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학업을 마치고 1년 만에 귀국했다. 이주호 단장은 국제노동기구(ILO)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독일노총(DGB)의 후원으로 독일 카셀대학(Kassel)·베를린 경제법학대학(HWR Berlin)에서 '노동정책과 세계화'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박근혜 정부는 독일 경제모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의 바이블로 보는 경향도 나타난다. 과연 그럴까. <매일노동뉴스>가 이주호 단장의 독일 유학기를 연재한다. 이 단장은 연재를 관통하는 제목을 '노동존중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라고 썼다. 매주 목요일자에 11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독일노총(DGB) 청년캠프에 참가해 독일 노조 상근활동가들을 만났다. 그들의 경력과 노동조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주호
▲ 통합서비스노조 상근활동가 개인 사무실 전경. 근무공간은 1인 1실이 원칙이다. 이주호
▲ 통합서비스노조 베를린 본부 내부 전경. 복도 양 옆으로 개인 사무실이 있다. 이주호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통합서비스노조 상근 활동가들의 놀라운 노동조건과 대우는 사업장협약 10조에서도 확인된다. 협약에 따르면 초과근무시 시간외수당은 평일에 30% 할증되고 오후 8시에서 다음날 오전 6시 사이 야간근무에는 50% 할증된다. 일요일 근무에는 50%, 법정공휴일에 일하면 100% 할증된다.

독일의 시간외수당은 우리보다 높지 않다. 잔업 근무는 돈보다 시간으로 보상하는 것이 원칙이라서 그렇다고 한다. 즉 초과근무는 돈으로 높은 보상을 하기보다 원칙적으로 이에 상응하는 청원휴가로 대체된다. 다만 우리와 달리 시간대별로 할증률에 차이를 뒀다. 평일과 휴일, 시간대별로 할증률의 차이를 둔 것은 잔업과 밤 근무가 인체공학적으로나 사회문화적으로 노동자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임금수준이 궁금해 11조 임금 조항을 보니 월별로 산정한다고만 언급돼 있고, 실제금액은 명기돼 있지 않다. 아마 단체협약에 규정돼 있는 듯하다. 내가 아는 한도에서 많은 국가들이 상근활동가의 임금은 조합원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한다. 통합서비스노조는 상근 활동가가 3천여명인데, 규약상 인건비가 전체 사업비의 50%를 넘지 않도록 상한선을 두고 있다. 독일은 직무급 임금체계라서 상근활동가들이 경력·교육 수준이 높은 만큼 조합원 평균임금 이상을 받고 있다고 한다.

상근활동가는 업무 영역에 따라 정치서기와 행정서기로 나뉜다. 노조 내부 행정지원과 보조업무를 주로 하는 행정서기는 평균임금을 약간 상회한다. 현장 출신으로 그 경험이 10여년이 넘거나, 대학을 졸업한 경우가 대다수인 정치서기는 노조에서 조직활동과 정치사업을 주로 한다. 그들은 행정서기의 1.5배, 사무직 중간계층 이상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14조는 사망급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상근활동가가 사망할 때 재직기간이 5년 이하일 경우 3개월분의 월급을, 5년을 초과할 경우 6개월분의 월급을 지급한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의 경우는 6개월분의 월급을 준다. 그리고 장례비용으로 세전 5천유로 상당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15조는 질병발생시 임금보전 조항으로 우리나라 노조에는 없는 항목이다. 상근활동가가 근로능력을 상실할 경우 임금은 6주간 계속 지급된다. 한국은 발생한 비용만 보상하지만 독일은 소득손실까지 보상한다. 재직기간에 따라 3년 이상 7주, 5년 이상 20주, 8년 이상 33주, 10년 이상 46주, 15년 이상 72주의 임금을 수령한다. 또 질병금고에 의해 다양한 액수의 세후 임금을 기준으로 한 보조금이 지불된다.

협약에는 노동조건뿐만 아니라 상근활동가 인사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 모든 상근활동가에 대한 인사기록은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인사부서 담당자만 작성할 수 있도록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작성 내용은 협약에 따라 결정하도록 돼 있다. 상근활동가는 인사기록카드를 기록할 때 자신에게 부당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불만과 의견을 적극 개진할 수 있다. 부서도 자신의 지식과 능력에 따라 기대 가능한 업무영역과 업무장소로만 이동할 수 있다.

부업은 인정되지만, 서면 동의서를 통해서 임금이 지급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통합서비스노조의 목적과 임무에 반하는 부업은 금지된다. 21조는 노조활동으로 인한 피해자 구제사항을 언급하고 있다. 노동조합 활동으로 인한 징역·금고·구류를 당한 상근활동가에게는 임금이 계속 지급되며, 노조활동으로 인한 과태료와 벌금도 노조가 책임진다.

4조는 근속기간 관련 조항이다. 통합서비스노조 관련 현장과 관련시설, 나아가 독일노총과 산하 단위노조 활동기간도 모두 근속기간에 포함된다. 근속기간에 포함되는 기관도 자세히 명시하고 있다. 해당 조항을 보면 통합서비스노조에 어떤 부설기관이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노조 자산관리회사·부동산회사·출판서점·교육기관·컨설팅 회사·혁신기술회사·언론사·정책교육기관·노조 유한회사 등이 부설기관으로 명시돼 있다. 산별노조 규모가 큰 만큼 별의별 부설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상근활동가는 장기근속을 기념해 10년에 500유로, 25년에 750유로, 40년에 1천유로(140만원·세전금액)를 지급받는다.

시간제 활동가와 견습생(직업학교)도 전일제 활동가와 마찬가지로 협약을 적용받는다. 독일 노동통계를 볼 때마다 늘 우리와 상황이 달라 혼란스러운데, 대다수가 정규직인 시간제 노동자 때문이다.

노조 채용 상근자는 통합서비스노조 조합원이자, 동시에 상근활동가라는 특수한 신분인 만큼 노동자로서 보호받는 권리를 연방집행위원회와 총종업원평의회가 맺은 별도 협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상근활동가에 대한 권리는 통합서비스노조 정관에 따라 조합원에게 제공되는 요소와 동일하다. 별도 협약에는 상근활동가의 권리보호 신청을 연방집행위원회의 법무팀에서 결정한다는 내용을 포함해 자세한 신청 절차와 변호인 선택, 소송비용을 규정하고 있다.

통합서비스노조 사업장협약처럼 독일 산별노조에서는 채용 상근활동가들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구체적으로 노동조건을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노동자들의 노동시간단축을 위해 싸우는 상근활동가들이 가장 긴 시간을 일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임금인상을 위해 싸우는 상근활동가들의 임금수준이 조합원 평균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게 솔직한 현실이다. 어느 비정규 노동자 투쟁을 담당했던 노조 채용 ‘정규직’ 간부에게 비정규 노동자가 논쟁 중 노동관료라고 비판했다가 나중에 자신보다 더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사과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노조 전임으로 잠시 활동한 뒤 노동운동에 꿈을 품고 상근활동가로 커 나가려고 하면 늘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이 발목을 잡는다. 독일처럼 현장에서 근무하다가 노조활동에 뜻을 둔 노동자가 지속적으로 활동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최소 조합원 평균 수준 또는 그 이상의 임금과 노동조건을 보장해야 한다.

최근 학생운동 침체로 이전과 같은 경로로 노조활동가를 충원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현장 간부들이 자연스럽게 노조에 채용돼 활동할 수 있는 조건, 그리고 외부에서 박사 등 전문가들이 학계와 비슷한 임금으로 노조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는 임금수준과 노동조건을 적극 고민해야 한다. 더불어 보다 체계적인 채용방식과 인사관리, 역량강화를 위한 전문적 교육훈련체계를 수립하고, 의견수렴을 위한 내부 소통구조 확보 등 상근활동가들에 대해 보다 전략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것들이 추진될 때 인재들이 노조로 와서 일하고 그런 역량이 노동운동 전체 발전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한국의 노조 채용 상근활동가들도 자기 혁신과 더불어 노동과 산업의제에 대한 전문성과 실력을 갖추기 위해 더욱더 노력해야 한다. 노조 상근활동가들이 내부 선거구도와 정파로부터 독립돼 중립적 위치에서 대중조직 중심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상호 간 신뢰 속에 이런 문제의식과 움직임이 더욱 탄력을 받으면서 추진될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