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안산시 소재 반월국가산업단지 전경. 안산시

경기도 안산시 반월국가산업단지 소재 제조업체에서 파견직으로 일하는 박영미(29·가명)씨는 최근 2년간 네 번이나 회사를 옮겼다. 해고가 워낙 손쉽게 이뤄지는 탓에 원치 않은 떠돌이 신세가 됐다.

“처음 들어간 회사는, 홈매트 아시죠? 그 전자모기향을 만들어 납품하는 회사였어요. 겨울에 제품을 만들어 여름에 파는 구조입니다. 겨울에는 일이 많고 여름에는 일이 없어요. 여름이 오면 파견직들은 죄다 해고되는 거죠. 해고하면서 하는 말이 ‘겨울에 다시 부르겠다’는 거예요. 허 참. 어떨 땐 헷갈리기도 해요. 내가 해고된 게 맞는지 아닌지.”

고용불안은 항상 박씨 주변을 맴돈다. 해고가 일상화돼 있는 만큼 박씨는 구직을 위한 빠른 길을 이미 터득하고 있었다. ‘벼룩시장’을 보고 구인업체로 전화를 걸면 열이면 열 모두 파견업체다.

“파견업체들은 대개 이력서를 요구하지 않아요. 신분증을 복사해서 제출하면, 바로 다음날부터 공장으로 출근할 수 있습니다. 면접을 보자는 업체는 없었어요.”

파견업체로부터 받는 처우는 형편없었다. 일하는 회사는 바뀌어도 시급은 늘 법정 최저임금 수준이다. 심지어 4대 보험 가입을 요구하면 해고하겠다는 업체도 있었다. 일감이 없어 공장이 휴업에 들어가더라도 파견직에게 휴업수당은 꿈도 못 꿀 일이다.

“공장 사람들은 제 이름을 몰라요. 아침에 출근하면 공장 관리자가 ‘거기 파견, 이쪽으로 와서 이거 하세요’라고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면 하루 종일 그 일만 하다가 오는 거예요. 내가 싸구려 부품이 된 느낌이 듭니다. 비참하죠.”

노동법 실종된 반월산단 "4대 보험 요구하면 해고"

반월산단의 또 다른 파견노동자 양민규(37·가명)씨. 요즘 부쩍 짜증이 늘었다고 한다. 곳간에서 인심 나는 법이라고 했던가. 늘상 쪼들리는 삶은 그의 마음까지 가난하게 만들었다.

불행은 2년 전 다니던 공장이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시작됐다. 출퇴근시간만 왕복 7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오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어쩔 수 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찾아 나섰다. 정규직 인생이 끝나고 파견직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3주 만에 얻은 첫 직장은 근무시간이 너무 길었어요. 아침에 출근해 밤 12시는 돼야 퇴근할 수 있었거든요. 막 태어난 딸아이 얼굴 볼 시간도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회사를 찾았어요. 잔업이 없는 회사로요. 그런데 이번엔 돈이 문제였죠. 4대 보험을 공제하고 나니 실수령액이 월 110만원밖에 되지 않는 거예요. 아는 사람 결혼식이나 돌잔치 때 단돈 3만원이 아까워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양씨는 또다시 새 직장을 구했다. 역시 파견직이었지만, 6개월 뒤 정직원을 시켜 준다는 약속을 받았다. 물론 말뿐이었다.

“입사 5개월쯤 됐을 때예요. 퇴근을 준비하고 있는데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거예요. 그때 기분이란…. 그렇게 지난 2년간 이 회사 저 회사 떠돌아다니며 모아 뒀던 돈을 다 까먹었어요. 가정불화만 심해졌어요.”

양씨는 “길거리에 파견회사가 많고 많으니 일자리 역시 차고 넘칠 줄 알았다”며 “우리 가족에게 희망이란 게 과연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파견직 뺑뺑이 2년, 남은 건 신경과민과 가정불화

박씨와 양씨의 사례는 반월산단 제조업체에서 일하는 파견직 노동자들의 삶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반월산단 노동자 가운데 이들과 같은 파견직 비율은 얼마나 될까. 안산시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가 2013년 이 지역 노동자 62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37.9%가 파견업체 소속, 36.9%가 용역업체 소속으로 파악됐다. 응답자의 75% 정도가 간접고용 형태로 일하고 있다는 뜻이다.

파견으로 범위를 좁히면 상당수 노동자가 불법적인 형태로 업무에 투입되고 있을 개연성이 높다.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업무에 파견노동자 투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망을 피해 나가는 업체가 너무 많다는 것이 문제다. 파견법은 계절적 요인이나 주문량 폭주 등 일시·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때에만 파견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하고 있다. 이때 파견직 사용기간은 1회 3개월에 추가로 1회 3개월을 연장할 수 있는 등 1년에 최장 6개월로 제한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우리나라 전체 파견노동자의 25.7%가 제조업 일시·간헐적 파견노동자로 파악됐다. 그런데 반월산단과 시화산단이 입주한 안산·시흥 지역의 경우 그 비율이 무려 93.2%나 된다. 일시·간헐적 사유를 내세운 뒤 실제로는 상시·지속적으로 파견직을 사용하는 업체가 적지 않음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민주노총 안산지부 "정부·노동계, 불법파견 근절 힘 모으자"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 안산지부가 7일 오전 고용노동부 안산지청에 반월산단 내 불법파견 의심업체 27곳(사용사업주)과 인력파견업체 55곳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진정했다. 해당 업체들의 혐의는 대동소이하다. 지부는 이들 업체가 파견직 투입이 금지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6개월 이상 상시·지속적으로 파견직을 투입해 파견법 제5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불법 혐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해당 업체는 파견법 제43조에 따라 3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해진다. 사용사업주는 파견법 제6조의2에 따라 파견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의무’를 지게 된다.

지부는 이 밖에 직영노동자와 동종·유사업무에 투입된 파견노동자에게 상여금 등을 지급하지 않은 업체에 대한 차별시정도 요구했다. 정현철 지부 부의장은 “반월산단 파견노동 대부분은 불법에 해당하고, 규모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널리 퍼져 있다”며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독버섯처럼 번진 불법파견을 뿌리뽑고, 정부와 노동계가 함께 ‘불법파견 신고상담센터’같은 민간기구를 구성해 상시적인 감시활동을 벌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수수료 착취와 같은 인력파견업체의 횡포를 막기 위해 노동계의 개입도 요구된다. 공계진 시화노동정책연구소 이사장은 “파견업체 자체가 불법적으로 운영되는 데다, 중간착취가 심각한 지경”이라며 “노동계가 참여하는 민주적 노동시장의 형성을 고민할 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현재 반월·시화산단 노동계가 동참하는 협동조합 형태의 직업소개소 설립이 추진되고 있다.

공 이사장은 “공정성을 지닌 협동조합 형태의 직업소개소 모델을 통해 노동시장에 대한 진보진영의 개입을 높이자는 취지”라며 “중간착취 문제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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