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전경

매일노동뉴스가 ‘사회적 대화가 지역을 움직인다’를 주제로 연중기획을 마련했다. 사회적 대화를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노사관계 안정, 사회통합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기사는 지역별로 두 차례씩 게재한다. 1회에서는 사회적 대화 현황과 지역이슈를 살핀다. 2회에서는 사회적 대화 시스템을 점검하고 노사정 대표자 연쇄인터뷰를 싣는다. 사회적 대화가 중앙 차원을 넘어 지역 노동현안을 해결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매개고리가 되기를 희망한다.<편집자>

“노동자들이 지금 7천만~8천만원을 받아요. 그럼 그들의 자녀 일자리는요? 다음 세대 일자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3일 광주광역시청에서 만난 윤장현 시장의 말이다.

최근 광주시가 한국의 볼프스부르크를 꿈꾸고 있다. 폭스바겐이 자리한 독일 볼프스부르크처럼 광주에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자동차밸리)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광주시는 기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 더해 광주와 전라남도 경계에 있는 빛그린산단(4천68제곱미터)에 완성차공장을 유치한다는 계획이다.

연봉 4천만원 내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떠나가는 청년들을 붙잡겠다는 구상이다. 윤 시장은 "모든 과정은 사회적 합의를 거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연 국내에 자동차공장을 세우겠다는 기업이 있을까. 기존 완성차 노동자 임금의 절반 수준이라는데 괜찮은 일자리가 맞나. 실질적인 사회적 합의는 가능할까.

광주시의 '담대한 실험'은 이제 첫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만일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사회적 대화를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제2의 자동차도시 광주

광주는 2012년 기준 지역내총생산(GRDP)이 1인당 1천910만원으로 16개 시·도 중 15위에 불과하다. 2013년 기준 청년층(15~29세) 고용률은 34.8%로 14위다. 청년들이 광주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광주시는 지역경제 활로를 '자동차'에서 찾고 있다. 광주지역에서 자동차산업 비중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2013년 기준 자동차산업은 광주지역 부가가치의 39.4%, 고용률의 22.2%를 차지한다. 지역 전략산업이다. 자동차산업 생산액은 2000년 1조9천억원에서 2012년 11조4천억원으로 6배 증가했다. 자동차산업 사업체는 2000년 49곳에서 2012년 127곳, 종사자는 같은 기간 7천명에서 1만4천명으로 늘었다.<그래프 1·2 참조>

주력은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이다. 광주공장은 연간 완성차 62만대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부품업체도 1차 협력업체 24곳을 비롯해 2차 협력업체 80여곳, 3차 협력업체 100여곳이 포진해 있다.

윤장현의 구상 ‘자동차밸리’

광주시는 지난해 11월7일 자동차산업밸리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정찬용 전 청와대 인사수석이 위원장을 맡았다. 정관계·경제계·학계·언론계 인사 150여명이 참여하고 있다.

올해 1월27일에는 전국에서 5번째로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가 문을 열었다. 센터는 현대자동차그룹과 손잡고 수소차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현대차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소차(투싼ix)를 양산하는 데 성공했다. 광주시가 자동차밸리에 친환경차 혁신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방침인 만큼 센터는 수소차 연구 중심기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2월6일에는 광주시 사회통합지원센터가 만들어졌다. 지원센터는 자동차밸리 조성과 광주형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통합(사회적 합의) 모델을 만들어 내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자동차밸리 조성을 위한 기초작업이 하나씩 진행되는 모양새다.

광주시가 자동차밸리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윤 시장이 당선 직후 “노사민정 대타협을 통해 연봉 3천만~4천만원대의 자존감 있는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윤 시장은 "광주형 일자리"라고 부른다.

광주시는 자동차밸리 조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두 바퀴’를 가동 중이다. 광주시 자동차산업과와 사회통합추진단이다. 모두 윤 시장이 당선 후 신설한 부서다. 윤 시장의 구상을 뒷받침한 사람은 사회통합추진단장을 맡은 박병규 전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장이다.

박 단장은 “광주지역 청년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더니 선호하는 일자리 임금이 연봉 3천500만원 수준이었다”며 “사회통합을 통해 자동차밸리를 조성하면 4천만원짜리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광주 자동차밸리 청사진 들여다보니

광주시 자동차밸리는 자동차전용 임대 국가산업단지와 친환경차 혁신크러스터로 구성된다. 2016년부터 2021년까지 6년간 총사업비 8천347억원을 투입한다. 국가산단에는 완성차업체·부품업체를 입주시키고 혁신클러스트에는 융합전장부품종합지원센터·그린 오토비즈센터 등을 둘 계획이다.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나 디젤차량과 수소차 등 특화된 유망기술 개발도 추진한다.

광주시는 “기아차 광주공장 주력 생산차종은 스포티지·쏘울·뉴카렌스 등 SUV가 대부분”이라며 “인도를 비롯한 신흥시장(동아시아)에서 SUV 수요가 연간 5.7% 증가하고 있는 만큼 광주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광주시는 자동차생산 분야에서 전국 최고의 노동생산성을 갖고 있다. 기아차 광주공장의 1인당 생산대수는 연간 79대로 전국에서 가장 높다. 반면 노사분규는 2011년 1건·2012년 2건·2013년 1건에 머물러 있다. 지난해에는 6건으로 다소 올랐다.

전통적으로 광·가전·IT산업이 주력산업인 데다, 산업 간 융복합과 제조업 발전 가능성도 높다. 인근 목포항이 자동차 전용부두를 갖추고 있어 인도·동남아 수출에 최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광주시는 광주지역에서만 생산 9천465억원, 부가가치 4천175억원, 고용창출 6천884명이 유발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동차산업과 관계자는 “친환경차 생산기반을 광주 자동차밸리에 조성하게 되면 해외공장에 대해서도 마더플랜트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광주시는 자동차밸리 국고지원을 위해 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한 상태다. 자동차 100만대 생산기지와 친환경 그린카 클러스터 조성은 박근혜 대통령 공약사항이다.

볼프스부르크·슈투트가르트 모델 주목

광주 자동차밸리를 통한 일자리 창출 모델은 독일 볼프스부르크·슈투트가르트 모델과 비슷하다. 예컨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사회적 합의를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다.

윤 시장은 지난해 지방선거 전 슈투트가르트를 방문해 일자리 구상을 했다고 한다. 윤 시장은 “경제위기를 맞았을 때 미국 디트로이트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대처방식이 달랐다”며 “슈투트가르트는 사회적 합의 시스템이 마지막 경쟁력이자 생존력이라는 것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벤츠·포르쉐 공장이 들어선 슈투트가르트는 노사합의와 지역협력네트워크를 통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1990년대 경제위기를 극복했다.

반면 북미 최대 자동차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노사가 대립해 자동차공장이 하나둘 떠났고, 인구감소와 재정적자를 견디다 못해 2013년 파산했다.

광주시는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아우토5000 모델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폭스바겐 노사는 90년대 말 경영위기가 찾아오자 2년간 협상을 한 끝에 아우토5000을 설립했다. 본사 직원 인건비 삭감과 고용안정에 합의했다.

회사는 5천명을 새로 뽑았는데, 월급은 본사의 80% 수준인 5천마르크(약 350만원)로 제한했다. 그 뒤 품질을 높이고 인기차종을 만들면서 판매 목표치를 넘어섰다. 지금은 본사 직원보다 많은 임금을 받고 있다. 지난달 6일 출범한 사회통합지원센터가 관심을 기울이는 대목이다.<상자기사 참조>

갈 길 먼 광주 자동차밸리

하지만 광주 자동차밸리로 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다. 3천만~4천만원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애초 기아차 광주공장 평균연봉 9천500만원(2013년 기준)의 절반 수준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봉주 민주노총 광주본부장은 “동희오토처럼 거의 비정규직으로만 채우는 공장을 만들겠다는 것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5년에서 10년만 지나면 정규직 임금 하향평준화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해 박병규 단장은 “광주형 일자리는 연봉 4천만원을 받고, 비정규직이 없으며, 노동창의적인 작업장·공동육아시설을 갖춘 전혀 새로운 일자리 개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에서는 완성차업체가 국내에 공장을 세우겠냐는 의문도 제기된다. 지난 10여년간 국내에 새로운 완성차공장이 들어선 곳이 없는 탓이다. 완성차업체들은 해외공장 투자에 열을 올리고 있다.

투자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오는 배경이다. 최정열 한국노총 광주본부 수석부의장은 “사회적 합의는 광주 노사관계가 좋지 않다는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노사정 대화를 통해 지역발전과 통합을 이룬다면 기업에서도 자동차밸리 조성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초점은 현대차그룹으로 모아진다. 국내에 공장설립 능력을 갖춘 곳이 사실상 현대차그룹밖에 없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차그룹은 광주시의 러브콜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광주시는 "투자유치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자동차산업과 관계자는 “올해 1월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8년까지 81조원을 투자하되 이 중 76%인 61조2천억원을 국내에 투자한다고 밝혔다”며 “장기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광주시는 사회적 합의가 투자유치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회적 합의는 가능한가

윤 시장은 자동차밸리 조성을 위해 노사민정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해 왔다. 광주시 노사정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일까. 광주시가 생각하는 사회적 합의는 어떤 걸까.

광주시에는 노사민정협의회가 구성돼 있다. 지난해 12월2일 제3기 노사민정협의회가 출범했다. 위원장을 맡은 윤 시장은 이날 “자동차밸리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노사민정의 협조를 바란다”며 “노사민정협의회가 사회대통합을 위한 소통의 장이 되도록 운영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노총 광주본부와 광주경총은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최정열 광주본부 수석부의장은 “지역경제가 취약한 광주에서 자동차는 다른 제조업보다 좋은 일자리”라며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해 다른 시·도로 가는 상황에서 자동차밸리 조성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윤영현 광주경총 상임이사는 “지역민이 먹고사는 문제인 만큼 자동차밸리 추진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노사관계 안정을 통해 자동차 100만대 생산이 앞당겨지도록 경영계도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민주노총은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박봉주 본부장은 “현재까지 나온 광주형 일자리 구상을 보면 매우 우려스럽다”며 “비정규직을 염두에 둔 공장이라면 결사반대”라고 강조했다.

반면 민주노총 소속 기아차지부 광주지회(지회장 이기곤)는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광주지회는 지난해 11월 △완성차-부품사 동반성장 △전기차·수소차 등 3세대 자동차 모델 생산 △완성차·부품사·연구개발 공존하는 제3부지 조성 △위험·위해작업 자동화 공장 △비정규직 없고 여성고용 확대 등 새 공장이 갖춰야 할 8개 요구항을 제시했다.

이기곤 지회장은 “자동차밸리와 광주형 일자리 추진 방향이 틀리지만 않다면 사회적 대화를 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생산성과 임금만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까지 논의한다면 괜찮은 방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현재 자동차밸리추진위에 참여하고 있다. 추진위 실무팀에는 지회 정책담당자를 보낸 상태다.

광주시 실험 성공의 조건

전문가들은 우선 새로운 생산방식과 노사관계 모델을 제시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조언한다.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1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소득주도 성장과 광주형 일자리' 토론회에서“국내 자동차산업의 최대 문제점인 갈등적 노사관계와 저효율 생산공장 운영을 넘어서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며 “광주시가 새로운 생산방식과 노사관계의 선도자 역할을 자임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전순옥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이상호 보좌관은 “광주형 일자리는 4천만원짜리 중규직이라고 표현하는 순간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다”며 “노사를 모두 설득하고 투자를 유치해 낼 수 있는 괜찮은 일자리 모델로 접근하면서 발전시켜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고부가가치와 고품질 차종을 생산해 내는 4천~5천명 규모의 혁신적인 신공장이 최상의 모델”이라고 말했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현재 노동배제적인 자동차 생산방식이 지속가능한 방식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야 한다”며 “노사가 합의할 수 있는 새로운 생산방식과 일자리 모델을 제시한다면 국내 자동차공장 유치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광주시는 전문가들이 지적한 새로운 모델을 만들기 위해 6월까지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다.

윤 시장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날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 광주시의 실험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어떤 결실을 맺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상자] “광주형 일자리 창출 위한 사회통합 모델 만들겠다”
사회통합지원센터 다음달 독일 볼프스부르크·슈투트가르트 방문

광주시는 자동차밸리 조성을 통해 광주형 일자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사회통합(사회적 합의)을 관건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6일 사회통합지원센터(센터장 김상봉)를 출범시킨 배경이다.

센터는 사회통합 모델을 만드는 싱크탱크 역할을 한다. 광주시 사회통합 추진방안을 연구·학습하고, 범시민 참여·공감대 확산을 위한 교육·홍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전남대 철학과 교수인 김상봉(57·사진) 센터장은 “한국 사회에서 일정한 계약과 합의, 연대를 통해 새롭게 통합을 이뤄 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며 “노사 간 화해와 상생에 기초한 새로운 일자리와 노사·기업 모델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센터는 다음달 말 ‘각국의 기업지배구조와 노사관계’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한다. 한국의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노사관계 모델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센터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아우토5000 모델도 분석할 계획이다. 김 센터장은 “폭스바겐 노사는 임금을 덜 받고 고용을 늘리는 데 합의했다”며 “폭스바겐 노동자 임금의 80% 수준을 받는 공장을 국내에 짓고 새로운 자동차 모델 티구안을 성공시켜 3년 만에 폭스바겐과 같은 임금조건을 만든 아우토5000을 벤치마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슈투트가르트 모델은 지역 노사정과 종교·정치·언론 등 각계가 지역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협의체를 구성한 포괄적 참여민주주의 또는 협의민주주의 사례”라며 “이 역시 벤치마킹할 대상”이라고 전했다. 센터 관계자와 노동계·시의원·언론인은 다음달 초 볼프스부르크와 슈투트가르트를 잇따라 방문한다.

김 센터장은 광주형 일자리에 대한 일부 노동계의 불편한 시선에 대해 “중요한 것은 노동을 하면서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라며 “잔업과 야근 등 초과근로를 통한 고임금 구조가 정상은 아니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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