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은 전쟁이다. 법 하나에 정치적 이념은 물론 온갖 현실적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막전막후 벌어지는 일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법치국가에서 법은 그 나라가 추구하는 가치를 대변한다. 국민의 모든 행동을 규율한다. 모두가 법에 웃고 법에 운다.

그런데 법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허술하다. 전쟁에 룰이 없다. 이를 막기 위해 국회법이 있지만 빈틈이 많다. 현실은 주먹구구다. 복수 상임위원회 이해가 걸린 법안이 협의 없이 처리되거나 국회 본회의 통과 직전에 문제제기된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부와 법제사법위원회가 지나친 입김을 행사해 입법취지를 훼손하거나 법안 처리를 막거나 지연시키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본회의 직전 벼락심사로 부실법안을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법이 스스로 품고 있는 영향력에 맞는 권위를 갖추기 위해서는 국회가 법안 심사 과정의 폐단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환노위도 모르는 노동·환경 관계 법

올해 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발칵 뒤집혔다. 지난해 12월 국회 본회의에서 경영지도사 업무범위에 “인사·조직·노무 등에 대한 진단·지도”를 포함시키는 중소기업진흥에 관한 법률(중소기업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해당 개정안은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이채익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11월 발의했다. 법안은 지난해 12월2일 산자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상정됐다. 이후 20여일 만에 일사천리로 국회 최종 문턱을 넘었다.

노동문제에 문외한인 경영지도사가 노무관리를 하게 됐다는 비판이 일었다. 노사관계에 미칠 파장이 큰 내용인데도 환노위 의원들은 법안 통과 과정을 몰랐다.

문제는 이와 같은 웃지 못할 상황이 입법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법사위는 지난달 29일 전체회의를 열고 산자위 이진복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대한 규제특례법(지역특구법) 개정안을 심의·의결했다.

이진복 의원이 지난해 11월 발의한 법안에는 지방자치단체의 특화사업 활성화를 위해 여러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개발면적이 5천제곱미터 이하일 경우 환경영향평가법에 따른 전략환경영향평가를 면제하고, 단지 내 3개 이하 사업장이 공동으로 노동자 안전관리를 하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모두 환경과 노동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법안은 환노위를 피해 갔다. 환노위 야당 의원들은 당일 법사위 전체회의를 통과한 법안을 살펴보다 뒤늦게 문제 법안을 발견했다. 부랴부랴 당시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를 찾아가 본회의 부의를 막아 달라고 요청했다. 현재 여야는 양당 원내대표의 합의에 따라 해당 법안의 본회의 부의를 미루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관 상임위 검토 없이 본회의까지 올라간 법안이 현장에서 반대토론으로 부결된 사례도 있다. 이번에도 산자위와 환노위가 주인공이다.

환노위 소속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13년 6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외국인투자 촉진법 반대토론자로 나섰다. 해당 법안에는 국유재산법 등 7개 법안이 소관하는 국·공유지를 외국인에게 임대·매각할 때 수의계약이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산자위 소속 이강후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개정안에는 7개 법안에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친수구역법)을 추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장 의원은 친수구역법이 4대강 사업의 근거가 된 만큼 개정안이 통과되면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무분별한 외국인 투자가 이뤄져 환경오염이 심해질 것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결국 법안은 부결됐다. 19대 국회 들어 본회의에 부의된 법안이 반대토론으로 부결된 경우는 친수구역법 개정안이 처음이었다. 장 의원에 따르면 해당 법안 역시 환노위와 일체의 교감 없이 본회의에 상정됐다.

장 의원은 “산자위가 기업활동 활성화를 위해 제도를 완화하려는 쪽이라면, 환노위는 규제를 강화하려는 쪽”이라며 “노동이나 환경문제와 깊이 관계된 법안들이 소관 상임위도 모르게 입법 과정을 밟는 것은 큰 문제”라고 비판했다.

법사위 칼질에 '누더기 된' 법안들

깜깜이 입법을 방지하기 위한 조항이 국회법 제83조(관련위원회회부)에 있긴 하다. 국회의장이 소관위원회에 안건을 회부할 때 “다른 위원회 소관사항과 관련이 있다고 인정된 경우” 관련위원회에도 이를 회부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 같은 규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환노위 관계자는 “환노위와 산자위는 정반대 가치로 부딪히는 경우가 많은데도 발의 법안에 대한 중복회부는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며 “의원들이 자신이 소속된 상임위 소관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많아 기계적으로 그쪽에 안건을 회부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여야가 큰 이견 없이 상임위를 통과시킨 법안이 다음 단계에서 행정부나 법사위에 가로막힌 케이스가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의 산재보험 가입을 의무화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이다. 최봉홍 새누리당 의원이 2013년 6월 발의한 법안인데 지난해 4월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이후 총 네 차례 법사위 법안소위에 회부됐지만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대로 법안 처리에 기약이 없는 상황이다.

여당 법사위원들은 특수형태근로종사자 중 보험설계사의 경우 산재에 노출되는 경우가 드물고, 개별가입이 가능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들은 법안 심사 과정에서 산재 의무가입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당사자들의 설문지까지 제시했다. 그런데 국회법은 법사위 역할을 사법기관 소관 법률과 다른 상임위를 통과한 법안에 대한 체계·자구 심사로 한정하고 있다. 법사위가 국회법을 넘어선 월권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환노위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3년 4월 발의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전부개정안(현 화학물질관리법)은 법안심사 과정에서 외부 입김이 작용할 경우 법안이 얼마만큼 누더기가 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한 의원이 발의한 원안에는 영업정지를 갈음할 수 있는 과징금 규모가 '매출액 절반 이상'이었다. 하지만 환노위 심의 과정에서 이 수치가 '매출액 10분의 1 이하'로 줄더니, 법사위를 거쳐 최종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20분의 1 이하'로 다시 반토막 났다.

당시 법안심사 과정을 지켜봤다는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실 관계자는 “경제 5단체가 외부에서 끊임없이 법안 통과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법사위 소속 의원들과 경제부처가 여기에 동조하면서 알맹이가 빠진 채 법안이 통과됐다”고 설명했다.

벼락심사에 숙려기간도 무시

법사위가 월권 논란을 자처하면서도 정작 본연의 역할에는 소홀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른바 본회의와 동시에 전체회의를 열어 부의할 안건을 처리하는 벼락심사가 대표적이다. 법사위는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예정된 이달 6일 100여건의 법안을 심사했다. 이 중 56개 법안이 이렇다 할 검토 없이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최소 숙려기간을 채우지 못한 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는 경우도 잦다. 국회법 제59조(의안의 상정시기)는 “긴급하고 불가피한 사유가 있을 때”를 제외하곤 법안이 각 상임위를 통과한 후 5일이 지나야만 법사위에서 체계·자구심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국회가 이달 12일 본회의에서 처리한 소득세법 개정안도 숙려기간을 거치지 않았다.

이선미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간사는 “현안별 특별위원회를 활성화해 상임위별로 이해관계가 충돌할 만한 법안이나 문제 소지가 있는 법안은 광범위하게 검토하는 관행을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며 “의원들이 실적이나 외부입김에 의해 묻지마 식 입법을 남발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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