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잠시 연구차 유럽에 다녀왔다. 이번 연구여행의 주제는 자동차산업 일자리다. 그 일환으로 독일 폭스바겐(VW)에서 10여년 전에 시도한 이른바 아우토(Auto)5000 실험에 주목해 현지 관계자들을 만나 탐문을 했다. 먼 나라의 과거 경험에 우리 사회 고민을 투영해 다시 주목해 보려는 취지였다.

아우토5000은 1990년대 후반부터 준비해 2000년대 초반에 폭스바겐에서 건립한 독립 유한책임회사(GmbH)로 5천명의 실업자를 고용해 5천마르크의 급료를 지급해 공장을 이끌겠다는 프로젝트였다. 볼프스부르크(Wolfsburg)에 3천500명, 하노버(Hanover)에 1천500명의 고용규모를 창출하려던 당초 계획과 달리 타당성 검토 결과 실제로는 볼프스부르크에만 회사가 설립돼 그 규모의 고용만 신규로 창출됐다.

해당 프로젝트는 90년대 독일 제조업 주요 기업들이 유럽 주변국들로 생산기지 이전을 대거 감행하면서 독일 내 생산량 저하로 발생한 고용위기 상황을 적극적이고 혁신적으로 타개해 보려는 취지였다.

90년대 폭스바겐이 경험했던 현실은 포르투갈·스페인·슬로바키아 등 상대적으로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 지역으로 회사 신규투자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면서 종래 폭스바겐 헤드쿼터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의 생산대수가 연간 약 80만대에서 50만대로 감소하는 상황이었다.

아우토5000은 당시 400만명 이상의 고실업이 연속으로 이어지던 독일 노동시장 전반의 정체된 상황에 균열을 일으키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을 폭스바겐 노사가 받아안고 적극적으로 실행으로 옮긴 결과이기도 했다. 볼프스부르크가 위치한 니더작센주도 최대 고용규모를 지니고 있는 폭스바겐의 일자리가 지켜지기를 바랐다.

프로젝트의 핵심 아이디어는 비용절감과 혁신 극대화를 통한 고용기회 확대였다. 아우토5000사 종업원들에게는 종래 폭스바겐에서 지불하던 임금에 비해 약 20%가량 낮은 수준의 임금을 별도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지불하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정한 5천마르크(약 2천500유로)는 대략 니더작센주 지역의 금속-전기부문 단체협약에서 규정한 임금 수준이었다. 노조로서는 대각선 기업교섭을 통해 지역의 해당 부문에서 정한 단체협약보다 더 많은 급료를 받던 폭스바겐의 일반 근로자들이 누리던 금전적 권리 일부를 포기하는 것이었다. 금속노조와 폭스바겐 종업원평의회가 용인하기 매우 힘든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아우토5000은 그 시기까지 독일 인사경영학계에서 논의돼 오던 온갖 새로운 혁신적인 방안을 전폭적으로 도입하는 실험 기회이기도 했다. 작업 과정에 교육훈련 과정을 전격적으로 끌어들이고, 평가체계를 입체화시키면서도 그 타당성을 최적화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였다. 작업과 훈련·평가 모두에서 근로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증진시키는 길을 만들었고, 민주적 평가에 기초한 책임 소재 파악을 통해 생산량을 우선에 두는 식으로 근로시간과 휴식시간의 ‘버퍼존’을 유연하게 활용했다.

근로시간을 종래 기준량인 주 35시간에서 세 시간 늘려 38시간으로 정했으나, 그 세 시간은 전적으로 또 타이트하게 교육훈련에 할애해 활용했다. 또 '학습공장' 개념을 도입해 현장 중심적이고 신속한 교육이 되도록 했다. 이런 모든 시도는 노동의 인간화와 작업조직의 민주적 운영원리가 효율성·생산성 증진과 조화를 이루도록 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방안을 담은 아우토5000은 현실에서 실현됐다. 2002년에 시작해 2009년에 다시 폭스바겐으로 편입돼 들어갈 때까지 7년간 존속했다. 2006년께 단체협약 갱신을 앞두고 한 차례 파업이 발생했으나, 아우토5000이 생산한 브랜드인 투란(Turan)은 폭발적인 시장 수요에 부응하면서 차질 없는 생산과 성과를 거뒀다. 통합은 성과 부진에서가 아니라 다른 정치적인 이유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지금 한국에서는 고임금과 갈등적 노사관계가 새로운 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의 자본은 이미 해외에 공장을 설립하는 길을 본격적으로 찾아 나서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생산적이고 협력적인 노사관계를 꾸리지 못한 실패의 경험 혹은 갈등 끝에 길을 찾아낸 성공의 경험 모두를 안고 해외에서 생산과 수출의 성공적인 길을 개척해 가고 있다. 문제는 한국 자본이 해외에서 성공하는 것이 국내 일자리에는 부정적인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한국 자본도 살고 국내 일자리도 살려 내는 묘수는 없을까. 혹시 아우토5000의 지혜로부터 답을 찾을 여지는 없을까.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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