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1975년 11월 미국 국무부 장관 헨리 키신저는 국제노동기구(ILO)에 탈퇴하겠다는 서신을 보냈다. 2년 뒤인 77년 11월 제럴드 포드 대통령(재임 1974~1977년)이 이끌던 미국 정부는 ILO를 탈퇴했다.

1970년 ILO 사무차장으로 소련 출신이 임명됐다. 1975년 6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총회 참관국 자격을 얻자 미국과 이스라엘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ILO가 정치기구로 변질됐고, 공산주의 국가에선 노사정 3자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의 탈퇴 이유였다. 냉전이 한창이던 때였다.

ILO는 1차 대전(1914~1918년)과 러시아 혁명(1917년)의 산물이다. 수백만 명을 살상한 세계전쟁은 전대미문의 비극이었다. 볼셰비키가 주도한 공산주의 정권은 제국주의 지배계급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다. 전쟁과 혁명을 막는 국제질서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 지도자들이 1919년 초 프랑스 수도 파리에 모였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재임 1913~1921년)의 민족자결주의가 나온 것도 이 무렵이다.

지루한 논란을 거듭한 파리 평화회의 결과 국제연맹이 창설됐고, ILO가 만들어졌다. 민주당 출신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 윌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던 미국 상원은 윌슨이 만든 열매를 싫어했다. 1919년 10월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ILO 첫 총회가 열렸다. 국제연맹을 거부한 미 상원은 ILO도 거부했다. 미국은 1934년이 돼서야 ILO에 가입한다.

2차 대전이 끝나고 국제연합(UN)이 출범하자 ILO는 자연스럽게 그 산하조직이 됐다. 미국이 UN 기구에서 탈퇴한 것은 1977년 ILO가 처음이었다. 미국의 탈퇴로 ILO는 재정에 큰 타격을 입었다. ILO가 불평등 구조 개선에서 고용 형평성 증진으로 정책 목표를 바꾸는 타협책을 내놓은 후인 1980년에야 미국은 ILO에 복귀했다.

지미 카터 대통령(재임 1977~1981년)은 직속으로 ILO위원회를 만들었다. ILO 관련 정책을 심의하는 위원회에는 국무부 장관·상무부 장관·안보보좌관·경제정책보좌관·미국노총 위원장·미국국제무역협의회 회장이 참여했다. 위원회는 1988년 “ILO 협약과 충돌하는 법률과 관행을 개정할 의도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협약과 충돌하는 연방법과 주법을 검토하기 위해" 국제노동기준 3자 자문 패널(TAPILS)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합의문에는 “미국 연방법과 주법의 개정을 필요로 하는 ILO 협약에 대한 어떤 비준 요청도 상원에 하지 않을 것”이라고 명시했다.

ILO 협약은 노동자가 집단과 조직을 통해 단결하고 교섭한다는 원칙을 토대로 한다. 하지만 미국 노동법은 개별 노동자의 ‘권리’를 중시한다. 미국 법에선 관리직·공무원·개인계약자들은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의 감독대상이 아니다. 노조 내부 선거 규정과 임원 자격에 대해 꼬치꼬치 정해 놓은 ‘노동-경영 보고 및 공개에 관한 법’도 ILO 협약 제87호 결사의 자유가 보장하는 불간섭 원칙에 위배된다. 소수 노조의 대표권을 부정한 배타적 교섭권은 물론이고 △노동조합에 반대할 수 있는 사용자의 권리 △파업권 제한 △공산당원의 노동단체 가입 제한 △노조의 정치자금 제한도 제87호 결사의 자유와 충돌한다.

단체교섭의 범위와 대상에 대한 제한, 연방정부와 주정부 공무원의 파업권에 대한 실질적 금지, 공무원의 노동조건에 대한 주정부의 결정 권한은 제98호 단체교섭권에 어긋난다. 교도소를 비롯한 교정시설의 외주화와 민영화는 재소자의 노동으로부터 이윤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제29호 강제노동 협약 위반이다.

미국 여러 주의 노동법은 노동자 최저연령 기준을 정한 협약 제138호 비준을 어렵게 만든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규정한 제100호 역시 미국의 법률 개념과 맞부딪친다.

국제노동기준 3자 자문패널의 활동 결과에 따라 올해 5월 현재 미국은 ILO 핵심노동기준 8개 협약 중 2개만 비준해 놓고 있다. 1957년 제정된 제105호 강제노동 철폐 협약과 1999년 제정된 제182호 최악 형태의 아동노동 협약이다. 189개나 되는 ILO 협약 가운데 미국이 비준한 것은 14개에 불과하다.

ILO 협약에 대한 미국의 무시는 자국 기준이 국제기준이어야지 그 반대는 성립할 수 없다는 일방주의와 예외주의를 여실히 보여 준다. 보편적 인권으로서 노동기준을 증진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 온 것이다.

한국 정부는 비슷한 연구를 해 놓았을까. ILO 협약 189개 중 29개만, 핵심협약 8개 중 4개만 비준한 한국 정부는 아직 비준하지 않은 협약들이 어떤 국내법과 충돌하는지 체계적으로 정리해 놓았을까. 한국의 사용자단체와 노동조합은 어떨까. 이 프로젝트에 대한 노사정 3자의 사회적 대화를 기대하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와 같은 것일까.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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