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석우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공인회계사)

땅굴파기(Tunneling)라는 경제학 용어가 있다. 마치 땅굴을 통해 물건을 빼돌리듯이 기업의 이익이나 자산을 지배주주의 이익을 위해 빼돌리는 행위를 의미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집단의 이른바 ‘총수’가 그 기업집단의 이익을 특정 기업에 몰아주면서 재산(및 기업의 경영권)을 편법으로 상속하는 것을 목적으로 이러한 땅굴파기를 자행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인수합병(M&A)·전환사채(CB)·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 자본거래를 활용한 땅굴파기가 유행했지만, 이 같은 행위 중 일부가 배임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되고 어떠한 형태든 자본거래 등을 통해 기업의 이익이 특수관계자에게 이전된다면 증여세를 부담시키도록 세법이 개정되자(완전 포괄주의 과세) 이번엔 일감 몰아주기가 시작됐다.

기업집단의 총수는 자녀를 최대주주로 한 회사를 차린다. 그 회사는 물류·구매대행·핵심소재 생산 등 기업집단 내에서 필수적인 기능을 담당하도록 한다. 그 후 자신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기업집단 소속 회사들을 총동원해 일감을 몰아주고 높은 대가를 지불한다. 2011년 금융감독원 등의 자료에 따르면 자산 기준 30대 그룹 총수의 자녀가 대주주로 있는 20개 비상장 계열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50%에 가까울 만큼 일감 몰아주기가 성행하고 있다.

이러한 행위에 대해 정부는 2007년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행위로 규정했지만 처벌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가운데 2013년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제23조의2(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제공 등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했다. 상법의 경우 2011년 개정에서 제397조의2(회사의 기회 및 자산유용금지) 조항을 신설해 이사가 이사회 승인 없이 회사의 이익이 될 수 있는 사업기회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고, 이를 위반해 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이사와 이를 승인한 이사에게 연대책임을 지우고 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의 경우에도 최근 제45조의3(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를 통한 이익의 증여의제) 조항을 신설해 위와 같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이익의 일정 비율을 증여로 보고 세금을 부과한다.

그런데 이러한 땅굴파기가 노동자들의 삶과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일련의 장기투쟁 사업장 폐업과 정리해고 사건을 검토해 보니, 최근 이러한 땅굴파기 기법을 활용해 회사 또는 사업부의 재무적 위기를 유발시켜 폐업에 이르게 하거나 인력 구조조정의 명분을 얻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회사를 잘 경영하기는 어려워도 망가뜨리는 것은 너무도 손쉬운 일이다. 대중들에게 기륭전자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렉스엘이앤지가 대표적인 경우다. 전현직 대표이사 송재조와 최동열은 한때 연매출 2천억원에 달했던 건실한 제조업체를 각종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인수하고, 그 과정에서 기륭전자로 하여금 최동열 소유의 중국법인을 매우 비싼 가격에 인수하도록 함으로써 회사의 자산을 빼돌렸다. 회사의 가산동 부동산 등 돈이 되는 모든 자산을 외부에 매각했고, 회사의 사업기회는 다른 법인이 수행하도록 하면서 기륭전자는 이제 껍데기만 남게 됐다.

이런 상황에 이르렀다면 이미 늦었다. 끈질긴 투쟁 끝에 복직을 쟁취해 내더라도 회사는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항상 눈을 부릅뜨고 있어야 한다. 인수합병 등 자본거래를 통해 회사 자산이 부당하게 유출되지는 않는지, 회사가 자신의 사업기회를 다른 회사에 넘기면서 회사에 마땅히 귀속돼야 할 이익이 대주주 등 제3자에게 이전되지는 않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재무제표 분석은 필수다. 공시된 재무제표와 (상장기업의 경우) 사업보고서 등에는 생각보다 유용한 데이터가 많다. 그 회사의 재무제표뿐만 아니라 관계된 모든 회사의 재무제표를 분석해야 한다. 이러한 데이터를 활용해 노동조합은 회사의 부정행위 징후를 포착하고 공정거래위원회·국세청·검찰·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에 진정·고소·고발 등을 활발히 제기해야 한다. 그들은 증거가 없으면, 떠먹여 주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상장기업의 경우 주주대표소송 제기도 고려해 봐야 한다. 그것은 회사의 장기적인 존속과 안정적인 일자리 보장을 위해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노동조합 스스로가 해야만 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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