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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공장 파견직 이야기 ③ 인격 모독에 우는 또 다른 계급 파견] 다 쓴 휴지는 그렇게 버려진다안산시흥 파견노동자 유준희씨
   
안산시흥
파견노동자
유준희씨

전국 제조업 파견노동자의 93%가 모여 있다는 안산시흥지역 산업단지. 한 청년노동자가 반월산단과 시화산단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며 밀리고 밀려 벼랑 끝에 선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은 불법이다. 기업들은 6개월짜리 단기 파견노동자를 쓰고 해고한 뒤 1~2주 간격으로 반복고용하면서 불법을 피한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허점인 ‘일시·간헐적 업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투명망토처럼 불법이 사라져 버린다. 생존 의지와 맞바꾼, 꼬깃꼬깃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처박을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감정 얘기를 <매일노동뉴스>가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① 5천580원에 팔리는 파견 신파극
② 살아남으려면 가위바위보 이겨라
③ 인격 모독에 우는 또 다른 계급 파견
④ 기업들의 꼼수, 그 끝없는 욕망
⑤ 노동자들이 움직인다

밀림을 방불케 하는 적자생존의 노동시장. 오늘도 ‘공단 사파리’는 피 튀기는 먹이전쟁으로 치열하다. 낙오자 한 명이 발생했다. 몇 달 전 작업 도중 허리를 삐끗한 정직원 언니 한 명이 결국 퇴사를 결심했다는 소식이다. 수년간 함께한 동료였으나, 그녀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아무렴 걱정이 안 되겠냐만은, 그보다 더 흥미로운 주제가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바로 정직원 자리가 하나 나온 것.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사냥꾼들이 온몸의 촉을 세우고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회사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 상황이면 각자 입장에 따른 다양한 반응이 나타나게 된다. 가만 보고 있자니 이게 참 기가 막히다. 우선 기존 정직원들은 애초 파견직들을 잠시 머물다 떠날 사람으로 보기 때문에 깊은 정은 나누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직원으로 전환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이 일할 때 편하고, 좀 더 오래 보고 싶은 사람이 정직원이 되길 바란다. 그중 입김이 좀 세다 싶은 사람들은 관리자들에게 적극적인 제안도 서슴지 않는다. 때로는 그 과정이 사람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한편 최장 기간 파견직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정직원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랜 시간 기다려 온 노력이 드디어 빛을 보리라 기대한다. 하지만 그도 녹록지만은 않은 게, 입사한 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가장 어린 파견사원이 복병으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경우 젊은 만큼 일도 잘하고 여우처럼 눈치 살펴 가며 여기저기 예쁨을 독차지하고 있다. 결국 본인이 정직원이 될 것이라 생각하기에 이른다. 과연 누가 정직원이 됐을까.

누가 정직원이 됐을까

매일 아침 통근버스에서는 하나 같이 피곤한 얼굴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잠이든 술이든, 어찌 됐든 둘 중 하나에선 깨지 못한 채 어기적어기적 걸어간다. 바깥에서 보기엔 모두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들일 뿐이다. 하지만 그 안에 엄연한 계급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회사와 직접 정년을 약속한 정직원, 직접 계약은 맺었으나 2년 이내로 기한을 두고 있는 계약직, 중간에 업체를 끼고 고용된 파견직. 크게는 이렇게 세 개의 계급으로 나뉘어 있다. 좀 더 찬찬히 살피다 보면 더 쪼개지기도 한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관리자의 감독 아래 같은 작업을 하지만 고용형태에 따라 임금이 다르고 대우가 다르고, 그에 따라 가끔은 생긴 것도 달라 보인다는 엄청난 사실을 알고들 계시는지.

대개 정직원은 정직원끼리, 계약직은 계약직끼리 뭉친다. 누가 알려 주지 않아도 무리는 그렇게 형성된다. 이는 점심시간에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다. 식당에는 오래된 정직원들의 자리, 중간급 정직원들의 자리, 파견직들의 자리가 암묵적으로 지정돼 있다. 오늘 입사해 어리바리하다가 정직원님들 영역을 침범이라도 하는 날엔 밥 한 술 뜨기 전에 쫓겨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

안산의 한 가전제품 회사에 다니던 시절. 어린 나이지만, 감히 평생 잊지 못할 회사가 되리라 확신했다. 첫 해고의 추억을 선사한 회사이기 때문이다. 직원 휴게실이라는 곳은 이른 아침마다 피로와 낯선 환경에 경직된 사람들로 가득했다. 당시 그곳엔 10개의 파견업체가 들어왔는데, 각 업체에서 데려온 파견직들이 대기 중이었던 것이다. 도장반 남자 3명, 용접반 남자 5명…. “어이, 이리로 오슈.” 이름도 없는 이들이 손짓에 이끌려 여기저기로 흩어져 가면 그렇게 하루 작업이 시작됐다.

작업장에서는 느린 듯, 하지만 멈추지 않는 컨베이어벨트가 돌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벨트 위로 흐르는 제품을 놓칠까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서로 이름은 묻지 않았다. 파견직인 우리들에겐 개인 사물함도, 작업복도 주어지지 않았다. 비닐봉투 안에 겉옷과 가방을 넣어 발밑에 내려놓고 작업을 했다. 한동안 근무하다 퇴사해도 눈 하나 꿈쩍 안 할 기세다. 다른 회사의 경우 한 사람이 할 일을 3명에서 4명이 나눠 작업하고 있었다. 실제로 방금 입사한 그 누가 라인에 투입되더라도 전혀 라인 속도를 떨어뜨리지 않고 녹아들 수 있는 수준의 작업이었다.

주위를 둘러본다. 모양도 색도 다른 작업복들, 각자 이전의 회사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 꽤 기괴했다. 한곳에 모여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회사에서 일한다기보다는 여기저기서 아무렇게나 짜깁기해 놓은 듯한 모습이다. 이 회사 이름이 박힌 작업복을 입은 사람은 몇 명 보이지 않았다. 기껏해야 반장들 2~3명. 내가 정말 이 회사 정직원이 될 수 있을까. 어느 정도 일하다 보면 정직원이 될 수 있다는 업체 이사의 말은 내 불안한 마음을 전혀 위로하지 못했다.

그리고 역시나, 잔업을 마친 어느 월요일 밤 9시. 업체 이사에게서 전화가 온 건 집 현관문에 막 들어서려던 순간이었다. 길지도 않은 통화시간, 내용도 간단했다. 내가 일하던 라인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하여, 비정규직들은 출근을 못하게 됐다고. 그렇게 알라고. 그리고 끝이었다. 예상된 시나리오대로 나는 정직원이 되지 못했고, 예상 밖에 나는 해고됐다. 한동안 멍하니 서서 상황을 파악했다. 그래, 다 쓴 휴지는 버려지는 것이니까.

감사 나오니 숨어 있어라

대부분 파견직이었던 이전 회사와는 달리 제약회사 파견직으로 있을 때에는 상대적 박탈감의 절정을 맛봐야 했다. 정규직이 7명이면 파견직이 3명인 회사였다. 수적으로도 약세였고, 뭐 하나 당당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직원과 파견직은 1년으로 따지면 임금도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실제로 ‘조장님’은 늘 우리를 ‘용역들’이라고 불렀다. 크게 의미를 두고 하는 말은 아니었겠으나 우리는 늘 기분이 나빴다.

그날도 조장님은 우리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용역들은 조회 끝나면 따로 좀 남으세요.” 다른 게 아니라 다음주에 감사가 진행된다는 것이다. 때문에 용역들은 출근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앞의 얘기와 뒤의 얘기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찌 됐든 출근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정 출근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야간근무를 하라고 했다. 마치 성공한 둘째딸과 결혼할 사람이 인사 오는 날, 바보 언니를 방에 숨겨 놓는 상황이 된 듯했다. 더럽고 치사했지만 일주일이나 쉬면 생활에 타격이 생기기 때문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야간근무에 들어갔다.

어제 출근해서 오늘 퇴근하는 야간근무는 도저히 제정신으로 있기가 힘들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고. 밤 12시가 지나서야 점심식사가 차려졌으나, 밥이 넘어가지를 않았다. 바깥에 앉아 가만히 귀 기울이고 있는 시간들이 대부분이었다. 새벽 두 시 반의 반월공단. 저 멀리 프레스 찍는 소리와 지게차 후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여전히 불 밝힌 공장엔 잠들지 못한 이들이 서러운 눈을 비벼 가며 버티고 서 있겠지. 저들은 또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시꺼먼 기름 흐르는 기계 앞에 저들은 왜 맨몸으로, 온몸으로 그렇게 버티고 서 있는 것일까. 그들의 처지가, 내 처지가 처량해 웃음이 났다.

지난달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정 협상이 결렬됐던 이유 중 하나는 ‘일반해고’에 관한 부분 때문이었다. 저성과자나 근무태도가 불량한 직원을 사업주가 해고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한국노총은 결국 ‘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며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정적이라 생각했던 정직원들의 자리 또한 위태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직접고용 비정규직과 간접고용 비정규직, 이런 편 나누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다시 돌아가 보자. 앞서 이야기한 정직원 자리는 누구의 차지가 됐는지 아는가. 끝내 아무도 정직원이 되지 못했다. 파견직 한 명을 더 뽑았을 뿐이었다. “정규직이 과보호를 받고 있다. 최저임금이 너무 높아 정직원 임금인상을 못해 주겠다.” 헛소리를 하며 사회는 자꾸만 노동자들 간의 싸움을 부추긴다. 하지만 이는 결국 내 발등 찍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적을 명확히 파악하는 것, 가장 기본적인 싸움의 기술 아니던가. 어리바리하며 내 자리 못 찾다간 이번엔 식당에서가 아니라 사회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자. 오늘은 진짜 소주 한 잔도 안 마시고 진심으로 하는 소리다.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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