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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대안을 향한 대장정을 시작할 때
▲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전경련이 재미난 보고서를 내놨다. 전경련은 ‘한국경제 3% 성장, 위기 징후’라는 제목을 단 보고서에서 한국이 저성장 위기의 10가지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진단하며 정부에 경기부양책이 아니라 신산업 창출과 노동시장 효율성을 향상 시킬 근본적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전경련 분석에 따르면 한국 경제는 소비가 소득계층에 상관없이 줄고 있고, 투자 역시 절대량과 분야에서 모두 감소하고 있으며, 정부 부채는 증가하고, 순수출은 주력수출산업이 고령화된 가운데 박리다매형 수출만 늘고 있다. 모든 지표들이 일본의 20년 전 상황과 비슷한 것으로, 특단의 대책이 없으면 일본식 장기불황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서는 분석한다. 전경련은 대책으로 결국 자신들을 지원하라는 것으로 끝을 맺지만, 재벌들도 나름 현재의 중장기 경제전망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민주당의 대표적 경제학자이자 케인스주의 경제학의 정치적 좌장이라 할 로렌스 서머스는 지난해 말 미국과 세계경제가 장기불황 국면에 돌입했다고 주장해 경제학계에 큰 파문을 던졌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역시 전통적인 재정·통화 정책이 사실상 무력화된 정세라며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다고 급진적 해결책을 제시했다.

한국에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토마 피케티 역시 장기 저성장을 받아들이고 대안적 재분배 체계로 글로벌 조세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여러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주류 경제학의 좌파와 우파가 모두 장기불황에 상당히 무게를 두는 상황이다. 예전 같은 성장을 전제하기보단 장기적 불황을 전제한 상황에서 기업 경영이나 국민 생활에 관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주장하는 소득 주도 성장론은 소득격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옳다. 하지만 소득격차를 해결하면 다시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건 다소 문제가 있는 주장이다.

노동운동은 현 정세에서 어떤 태도와 요구를 가져야 할까.

먼저 노동운동은 현재 상태의 방어보다는 노동조합의 사회적 권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장기불황이란 조건은 방어 투쟁의 낙수효과가 지금보다 더 없어지는 조건이다. 고립을 피하고, 오히려 더 큰 계급적 단결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핵심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요구하고, 또 거기서 민주노조가 계급의 이해관계를 분명하게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정부와 사용자의 필요를 관철시키는 허울뿐인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아니라 노조 주도로 의제를 다룰 수 있고, 분명한 강제성을 갖춘 노사정위, 초기업적 노조가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고, 또 그 협약이 효력을 확장할 수 있는 노조법, 노동자의 상태를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경제 및 노동 통계 작성과 노동조합의 조사 참여 등이 그런 것일 수 있다.

다음으로 노동조합의 요구는 국부의 온전한 보전과 재분배 전체를 포괄하는 계획이어야 한다. 이미 재벌들과 자산가들이 벌이고 있는 것처럼 세계화된 지배층은 미국과 같은 안전한 곳이나, 버진아일랜드 같은 조세도피처로 자산 상당수를 옮겨 두고 있다. 노동자가 현장에서 겪는 가장 비참한 일이 자본 도피이듯, 한국 노동자가 계급적으로 겪을 수 있는 가장 비극적인 일은 노동자가 생산에 이용해야 할 국가의 부가 해외로 모두 빠져나가는 것이다. 금융세계화 시대에 장기불황은 자본의 위험한 이동을 부추겨 노동자들이 재분배해야 할 부 자체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구체적 정책으로는 금융세계화의 통로 역할을 규제하는 은행들의 국유화, 국내 일자리 보호와 수출재벌의 부를 국내에 보전할 대기업의 해외공장 설립 규제, 수익률에만 초점을 두고 있는 국민연금의 개혁과 생산적 이용, 자유무역협정의 자본이동 규제와 노동권 보호에 관한 재협상, 저소득층 가계부채의 탕감, 사회적 복지 체계 강화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수년간 현 상태를 방어하는 데에도 허덕일 수밖에 없었던 노동운동에 이런 것들이 다소 뜬금없이 들릴 수도 있겠다. 분명한 것은 현재 보수적 주류 경제학자들마저 급진적 변화를 요구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변화의 시대, 현재만을 지키려 하다간 현재마저도 지키지 못할 수 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한지원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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