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제조업 파견노동자의 93%가 모여 있다는 안산시흥지역 산업단지. 한 청년노동자가 반월산단과 시화산단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며 밀리고 밀려 벼랑 끝에 선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우리나라에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은 불법이다. 기업들은 6개월짜리 단기 파견노동자를 쓰고 해고한 뒤 1~2주 간격으로 반복고용하면서 불법을 피한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허점인 ‘일시·간헐적 업무’를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다. 마치 투명망토처럼 불법이 사라져 버린다. 생존 의지와 맞바꾼, 꼬깃꼬깃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처박을 수밖에 없었던 노동자들의 감정 얘기를 <매일노동뉴스>가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① 5천580원에 팔리는 파견 신파극
② 살아남으려면 가위바위보 이겨라
③ 인격 모독에 우는 또 다른 계급 파견
④ 기업들의 꼼수, 그 끝없는 욕망
⑤ 노동자들이 움직인다

들켜선 안 될 것이라도 떨어뜨린 걸까. 옆 공정 언니가 재빠르게 주워 담은 것은 다름 아닌 잘린 손가락이었다. 절단기 앞에서 별다른 보호구 없이 작업을 하니 손가락이 잘려 나간 건 어쩌면 예고된 사고였는지도 모르겠다. ‘아프다’는 생각보다 눈치부터 살피던 언니는 뒤늦게 기계를 멈춰 세웠다.

‘모든 사고는 작업자 부주의에서 시작한다.’ 관리자만이 아니라 대부분 작업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끝내 언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병원으로 향했다. 본인이 빠지게 된 라인 사람들 걱정에 생산량 걱정, 아이들 저녁밥 걱정에 정작 자신은 소리조차 낼 틈이 없었을까. 걸어 나가던 언니가 꾹꾹 밀어 넣은 것은 눈치 없이 흘러내리던 피뿐만이 아니었다.

“이달부터는 애들 개학해서 급식비 내야 하는데, 이렇게 내 병원비로 헛돈 쓰면 안 되는데. 회사에서 출근하지 말라고 하면 어떡하지. 정신 차리고 일 안 했다고 조장 또 난리 치겠네. 이 망할 손가락 얼마나 있어야 붙으려나. 왜 잘리고 지랄이고.”

잔뜩 미안한 얼굴로 나가던 언니가 눌러 담은 사연. 손끝에서 저려 오는 찌릿찌릿한 고통에 행여나 눈물이 새어나올까, 다친 주제에 아픈 내색하면 사람들 얼마나 수근거릴까, 가진 건 몸뚱이 하나뿐인데 이마저 상하면 무엇으로 먹고살아야 하나…. 공과금 지로용지, 달력에 체크해 둔 대출금 빠지는 날, 어머님 생신, 그리고 집에서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 얼굴이 스쳐 지나갔으리라.

가장 낮게 살아가는 사람들

가당치도 않은 말이지만 언제부턴가 비정규직 문제는 진부한 주제가 돼 버렸다. 그러나 '비정규직 문제'라는 압축된 단어 속에 얼마나 다양한 아픔과 기막힌 사연들이 들어 있던가. 더 이상 새롭지 않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물러날 곳 없이 끝까지 몰린 비정규직 문제.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인 ‘파견직'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려 한다.

나는 제조업 노동자다. 그것도 고용노동부가 파악한 그대로, 전국 제조업 파견노동자의 90% 이상이 모여 있다는 안산·시흥지역 파견노동자다. 지나치게 기울어진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무서우리만치 균형 잡힌 감정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을 소개한다. 생존 의지와 맞바꾼, 꼬깃꼬깃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처박아 넣을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감정을 하나하나 펼쳐 본다.

마트에 가면 유효기간에 임박한 제품을 모아 놓은 매대부터 살피는 것이 습관이 돼 버렸다. 오늘 안에 먹어야 하는 두부와 무른 사과, 한 귀퉁이가 썩은 고구마를 장바구니에 담으며 나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다 시기를 놓쳐 최저가격으로 팔리고 있는 녀석들. 그마저도 팔리지 않으면 폐기될 이들의 운명이 참으로 눈물겹다. 최저임금으로 살아간다는 건, 생활비가 넉넉지 않다는 건, 마트에서 거저 팔리는 상처 난 제품과 같은 처지라는 얘기다.

2015년 2월. 해가 바뀌어 오른 최저임금대로 112만원이 입금됐다. 그나마 다른 회사보다 시급이 20원씩이나 높은 곳이었다. 4대 보험은 들어 주지 않으니 실수령액은 일한 시간 그대로였다. 우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당장 몇 푼 더 받아 얼마나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 내 노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두려움이 큰 게 사실이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한 지 세 달이 넘어간다. 보험료가 많지는 않지만 적은 수입에 연체료가 몇 달 붙으니 적지 않은 돈이 돼 버렸다. 보험료 내기를 포기했다. 그러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 정말 이 와중에 아프면 끝장이다.

잔업을 해서라도 수입을 늘려야 했다. 월세와 공과금으로 50만원, 보증금 대출 상환금에 핸드폰 요금, 근근이 사용한 카드값, 생활비로 월급을 토막 내다 보면 110만원이 뭔가. ‘생활의 달인’이 와도, 아니 달인의 할아버지가 와도 운영이 안 되는 액수다. 벼룩시장을 뒤져 ‘1년 365일(?)’ 사람을 구하고 있는 전자제품회사에 들어갔다. 늘 사람을 뽑는 것을 보니 바쁜 회사일 게 틀림없다. 몸 좀 망가지더라도 일 많은 회사로 들어가 생활비를 충당해야 했다.

그러나 뉴스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을 연신 떠들어 댔다. 서울에서 잘나가는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인 줄 알았다. 웬걸, 내게도 영향이 있을 줄이야. 잔업이 없었다. 심지어 하루 이틀씩 쉬기도 한다. 휴업수당? ‘휴’자만 꺼내도 다들 비웃는다. 나가라는 말 안 들으면 다행인 줄 알란다. 실제로 한 명 두 명씩 라인에서 사람들이 줄어 갔다. 오늘도 난 안 잘렸구나. 안도와 함께 으쓱한 생각이 든다. 사람 마음 참 간사하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이 재채기처럼 튀어나온다. 내 코가 석 자다. 저 언니 사정 딱한 거 아니까 내 자리를 넘겨주겠다? 절대 안 나오는 말이다.

적자 인생, 꿈도 자존감도 비싸다

한 달에 열흘도 쉬었다. 말로는 열흘이라 했으나 그 전에 출근해야 할 수도 있으니 늘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으란다. 하지만 열흘이 지나도 일이 없을 수 있단다. 우선은 집에 가서 기다리라는 말만 한다. 다들 자연스레 일용직 자리를 알아봤다. 일용직이나 ‘뛰면서’ 출근하라는 날짜에 맞춰 나오는 게 최선이라고 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월급이 100만원은 고사하고 80만원도 안 되는 달이 태반이었다. 파견업체에 가불을 신청하거나 주급으로 전환하는 언니들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아니겠는가. 난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이달도 적자다.

일을 하다 보면 뒷짐 지고 지켜보던 관리자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잘하고 있나?” 그럼 난 큰소리로 대답한다. “네,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돌아오는 말. “누가 최선을 다하래? 잘해야지!”

한 시간에 6천원도 안 되는 푼돈이나 주면서 최고의 노동력을 요구하는 관리자들을 보고 있자니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그럼 최고로 돈을 많이 주든가.’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하루 8시간씩 자리에 앉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라인 앞에 서서 볼트 박는 일이 보통 쉬운 일 같은가. 똥도 쉬는 시간에 맞춰 마려워야 하는 것이 라인 작업이다. 생체리듬을 바꿔 내야 한다는 것이다.

2015년 최저임금 5천580원으로 산다는 것, 최저가로 팔리는 상품들 같다고 했는데 다시 말해야겠다. 그보다 훨씬 더 구질구질하다. 더럽다. 두부나 사과 쪼가리와는 달리 우린 자존감을 갖고 꿈을 꾸며 살아가는 인간이니까. 가끔 난 친구를 만나면 지갑을 안 가져온 듯 연기를 한다. 때로는 나보다도 어린 집주인에게 월세를 늦게 낼 수밖에 없노라고 사정한다. 어버이날에 출근하는 척, 술자리 2차 가기 싫은 척…. 5천580원짜리 내 한 시간에겐 자존감도 꿈도 한없이 비싸기만 하다.

한 번 치민 분노는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린 날이 밝으면 또 아무렇지도 않게 출근을 한다. 이 조악하고 구깃구깃한 감정의 골을 매끈하게 대패질해 주는 건 동료들과의 소주 한 잔. 알고 있다. 어찌 소주 몇 모금 넘겼다고 진정될 수 있겠는가. 그 미친 관리자들 앞에서 활짝 웃으며 인사할 수 있겠는가.

우린 주문을 외운다. 소주 한 잔에, 참자. 또 한 잔에, 살자. 그렇다. 살아야 하니까. 이 미친 세상에서 먹고살아야 하니까.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래서 난 내일도 출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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