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정
변호사
(금속노조 법률원)

위장된 구속사유(apokryphen Haftgrunde)라는 개념이 있다. 법에 규정되지는 않았지만 구속사유 뒤에 숨어서 구속영장 청구나 발부 여부 결정에 개입하고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질적 구속사유를 뜻한다.

위장된 구속사유에는 △자백을 얻기 위한 수단 △협력을 얻기 위한 수단 △수사의 편의를 위한 수단 △치료를 위한 대용 수단 △위기 관여와 특별예방 △여론의 압력 등이 있을 수 있다.

현행 형사소송법 제198조1항은 “피의자에 대한 수사는 불구속 상태에서 함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하며 불구속 수사 원칙을 천명하고, 범죄 혐의가 객관적으로 소명되고 피의자에게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거나 도망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을 때에만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제70조).

따라서 앞에 예를 든 위장된 구속사유로는 피의자를 구속할 수 없다. 이를 이유로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발부하면 형사소송법 명문 규정에 위반될 뿐 아니라 무죄추정 원칙과 공판중심주의에 반하는 위법한 처사일 뿐이다.

그런데 앞에 든 위장된 구속사유례에 ‘노동운동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추가해야 할 듯하다. 얼마 전 쌍용자동차 굴뚝농성을 해제한 김정욱·이창근에게는 굴뚝농성을 해제한 경위 등 여러 사정에 비춰 증거 인멸 염려와 도망할 염려가 객관적으로 없었다. 검찰도 구속영장 청구서에 이들에게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든 예가 고작 고공농성 기간 중 발부한 출두요구서에 불응했다는 사실이었다.

고공농성이 해제되면 수사를 받아야 할 처지에 있었고 수사를 받을 의사가 있는 사람들에게 고공농성 기간 중 발부한 출두요구서에 불응했다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고 주장하는, 상식을 뛰어넘는 논리의 과감성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검찰은 이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사는 구속영장실질심사 법정에서 파르르 몸을 떨 정도로 열을 내며 “남의 집 담을 부수고 침입한 사람을 구속시키지 않으면 누구를 구속시키느냐”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적개심과 증오로 가득 찬 단어들을 장황하게 나열했다. 그 뒤에는 엄정한 법질서 확립을 위해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해 달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엄정한 법질서 확립'이라는 것 자체로는 구속사유가 될 수 없음에도 노동운동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세련되게 포장하기 위한 말로 사용한 것이다.

검찰이 김정욱·이창근을 구속시키려는 실질적 이유는 바로 노동운동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김정욱·이창근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다행히 기각됐다. 하지만 이성과 법리가 아닌 삐뚤어진 적개심과 증오로 노동운동 활동가들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가 남발되는 현실이 당분간 계속될 것 같아 씁쓸하기만 히다. 우리 노동운동이 바꿔야 할 게 많은데, 이러한 현실도 하루빨리 바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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