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PDATE : 2017.11.19 일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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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세월호 1주기, 안산은 아프다] 진상규명 손 놓은 사이 공동체도 멈춰 섰다이웃·친구 잃은 아픔에 고통 가중 … 원인 모르니 치유도 못해
   
▲ 안산시 고잔동 '416 기억저장소'에서는 지난 2일부터 '아이들의 방'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가들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의 빈방을 촬영했다. 윤성희 기자
   
▲ 이달 7일 오후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단원고 학생들. 가방이나 교복에 노란 리본 배지를 하나씩 달고 있다. 윤성희 기자
   
▲ 7일 오후 고잔동 곳곳에는 지금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윤성희 기자

단원고 인근 안산시 단원구 고잔동 연립주택단지 상가.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방을 찍은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2일부터 다음달 말까지 열리는 전시회는 '4·16기억저장소'가 사진가들과 함께 주최했다.

아이들이 떠나 비어 있는 방은 지난해 4월16일 이후 그대로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교복과 인형이 놓인 책상을 치우지 못했다. 시간은 그날에 멈춰 있다. 전시회를 찾은 고 문지성양의 아버지 문종택씨는 이렇게 적었다.

"(그날) 무엇을 했냐구요? 살아 있는 내 새끼 물기 닦아 데려오려고 타월과 옷가지, 양말을 들고…."

문씨는 그날 정부 합동대책반이 생존자로 분류한 딸을 찾아 진도를 뛰어다녔다. 이내 실수였다는 사실을 알고 오열했다. 그는 "차라리 실종자로 분류해 내 딸을 찾아 달라"고 외쳤다. 지성양은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 시신으로 돌아왔다. 시신을 찾은 것은 해경이 아닌 진도 주민이었다.

"세 집 걸러 한 집 아이 잃었다"

4월16일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은 당사자만이 아니다. 이웃들의 아픔도 크다. 지난 7일 오후 단원고 앞에는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웃음은 잠시 커지는가 싶다가도 금세 잦아들었다. 가라앉은 분위기가 웃음소리를 삼키는 듯했다. 아이들의 가방이나 휴대폰, 교복에는 여전히 노란 리본이 달렸다. 지난해만큼은 아니지만 학교에서 안산시 고잔동으로 이어지는 길가 전봇대, 연립주택 앞 상가의 빵집 유리문, 어린이들이 뛰어노는 놀이터 울타리에도 노란 리본이 걸려 있었다.

고잔동에서 3년째 분식 장사를 하는 정주선씨(가명). 그는 "세 집 중 한 집이 애를 잃었는데 1년 지났다고 뭐가 달라지겠느냐"고 한숨을 쉬었다. 40대라는 정씨는 나이 밝히기를 꺼렸다. 그의 가게에도 해어져서 떼려다 결국 못 뗐다는 노란 리본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집에 가기 전에 정씨 가게에 들러 떡볶이를 사 먹곤 했다. "끼리끼리 다니던 아이들의 모습이 기억난다"던 그는 "알고 있던 아이 스무 명 정도가 한꺼번에 사라졌다"고 안타까워했다.

"동네가 작아 서로 다 알거든요. 아이 잃은 부모들이 걸어오면 괜히 상처만 후벼파는 거니까 서로 모른 척하고 지나가요. 자식 잃은 거는 평생 가는 거고 10억원을 준들 그 상처가 낫겠어요?" 주선씨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네 딸은 살았잖아 할까 봐 말 못해"

이유정(18·가명)양은 친한 친구들을 모두 잃고 홀로 고3이 됐다. 2년 전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단원고로 배정받은 절친들과 달리 유정양만 다른 고등학교에 갔다. 단짝과 좋아하던 남학생, 아침마다 등굣길을 함께하던 이웃집 친구 모두 세월호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유정양은 세월호 참사 이후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괜찮다가도 갑자기 친구들과 찍은 중학교 졸업앨범과 동영상을 꺼내 보며 우는 날이 반복됐다. 공부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2학기 학교 심리검사에서는 전문가 상담을 요하는 스트레스 지수가 나타났다. 해가 바뀌면서 진정되는 듯했던 유정양은 세월호 참사 1주기가 가까워지면서 다시 졸업앨범을 꺼내 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주위 사람들은 유정양 엄마인 박민주(46·가명)씨에게 "다른 학교 가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속삭였다. "딸을 잃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죠. 그렇지만 딸처럼 음식도 나눠 먹고 집안 사정도 다 아는 위아랫집 아이들이 한꺼번에 죽었어요. 다행이라는 말에 어떻게 그렇다, 옳다고 해요. 눈물만 나죠."

서로 집을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사라진 뒤 엄마들끼리도 서먹해졌다. 10년 넘게 한동네에 살면서 같이 쇼핑을 다니고 수다를 떨며 속내를 터놓던 사이였는데, 그 일을 겪고 나서는 모임도 뜸해졌다.

민주씨는 "아이를 잃은 이웃집 언니가 힘들어하는 것을 알아도 찾아가기가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저도 세월호 생각하면 지금도 몸이 떨리는데 그 언니한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못 말했다가 '너희 딸은 살아서 그러느냐'는 말을 들을까 봐 더 그래요. 동네 분위기가 꽉 막히고 가라앉아 있다고 해야 할까. 이사를 간 집도 많아요."

사태가 해결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동네는 조금씩 활기를 잃어 가고 있다. 주민들의 의견도 "그만하자"와 "유가족 뜻을 따라야 한다"로 갈렸다. "유가족들이 이미 10억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면 서로 싸우게 되니 이제는 말조심을 한다. 세월호 이야기 자체를 안 하는 것이다.

집단적 괴로움은 병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9일 아주대가 질병관리본부의 의뢰를 받아 수행한 '지역사회 건강조사 기반 사회심리 및 안전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 단원구 주민 11.6%, 상록구 주민 11.3%가 우울증세를 보였다. 10명 중 1명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셈이다. 같은 조사를 진행한 경기 남·북부나 진도보다 최대 7%포인트 높다. 특히 단원구의 우울경험률은 전국 1위였다. 연구를 맡은 아주대측은 세월호 참사 이후 부정적 영향이 나타났다는 점을 지적하고 정부 차원의 정신건강 대책 수립을 권고했다.

치유의 시작은 '진상규명'

보건복지부는 안산지역 주민과 유가족을 위한 트라우마 치료기관인 안산온마음센터를 고대안산병원에 위탁운영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에 따른 심리치유센터가 설립되기 전까지 임시 운영되는 형태다. 센터는 지역공동체를 강조한다. 센터가 개인에 대한 피해지원 외에도 지역공동체 회복을 위한 사업을 함께 벌이는 이유다. 지역시민단체와 주민센터를 연계한 지원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도 공동체 회복사업의 일환이다.

센터와 안산지역 시민단체들은 올해 2월7일 세월호 참사 극복을 위한 4·16 희망과 길찾기 안산시민 1천인 원탁토론회를 열고 대책 마련을 논의했다. 김선식 센터 지역사회지원팀장은 "지역주민들도 세월호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라졌다며 같이 힘들어했고, 주민들끼리 소통하고 유가족의 아픔을 공감하는 장치를 많이 마련하자고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김 팀장은 "유가족들이 돌아올 곳은 안산이고, 이들이 떠나면 안산에는 '세월호 도시'라는 상처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으로도 근본적인 치유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김정우 센터 가족심리지원팀장은 "심각한 사고를 당했으면 그 원인을 알아야 애도를 하면서 치유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데 지금은 원인이 안 밝혀졌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는 상태"라고 아쉬워했다. 진상을 제대로 규명해야 치유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산 주민들도 1천인 원탁토론회에서 세월호 참사 회복을 위해서는 진상규명이 가장 중요하다(38%)는 의견을 밝혔다. 이름 밝히기를 꺼려한 한 주민은 "하나씩 매듭을 지어 줘야 하는데 정부가 시간만 끌고 있으니까 혼란과 대립이 계속되는 것 같다"며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진상이 밝혀지고 문제가 하나씩 정리돼야 마음도 정돈될 것"이라고 말했다.

"추모 넘어 우리 스스로 전망 세워야"

민주노총 안산지부(의장 김영호)는 지난해부터 세월호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매주 촛불문화제를 열어 왔다. 이달 말에는 세월호 진상규명 투쟁 중간평가 토론회를 열 계획이다. 김영호 의장은 "세월호 참사를 극복하려면 슬픔이나 추모를 넘어 스스로 이유를 찾고 전망을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조합원 유가족들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적어도 노조가 할 수 있는 활동은 해야 하지 않겠냐"며 "지역적으로 한계가 있으니 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지난 7일 밤 안산지역 시민·노동자 40여명은 안산시청 맞은편에서 촛불문화제를 열었다. 반월공단 사업장에서 일한다는 장서준(33)씨도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참석했다. 서준씨는 "시간이 지나면서 공장에서 세월호 얘기가 나오지는 않지만 최근 특별법 시행령 얘기를 들으니 화가 나더라"며 "나도 아빠인데 이대로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곧 두 살이 되는 딸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자라길 바란다는 서준씨는 1시간 가량 계속된 촛불문화제 내내 굳은 얼굴로 자리를 지켰다. 그들은 세월호 참사 진상이 밝혀지고 아픔으로 짓무른 상처에 새 살이 돋아나기를, 그래서 멀지 않은 미래에 웃음을 되찾기를 오래도록 빌었다.

윤성희  miyu@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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