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법원은 2014년 11월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했다고 판결했다. 김정욱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대법원 앞에서 눈물을 닦고 있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2009년 정리해고 됐다. 정기훈 기자
마린코리아 해고노동자인 김회욱씨는 요새 아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6일 마린코리아가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뒤 생긴 버릇이다. 지난해 12월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을 때만 해도 그는 금세 복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겼으니 곧 복직하겠네”라며 무덤덤하게 얘기했고 아내도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올해 4월 중앙노동위도 부당해고 판정을 내렸다. 기대는 곧 현실이 될 것 같았다.

"100% 부당해고라고 생각했죠. 노동위원회도 부당해고라고 했으니까. 아내한테 조금만 기다리자고 얘기했어요. 그런데 법원까지 가게 됐으니…. 아내가 좌절하고 실망할까 봐 기다리라는 말이 차마 안 나와요."

얼마 전 김씨는 집을 담보로 수천만원의 대출을 받았다. 둘째 아이가 예정일보다 두 달 먼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다. 폐가 발달하지 못한 상태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지내야 했다. 지난해에는 둘째에게 RS바이러스 예방접종을 했다. 500만원의 목돈이 들었다. 김씨는 “언제 복직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서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하영재 마린코리아노조 위원장은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간다. 해고된 이후 아내 얼굴을 보기가 민망하다. 아내는 대형마트에서 일한다. 350만원 조금 넘는 월급으로 외식도 하고, 애들을 학원에도 보냈다. 하지만 해고되고 나서 삶이 달라졌다. 우선 보험과 적금부터 해약했다. 그는 “마음도 불편하고 움직이면 무조건 돈이 드니까 아예 농성장에서 숙식을 해결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해고된 마린코리아 생산담당 직원은 12명이다. 월 112만원의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버티고 있다. 올해 9월이면 실업급여마저 끊긴다. 지노위와 중노위는 마린코리아의 정리해고가 긴급한 경영상 이유로 인한 정리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마린코리아는 2009년부터 2013년까지 매년 20억원 이상 당기순이익을 냈다. 같은 기간 유동자산이 58억원 증가했다. 정리해고를 할 경영상황은 아니었다는 얘기다. 노조는 법원에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제기할 방침이다. 부당해고 기간에 임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3년 만에 복직했지만 돌아온 건 전환배치·징계

기나긴 소송을 거쳐 복직해도 고난은 계속된다. EG테크가 그렇다. 3년여에 걸친 법적소송 끝에 복직했지만 회사는 이들을 현장에서 고립시키거나 내쫓을 궁리만 했다. 원직복직을 갈망하며 소송을 견딘 노동자들은 생산라인에 제대로 서 보지도 못하고 쫓겨났다. 고 양우권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 EG테크분회장은 3년간 법적 다툼을 벌인 끝에 지난해 5월 복직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새들의 먹이가 돼서라도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 날아서 철조망 넘어 들어가 보렵니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분회에 따르면 고인은 제철소 현장직 근무를 희망했지만 사무직에 배치됐고, 회사측 압박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달 19일 복직한 이민귀 금속노조 경남지부 센트랄지회장 등 3명은 복직 이튿날에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들은 2011년 임금·단체교섭 중 쟁의행위를 벌이다 2012년 해고됐고, 올해 2월 대법원에서 부당해고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회사는 3년 만에 가까스로 복직한 이들을 상대로 재징계 절차에 착수했다. 회사는 “회사가 불법징계를 한 것처럼 홍보해 회사 명예를 실추하고, 상급자의 정당한 지시를 거부하고 폭언했다”는 징계사유를 들었다. 지회는 2012년과 비교해 징계사유가 늘어난 만큼 재해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 지회장은 회사가 금속노조 소속인 지회의 노조활동을 막기 위해 징계위원회를 열었다고 보고 있다. 현재 지회 조합원은 이 지회장을 포함해 4명뿐이다. 이 지회장은 “센트랄은 복수노조 사업장인데, 공장 직원들은 해고자 복직을 환영하는 분위기”라며 “지회에 가입하는 조합원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징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3년을 기다려 복직했는데 해도 너무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은 “EG테크 정리해고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해고는 경영상 이유가 아니라 노조를 탄압하려는 목적으로 이뤄진다”며 “확정판결을 받고 복직해도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하지 않는 한 회사는 다시 쫓아내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 실장은 “노조탄압을 원천적으로 봉쇄하지 않는 한 이 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구멍 뚫린 해고자 구제절차 복직 가로막아

해고노동자들이 복직하기 위해 장시간 ‘고난의 행군’을 하는 것은 부당해고 구제절차가 사용자에게 유리하게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해고노동자가 복직하려면 최소한 5심(지노위-중노위-행정법원-고등법원-대법원)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행정관청인 노동위의 구제신청 제도는 노사 간 분쟁의 신속한 해결을 위해 도입됐는데도 강제성이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 2012년 중노위 통계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노동위에 접수된 심판사건 가운데 재심신청률은 평균 52.06%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행정소송 제기율은 33.94%로 나타났다. 노동위 판정에 불복해 결국 행정소송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국회는 사용자에게 노동위 판정을 이행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2006년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행강제금을 도입했다. 노동위 판정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2천만원 이하 이행강제금을 1년에 2회, 최대 2년까지 부과하도록 했다.

하지만 이행강제금이 많지 않은 데다, 사업장 규모에 따라 10%씩 차등지급하도록 규정돼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도 ‘돈으로 때우면 된다’는 사용자들의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실제 노동위 이행강제금 부과현황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243억원(1천579건)의 이행강제금이 납부됐다. 이 중 부당해고로 납부된 이행강제금은 178억원(1천253건)으로 73.2%나 됐다. 마린코리아와 일진전기는 노동위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은 뒤 각각 5천600만원과 2천400만원을 이행강제금으로 납부했다. 센트랄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네 차례에 걸쳐 9천만원을 이행강제금으로 냈다.

김경태 한림대 교수(법행정학부)는 “이행강제금을 네 차례 부과해도 구제명령을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며 “이행강제금 제도가 노동위 구제명령을 이행하도록 만드는 강제력을 갖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법원 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 해고노동자가 복직할 길이 요원한 것도 문제다. 헌법은 대법원을 상고심으로 하는 3심제 구조를 전제로 한다. 소송 당사자가 판결에 승복하기까지 3번의 재판을 바라는 정서가 지배적이다. 김영준 철도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기 위해 걸리는 시간 동안 해고자들은 생업을 위해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며 “그러다 복직을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언론중재법처럼 신속한 소송절차 필요”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부당해고 구제절차를 보완하려는 입법 움직임도 있다.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012년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법원이 부당해고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확정판결 이전이라도 30일 이내에 해당 근로자를 원직복직시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같은해 이상규 전 통합진보당 의원은 이행강제금을 대폭 인상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 전 의원은 개정안에서 노동위 판정을 받고도 복직시키지 않을 경우 해고 직전 평균임금의 최대 10배에 달하는 이행강제금을 1일 단위로 부과했다.

은수미 의원은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면 상당수 해고노동자들이 확정판결이 나지 않아도 복직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빠른 시일 안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우원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사업장 규모와 매출액별로 이행강제금을 부과해 노동위 판정 이후 버티기로 일관하는 대기업의 행태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태 교수는 “노동위가 판정과 관련해 사용자에게 강제성을 부여하려면 이행강제금 액수를 높일 필요가 있다”며 “사업장 규모별로 소기업부터 대기업까지 기준을 세분화해 이행강제금을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형동 변호사(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는 “민사소송의 경우 수년에 걸쳐 소송이 진행돼 복직을 희망하는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측면이 많다”며 “6개월 안에 정정보도·손해배상을 하도록 하는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처럼 부당해고 소송도 3개월 전후로 마무리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부당해고로 인한 피해는 노동자가 입었는데 이행강제금은 국고로 귀속된다”며 “입법을 통해 부당해고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해 부당해고를 한 사용자가 노동자에게 임금상당액 이상을 지급하도록 해서 해고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편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은 “해고자 중에 원직복직보다 금전보상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고 사용자가 근기법에 대한 이해가 낮은 점을 악용해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도 있다”며 “무조건 원직복직을 강제하고 이행강제금을 높이는 것은 바람직한 노사관계 방향이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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