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강원도 속초 설악동 야영장 인근 나무에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된 고 배재형 전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의 유서가 공개됐다.

12일 금속노조에 따르면 고인은 가족과 친구, 동료 노동자와 노동계 관계자들에게 각각 한 통의 유서를 남겼다. 대만에 본사를 둔 외투기업인 하이디스테크놀로지의 ‘기술 먹튀’ 논란과 인위적 구조조정에 맞서 투쟁해 온 고인은 “저의 순간의 실수(잘못)로 인해 투쟁에 찬물을 끼얹어 죄송하다”며 “5월1일 일은 제가 다 주동했고, 제가 다 책임지고 가겠다”고 밝혔다. 고인이 죽음에 이른 배경을 설명해 주는 결정적인 내용이다.

하이디스는 올해 3월31일 노동자 377명 중 희망퇴직자를 제외한 80여명에 대한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경기도 이천공장을 폐쇄했다. 현재는 특허 관리·영업 담당 사무직과 공장 시설관리팀 인력 30여명만 근무하고 있다. 시설관리직이었던 고인은 필수시설 관리인력으로 남아 근무하던 중 노동절이었던 이달 1일 동료들과 함께 회사에 휴가계를 내고 노동절 집회에 참석했다.

그 뒤 지난 4일 회사 대표이사는 고인과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에 노동절 휴무에 대한 책임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측은 “무단 휴무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를 신청하고 민형사상 소송을 진행하겠다”며 “(그게 싫으면) 전 직원이 희망퇴직하고, 시설청정라인 아웃소싱을 수용하라”고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회사 전아무개 대표이사는 최근 사내게시판에 올린 본인 명의 글에서 “단순한 개별 무단결근에 그치지 않고 회사의 업무를 방해하고 생명·신체·재산상 피해를 야기하는 위법행위로 결코 허용될 수 없다”며 “무단결근자에 대해 사규와 법에 따라 조치할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노동절 휴무에 앞장섰던 고인이 동료 직원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것을 우려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에 이른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 대목이다.

한편 고인의 시신은 이날 새벽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 장례식장에 안치됐다. 노조는 유족으로부터 장례절차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고, 이날 오전 ‘고 배재형 노동열사 투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투쟁방침을 논의했다. 노조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회사의 책임인정과 책임자 처벌 △공장폐쇄·정리해고 철회 △유가족 대책 마련을 담은 요구안을 마련해 13일 회사측에 특별교섭을 요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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