터 했다. 가스레인지를 닦고 후드를 청소하고, 타일도 새로 붙였다. 식재료를 납품하는 곳들과 다시 협상을 해서 납품 가격을 제자리로 돌려놓았고, 식단도 제대로 구성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식사 질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노고는 너무나 쉽게 무시됐다. 경찰청은 2013년 고용된 영양사 44명에게 6월30일자로 해고통보를 했다. 노동자들이 고용된 지 2년째 되는 날이다.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 의하면 노동자들을 ‘기간의 정함이 없는 고용’으로 전환해야 하는 날이다. 경찰청은 노동자들에게 무기계약 전환을 약속했고 노동자들은 그것을 철석같이 믿었다. 그러나 경찰청은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새로 계약직 영양사를 뽑겠다고 한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예산이 없다는 것. 낭비되는 비용을 절감해 급식의 질을 높인 노동자들에게 약간의 수당을 더 주지 않기 위해 해고하는 것이 지금 정부다.

2013년에 들어온 영양사들은 경찰서 한 곳에 상주하더라도 보통 경찰서 세 곳의 급식업무를 맡았다고 한다. 그만큼 영양사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먼 거리로 출장을 가게 됐을 때 당연히 나와야 할 출장비도 어느 때부터인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한 달에 120만원도 안 되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하나씩 바뀌는 급식 현실을 보면서 '무기계약으로 전환되고 이 일을 계속 하다 보면 더 질 높은 식단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컸다고 한다. 그러나 열악한 노동조건을 참고 견딘 것이 오히려 문제였다. 경찰청은 그런 노동조건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했다.

기업과 정부는 늘 ‘효율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효율성은 ‘사람’에게 쓰기에는 좋은 언어가 아니다. 복사용지를 줄일 수 있고, 종이컵을 줄일 수는 있다. 비용절감이 중요할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은, 노동자는, 단순히 비용으로 계산되는 존재가 아니다. 아무리 노동자들의 업무를 표준하고 마치 기계처럼 만들어 버린다 해도 노동자는 기계가 될 수 없다. 노동자 하나하나가, 혹은 노동자들의 관계가, 노동자들의 자부심이 기업과 정부조직을 변화시키고 분위기를 바꾼다. 회사와 정부조직을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만들고, 불합리를 없앨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노동자들을 단지 비용으로만 간주해 쉽게 쓰고 쉽게 내다 버리면 그것은 고스란히 기업과 정부조직에 문제로 돌아온다. 경찰청 영양사들이 이렇게 버려지면, 영양사들은 더 이상 최선을 다하기 어려워진다. 식재료를 납품하는 대기업들과 제대로 단가협상을 하기 어렵고, 전의경 짬장들과 기싸움을 해 가며 질 좋은 식단을 만들기도 어려울 것이다. 경찰청이라는 정부조직이 예산을 핑계로 노동자들이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망가뜨리고 있다. 굳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2년 이상 일한 기간제의 정규직 전환 조항을 들이밀지 않더라도 그 업무가 상시적이고 필요한 일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안정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다. 경찰청은 더 이상 예산 핑계 대지 말고 영양사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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