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유리 <검은 미술관> 저자
어느 날 갑자기, 캐롤 앤 라우리(Carol Ann Lowry)는 영국에서 존경받고 인기 있는 유명화가 L.S. 라우리(Laurence Stephen Lowry, 1887~1976)의 상속인이 돼 있었다. 캐롤은 의아했다. 성이 같긴 했지만, 사실 캐롤은 화가 라우리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우리가 살아있을 때, 바로 그 ‘성이 같다는 이유’로 캐롤은 그와 친해질 수 있었다. 무려 57세나 연상이었지만, 라우리는 캐롤과 발레를 함께 보러 다니는 ‘친구’였고, 수녀원 학교의 학비를 대신 내주는 ‘후원자’였으며, 애칭을 부를 수 있는(Uncle Laurie) 다정한 ‘삼촌’이었다. 그랬던 그는 캐롤에게 전 재산을 남겼고 캐롤은 라우리의 유산 집행인으로부터 고인의 집에서 발견된 몇 가지 물건을 확인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얼마 뒤 라우리의 미공개 유작을 본 캐롤은 순간 자기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작품들은 라우리의 평소 작품들과 너무나 달랐다. 그림 속에는 소녀들이 있었다. 그녀들은 마치 좁은 튜브 같은 옷으로 쥐어짠 것처럼 위태롭게 서 있었다. 기괴한 하이힐을 신은 채 높고 타이트한 칼라 때문에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는, 마치 마리오네트 같은 소녀들…. 심지어 단두대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어져 눈물을 흘리고 있는 소녀와 채찍을 든 채 웃고 있는 사람을 묘사한 그림도 있었다. 이 소름 끼치는 연작을 눈살을 찌푸리며 훑어보던 캐롤은 한순간 오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림 속 소녀가 캐롤처럼 작고 살짝 올라간 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캐롤은 외쳤다. “맙소사, 이건 나야. 이 그림들은 나야!”

사랑받지 못한 아이, L.S. 라우리

L.S.라우리는 1887년 영국 맨체스터 교외 스트랫퍼드에서 독자로 태어났다. 하지만 라우리는 부모에게 사랑받은 자식은 아니었다고 전해진다. 라우리의 어머니는 세 딸을 둔 자신의 여동생에게 “한 명의 어설픈 소년 대신 세 명의 화려한 딸을 얻었네”라고 부러워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 ‘어설픈 소년’은 바로 자신의 아들 라우리였다. 애정 없이 길러져서 어설퍼졌는지, 아니면 정말 어설펐기에 부모에게 사랑을 못 받았는지 선후를 알 수 없지만 여하튼 라우리는 ‘좀 얼이 빠진 듯한 아이’였다고 기록돼 있다. 라우리는 그 어떤 시험에서건 합격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일찍 학교를 그만두고 열여섯 살 때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 라우리는 회계사무소·보험회사 등을 거쳐 부동산 회사에서 집세 수금원으로 무려 42년간 일을 했다. 그러나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고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라우리에게는 미술재능이 있었다. 일과시간을 마친 후에야 아트스쿨 저녁 반에서 그림을 배운 그는 곧 일급 데생 실력을 갖추게 됐다. 그리고 그의 재능은 1917년께 라우리가 30대에 접어들었을 때 꽃피기 시작했다. 바로 우리가 라우리의 작품임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그림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영국 북부 공장지대 풍경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잿빛 스모그에 둘러싸인 거대한 공장건물, 그리고 그 앞을 바쁘게 오가는 군중들….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은 가느다란 인물들은 표정과 개성 없이, 구부정한 모습으로 바쁜 걸음을 옮긴다. 이렇게 라우리는 함께 있지만 고립된 군중들을 성냥개비 인간들(Matchstick men)로 형상화했다. 그렇게 작고 검고 길쭉한 인물들을 20년 동안 줄기차게 그려 내던 그는 마침내 성공에 한발 다가섰다. 1938년께 그림을 액자에 넣기 위해 표구점에 맡긴 라우리의 일부 작품들이 런던의 한 화랑 경영자의 눈에 우연히 들어온 것이다. 그림의 독창성을 알아본 화랑 경영자는 화가가 누구인지 문의한 뒤 전람회를 서둘러 주선했다. 과연 미술품 전문상인의 직감은 정확했다. 전람회를 계기로 그는 서서히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다.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서 20세기 산업화된 환경 속에서 소외된 고독하고도 불안한 군중들을 읽어 냈다. 그는 그렇게 ‘대가’가 됐다.

어머니에게 바쳐진 고독한 제물

하지만 라우리는 명성에도 불구하고 평생 고독했다.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던 그는 “단 한 번도 여자와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하곤 했다. 오직 어머니, 그녀만이 라우리의 삶을 관장하던 ‘여사제’였다. 그리고 라우리는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겼던 어머니에게 인정받고자 중년의 나이가 돼서도 몸부림치는, 순응적인 아들이자 제물이었다. 라우리는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오직 어머니에게만 의미가 있다”는 말을 평생 반복하곤 했다. 1932년 아버지가 빚을 남기고 죽자 어머니는 바로 침대에 몸져누워 버렸다.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자신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심기증(心氣症) 상태에 빠진 것이다. 그녀는 1939년 그다지 큰 고통도 없이 천수를 누리고 83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줄곧 침대에 붙어 아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라우리는 불평하지 않았다. 낮에는 생계를 위해 회사에 다니고 퇴근해서는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어머니가 편히 잠든 다음에야 라우리는 붓을 들어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피곤함과 외로움 속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랬던 그에게 어머니의 죽음은 세상의 절반이 없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 다른 이가 들어왔다. 바로 열세 살 소녀 캐롤이었다. 라우리가 일흔 살이 됐을 때인 1957년 캐롤은 유명한 노화가에게 팬레터를 보내 "어떻게 하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다. 라우리는 처음 이 편지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구겨 버렸지만 한 달 후 우연히 다시 읽게 되면서 캐롤과 극적으로 만나게 된다. 편지를 읽은 라우리가 충동적으로 버스에 올라탔고, 맨체스터 외곽 헤이우드에 있는 캐롤의 집 문간에 예고 없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날부터 70세 노화가와 열세 살 소녀의 기묘하고도 오랜 우정이 시작됐다. 캐롤에게 라우리는 멘토이자 후원자였고 대신 가족도 없는 외톨박이 라우리는 성이 같은 조카딸을 얻었다. 모두의 우려(?)에도 라우리는 20년 동안 매우 올바르게 처신했다. 캐롤은 “라우리 삼촌은 날 한 번도 어린아이라고 무시하지 않았고 마치 어른처럼 대우하며 대등하게 대화했다”고 회상했다. 그랬던 그였기에 캐롤의 충격은 더 컸다. 1976년 88세의 나이로 폐렴으로 죽은 라우리가 캐롤에게 남긴 ‘미공개 그림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캐롤은 이후 이 ‘문제의 유작’들을 공개하며 방송인터뷰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라우리 삼촌은 나를 발레공연에 반복적으로 데려가고 싶어 했다. 당시 나는 궁금했다. 왜 나를 한 번도 아니고 이렇게 자주 발레공연에 데리고 다니나. 발레리나 기계인형처럼 보이는 이 그림 속 소녀처럼, 그는 인형사처럼 나를 조종하고 싶어 했던 것일까?”

그러나 라우리가 자신을 인형처럼 조종하고 싶어 했을지도 모른다는 캐롤의 의심과는 다르게, 오히려 라우리 자신이 사실 ‘어머니의 인형’처럼 살아왔다. 침대에 누워 꾀병을 부리며 인형사처럼 자신을 조종한 어머니에게 그는 철저히 순종적인 인형이었다. 그래서 이 그림들은 한평생 그를 바이스로 죄듯 꽉 움켜잡았던 어머니에게 받은 상처 입은 마음을, 무의식적으로 복수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림 속에서 라우리는 더 이상 ‘어머니의 인형’이 아니라 소녀의 몸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힘센 능력자다. 그 힘과 폭력 앞에서 무기력하게 고개를 떨군 그림 속 소녀는 울고 있다. 이 눈물은 캐롤의 것일까. 아니, 라우리 자신의 눈물이라고 해석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검은 미술관> 저자 (sempre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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