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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기획-2015년 봄, 다시 70년대 여공을 만나다] 바람·햇빛도 들지 않는 공장에서 최저임금에 우는 엄마들‘타이밍’으로 버티던 그들 ‘타이레놀’로 아픔 참아 … 레이테크코리아 포장부 '참혹한 노동현장'
   
▲ 레이테크코리아 여성노동자들이 지난 6일 서울 중구 신당동 사업장에서 스티커와 라벨지 포장작업을 하고 있다. 접착제 냄새가 진동했다. 별다른 환기장치는 없었다. 노동자들은 조회시간에 "우리는 마루타가 아니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정기훈 기자

   
▲ 아침 체조 시간이다. 공간이 좁았지만 재주껏 자리를 잡았다. 상자 모서리에 손을 다칠까, 쭉쭉 펴지를 못했다. 그래도 몸 걱정에 빼먹지 않는 시간이다. 정기훈 기자
   
▲ 노조는 휴게실을 요구했다. 회사는 휴게실을 만들었다. 비품 창고로 쓰던 곳에 의자와 탁자를 들여놨다. 드나들기도 쉽지 않았다. 정기훈 기자
지난 6일 아침 서울 신당동 남산타운상가. 이런 곳에도 공장이 있나 싶어 연신 두리번거리다 건물을 겨우 찾았다. 계단을 올라 3층에 닿으니 40~50대 중년 여성 한 무리가 이쪽이라고 손짓을 한다.

“열쇠 말고 번호키를 해 달라고 해야겠어.”

“흥! 사장이 퍽이나 해 주겠다.”

때마침 열쇠를 갖고 있던 또 한 명의 중년 여성이 당도했다. 능숙한 몸놀림으로 문틀을 딛고 올라서서는 팔을 뻗어 열쇠 구멍에 키를 꽂아 돌린다.

“냄새 때문에 머리가 아플 텐데. 그래도 들어가 보시겠어요?”

창문 하나 없는 스물세 평 공장의 현관문이 열렸다. 밤새 공장 안에 머물러 있던 본드냄새가 확 밀려온다. 비릿하니 기분 나쁜 냄새다. 1970년대 평화시장 여공들이 ‘타이밍’을 먹으며 잠과 싸웠던 것처럼, 이곳의 직원들은 ‘타이레놀’을 먹으며 두통과 싸우고 있다.

공장 안 풍경은 더욱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꼬마병정 그림이 그려진 어린이용 스티커와 사무용 견출지가 든 박스들이 비좁은 공간을 메우고 있다. 몸을 옆으로 비틀지 않으면 지나다니기도 힘들다. 도떼기시장도 이보다는 낫겠다 싶다.

이곳은 ㈜레이테크코리아 포장부 소속 여성노동자 스무 명의 일터다. 본사는 경기도 안성에 있고, 포장부만 따로 서울에 나와 있다. 여성노동자들은 회사에서 작업대랍시고 놓아 준 좁은 탁자나 독서실용 책상에 앉아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스티커를 포장한다. 기계나 설비 따윈 없다. 모든 작업은 이들의 주름진 손을 거친다.

“마루타가 아니다. 건강할 권리 보장하라. 투쟁! 투쟁! 투쟁!”

아침조회가 시작됐다. 포장부 팀장인 동시에 금속노조 레이테크코리아분회 수석대의원을 맡고 있는 이필자(52)씨가 구호를 선창한다. 곧이어 누군가의 스마트폰에서 국민체조 구령과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우성이 터져 나온다.

“좁아서 팔을 못 펴겠어.”

“조심해. 그러다 박스에 얼굴 찍힐라.”

이럴 때 한 명쯤은 반드시 남들과 반대방향을 향해 팔·다리를 뻗기 마련이다.

“에잇. 오늘도 또 부딪혔네. 언니 미안~ 까르르 까르르.”

예의 본드냄새와 하이톤 웃음소리가 묘한 하모니를 이뤘다.

오십 넘어 처음으로 월급 받는 직장에 들어왔는데…

바람도 햇빛도 들지 않는 밀폐된 공장까지 흘러든 여인들 가운데 사연 없는 이가 있으며, 어렵지 않은 이가 있을까. 가장 연장자라는 김경옥(55)씨의 삶도 그랬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열아홉에 큰아들을 낳았다는 김씨는 스물여덟 꽃다운 나이에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이 죽고 난 뒤 보름 만에 보따리장사에 나섰다. 화장품 판매였다. 그때만 해도 ‘방판’(방문판매)이 대세였다. 여행가방 가득 화장품을 싣고 이집 저집 문을 두드렸다.

“화장품 방판을 십년 넘게 했어요. 그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끌고 다니면서. 그러다가 동대문 흥인시장 구석에 월세 가게 하나 얻어 장사를 시작했죠. 자금이 없으니 외상으로 화장품 떼어다가 그걸 또 외상으로 팔고. 그마저도 2000년대 초반 흥인·덕운시장 재개발 바람이 불면서 손해만 보고 떠밀려 나왔네요. 외상값 받으려면 차비가 더 들어갈 판이었으니까.”

좋았던 적이 없었으니 나빠질 것도 없는 삶은 그 뒤로도 계속됐다. 자유로에서 토스트를 구워 파는 노점을 했지만 벌어들인 돈보다 벌금으로 토해 낸 돈이 더 많았다. 식품위생법을 어겼다며 공무원들은 한 번에 100만원도 넘는 벌금을 매겼다. 많든 적든, 때 되면 월급이 들어오는 일이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오십 줄에 접어든 아줌마를 누가 써 주랴. 그래도 청소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제 겨우 오십인데….’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들어간 곳이 학생용 공책을 만드는 공장이었다. 2년6개월을 다녔다. 일이 손에 익어 기계를 다루게 됐을 즈음에는 월 130만원 정도를 받았다. 이 정도가 어디냐 싶었다. 그런데 걸핏하면 임금이 밀렸다. 2013년 1월 김씨는 53세의 나이에 레이테크코리아 포장부로 이직했다.

“월급은 먼저 회사만 못해요. 딱 최저임금만큼 주니까. 그래도 회사에서 나가란 소리만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노후준비는 엄두도 못 내고, 버는 족족 입에 털어 넣기 바쁘게 살았는데….”

김씨는 만 55세가 되는 올해 10월이면 정년을 맞는다. 일곱 달 남았다. 회사는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직원에 한해서만 정년을 늘려 주고 있다. 노조를 탈퇴할 생각은 해 보지 않았을까?

“여성 탈의실에 CCTV를 설치했다가 방송까지 나왔던 회사예요. 사장이 직원들 일하는 곳에도 CCTV를 달아 놓고 누가 화장실에 자주 가는지, 누가 물 마시러 많이 가는지 하루 종일 감시했을 정도예요. 그나마 노조가 생긴 뒤로 CCTV는 없어졌어요. 직원들 간에 의지도 되고….”

오래 일할수록 기본급 깎는 '이상한 회사'

김씨의 말처럼 레이테크코리아는 여성 탈의실 CCTV 사건으로 유명세(?)를 탄 회사다. 그뿐이 아니다. 2013년 6월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려다 직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실패한 뒤 사사건건 노조와 갈등을 빚고 있다. 회사는 공장을 서울 신당동에서 경기도 안성으로 이전하고, 통근차량도 없앴다. 원거리 출퇴근이 어려운 주부사원들을 지쳐 떨어지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그런데 회사 예상이 빗나갔다. 여성노동자들은 식구들 아침밥을 못 챙기는 한이 있어도 출퇴근은 포기하지 않았다. 몇 달을 새벽별을 보며 출근길에 올랐다. 빛도 바람도 들지 않는 지금의 공장은 이들이 투쟁으로 쟁취해 낸 것이다. 힘 모아 싸우지 않았다면 아직도 안성으로 출퇴근하거나, 뿔뿔이 흩어졌을 것이다.

오옥주(53)씨는 2008년 이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들어왔다가 이듬해 정규직이 됐다. 정규직이라고 해 봤자 최저임금 수준인 기본급에 근속수당·직책수당·식대가 전부였다. 전부 합쳐도 월 140만원이 안 됐다.

“아가씨 때 사무직으로 일하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88년에 결혼했어요. 그 뒤론 아들 둘 낳고 살림만 하다가 큰애가 고2 올라가던 해에 이 회사에 들어왔죠.”

요샛말로 경단녀(경력단절여성)다. 집에서 가까운 회사를 찾던 중 레이테크코리아를 알게 됐다. 정규직이 된 해부터 따지면 근속 6년차에 직급은 팀장이다. 그런데 회사에 갓 들어온 신입 직원과 월급이 같다. 노조가 설립된 뒤 회사가 듣도 보도 못한 임금체계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기본급과 근속수당·직책수당을 모두 합친 총액을 최저임금 수준에 맞춰 버린 것이다.

“1월에 제가 받은 세전 급여가 126만원인데요. 기본급 103만원·직급수당 10만원·근속수당 3만원·식대 10만원을 합친 금액이에요. 법정 최저임금이 월급 기준으로 116만6천220원이잖아요. 거기에 식대 10만원을 얹어 주는 거죠.”

총액을 정해 놓고 기본급을 정하다 보니 회사에 오래 다녀 근속수당이 오르거나 승진에 따른 직급수당을 받는 직원은 오히려 기본급이 깎인다. 회사는 식대마저 없애자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게 하더라도 최저임금은 지키고 있으니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복도에 쫓겨나 밥 먹는 엄마들 “밥은 앉아서 먹자고요!”

남산타운상가 포장부 공장 한쪽 구석에는 3.3제곱미터가 될까 말까 한 용도불명의 공간이 있다. 가정집 보일러실보다 좁은 이곳엔 싸구려 간이테이블 한 세트가 놓여 있다. 회사는 이곳을 ‘휴게실’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는 “휴게실이라고 써 붙이지 않으면 업무명령 불이행으로 중징계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황당한 일을 열거하자면 끝이 없다. 회사는 공장 정문 앞에 ‘음식물 반입금지’ 팻말을 붙였다. 공장에서는 밥은 물론이고 커피 한 잔도 마셔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업무공간이니 음식 반입을 금지한 것까지는 좋습니다. 그러면 식사를 할 수 있는 식당을 마련해 주든지, 직원들이 모두 들어갈 수 있는 휴게실 정도는 설치해 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이필자 분회 수석대의원은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에 말문이 막혔다.

“지난 겨울 직원들이 어디서 점심을 먹었는지 아세요? 상가건물 복도에 서서 먹었어요. 사장이 걸핏하면 찾아와서 음식물 반입하지 말라고 닦달을 하니까요. 식대 10만원 받으면서 남들처럼 끼니마다 사 먹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집에서 먹던 반찬에 국물을 싸 와서 나눠 먹는데 앉아서 먹지도 못하게 하니….”

식사공간을 놓고 노사는 이런 식의 공방을 몇 차례 벌였다. 결국 회사 사장은 “3월 말까지만 공장 안에서 밥을 먹고, 4월부터는 다시 음식물 반입을 금지한다”고 결정했다. 고양이가 쥐 생각해 주는 격이랄까.

<전태일 평전>을 보면 평화시장 여공들의 참담한 노동실태를 소개하는 대목이 나온다. “무슨 말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저 참혹한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조가 제107주년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전국의 여성노동자 283명에게 희망사항을 물었다. 정규직화(39.2%)·임금인상(23.3%)·최저임금 인상(11.3%)이라는 응답이 각각 1·2·3위를 차지했다.

무슨 말로 끝낼 수 있을까, 저 참혹한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2015년판 여공들의 참담한 현실을 끝내기 위한 해답은 이 안에 있다.

구은회  press79@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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