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약았다. 박근혜 정부 말이다. 소득불평등이 세계적 이슈가 되자 정부는 소위 초이노믹스라 불리는 중기 경제정책을 통해 한국 소득격차의 핵심을 기업과 가계소득의 격차로 규정했다. 그런데, 이게 알고 보면 꼼수다.

기업 내부에 유보되는 이익인 기업소득은 2000~2013년 세 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임금·자영업자이익·재산소득으로 구성되는 가계소득은 두 배도 늘지 않아 결국 기업들만 나아지고 시민들 살림살이는 별로 나아지지 못했다는 것이 정부 주장의 요지다.

현상은 맞다. 하지만 문제는 원인이 뭐냐다. 정부는 기업들이 임금을 높이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임금을 높이는 기업에게 세제혜택을 주고,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원인 진단과 해법 모두 틀렸다.

먼저 기업소득이 크게 증가한 것은 기업 모두가 돈을 잘 벌어서가 아니라 일부 대기업이 잘나가서다. 2013년 기업순소득은 176조원인데,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 상위 20개 기업(상장기업 기준)이 44%를 차지한다. 2002년에는 해당 비중이 32%였다. 특히 지난 10년간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엄청난 성장이 기업소득을 크게 늘렸다.

다음으로 가계소득 감소는 임금정체,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하위소득자로 갈수록 임금소득증가율이 더 떨어지는 임금격차의 극단적 확대가 원인이었다. 근로소득을 상위 10%와 나머지로 구분해 보면 2006~2013년 상위 10%의 연평균 임금은 8천만원에서 1억원으로 2천만원 증가한 반면 나머지 90%는 1천900만원에서 2천300만원으로 400만원 느는 데 그쳤다.

하위소득자로 갈수록 임금정체가 심했는데, 물가를 고려해 지난 4년 정도만 보면 연간 3천만원 이하 근로소득자가 2010년 430만명에서 2013년 535만명으로 증가했다. 근로소득이 상위소득자뿐 아니라 하위소득자 사이에서도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다.

가계소득 감소의 또 다른 중요한 원인은 자영업자의 소득급감이다. 국민소득통계에 나타나는 자영업자 소득은 2002년 105조원이었는데, 2013년 118조원으로 실질 통화가치로 보면 30% 줄었다. 자영업종사자수(경제활동인구조사)가 같은 기간 800만명에서 700만명으로 14% 줄어든 것을 감안해도 수입 자체가 급감한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연평균 소득은 1인당 1천700만원에 불과하다.

정리하면 이렇다. 정부가 기업과 가계의 소득격차라는 말로 퉁친 소득불평등의 실제 핵심은 재벌과 국민 90%의 문제다. 이걸 뜯어고치려면 재벌이 독식한 부를 재분배해야 하는데, 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을 흔드는 일이 된다. 그래서 박근혜 정권은 핵심은 얼버무리고 “경제가 불쌍하다”느니 “규제는 암 덩어리” 따위의 말만 한다. 재벌이 모든 부를 독식하는 구조에서는 경제가 성장해 봤자 국민 90%는 더 가난해질 뿐이다.

한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모두 임금주도성장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임금주도성장은 일부 진보적 경제학자들과 국제노동기구(ILO)도 몇 년째 밀고 있는 정책이다. 신자유주의가 교리로 삼았던 이윤주도 성장(이윤이 늘어야 투자가 늘어 고용도 증가한다는 이론)이 결국 2008년 세계 경제위기로 현실에서 파탄 났으니 이제 수요(소득)주도 성장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30년간 세계경제를 황금기로 만든 원인이 높은 임금인상률과 복지였다는 것이 이들의 근거다.

솔깃하지만 필자 생각에는 한계가 분명한 주장이다. 첫째, 임금주도성장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인정하는 바인데 세계화 시대에 개별국가의 임금인상은 한계가 있다. 단적인 예로 수출주도 국가의 임금인상은 수출기업의 해외이전(또는 수출경쟁력 감소)을 촉진해 내수확대로 일자리가 느는 것보다 오히려 수출기업의 일자리가 더 크게 감소할 수도 있다. 더군다나 세계 경제위기 이후 무역 불균형이 국가 간에 뜨거운 쟁점이라 일국적 정책의 한계가 더 커져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세계적으로도 대표적인 수출국가다.

둘째, 예전과 같은 3% 이상 고도성장은 기술적 한계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요즘 설득력을 얻고 있다. 300~400년간 장기 경제사를 보면 20세기 중반의 성장은 일반화될 수 없는 예외다. 1% 미만 성장이 오히려 정상에 가깝다. 20세기 중반과 같은 고도성장은 전기·내연기관·상하수도시스템 같은 생산과 생활의 근본적 혁신이 전제돼야 한다.

최근 정보통신기술의 대부분은 결국 오락용으로 쓰이고 있다. 성장을 추동할 기술혁신과는 거리가 멀다. 성장 비관론에 따르면 오랜 기간 동안 1% 내외 성장으로 세계경제가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저성장에 적응하며 평등과 자유를 확장하는 전략이 중요하다. 임금주도성장론은 결국 ‘성장’이란 점에서 불가능한 공약일 뿐이다.

셋째, 민주노총이 정치적 차원에서라도 임금주도성장론으로 자본을 압박하려면 먼저 큰 혁신을 해야 한다. 비정규 노동자가 많이 늘기는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민주노총은 임금소득분포로 보면 상위 10~30%에 대다수 조합원이 밀집해 있다. 제도가 부실하고 노조가 기업별체계로 구성돼 있는 현재 상황에서는 정책적 임금인상은 조직 노동자에게 더 큰 혜택, 반대로 미조직 노동자에게는 또 한 번의 부익부 빈익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조직 노동자의 노조설립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고, 기존 노조들이 초기업적 교섭으로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민주노총의 요구가 정치적으로라도 최소한의 힘을 가질 것이다.

성장으로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는 약발은 이제 먹히지 않는다.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그 증거가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임금주도로 성장을 하자는 노동운동의 주장도 그다지 신뢰를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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