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설날, 명동 거리는 의외로 썰렁했다. 대형 백화점과 인근 상점들도 문을 닫아 거리는 한산했고 일부 아시아계 관광객들만 넓은 거리를 활보했다.

바로 옆 서울중앙우체국 앞은 달랐다. 우체국 앞에는 희망연대노조 SK브로드밴드·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의 농성장이 차려져 있다. 우체국 앞 15미터 높이의 광고탑에서는 이날로 14일째 고공농성이 진행되고 있다. 동조 단식농성도 10일째를 맞았다.

이날 합동차례를 앞두고 조합원들의 얼굴은 밝았다. 집에서 싸온 전과 만두를 나눠 먹고, 농성장 한 쪽에서 활쏘기 시합과 제기차기를 하기도 했다. 젊은 조합원들은 SK브로드밴드비정규직지부 최고령 조합원인 이홍열(60)씨에게 세배를 했다. 이씨가 "새해에는 돈 많이 벌라"며 건넨 세뱃돈 500원을 받고 함께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설날에 가족들이 있는 집이 아니라 농성장에서 차례상을 차려야 하는 상황이 서럽지 않을 수는 없었다. 합동차례를 시작한 뒤 단식농성 중인 김지수·김수복·임창호씨가 첫 번째 절을 올리면서 참았던 서러움을 터뜨렸다. 경남 양산시에서 온 김수복씨는 "지난해 12월 어머니 기제사에도, 고공농성 돌입 이틀 뒤였던 아버지 제사 때도, 그 뒤로 처음 맞는 설날에도 집에 못 가고 있다"며 "오늘은 눈물이 좀 난다"며 울먹였다. 부산에서 온 임창호씨는 "집에서 전화가 와도 단식을 한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하고 있다"며 "동지들이 없었으면 너무 외로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태원·구본무 회장이 나올 때까지 끝까지 같이 싸워 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합원들은 "우리도 명절에는 집에서 쉬고 싶다", "진짜 사장 SK·LG가 해결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차례로 절을 올렸다. 광고탑 꼭대기로 차례 음식이 한 상자 가득 올라갔다. 이를 받아든 고공농성자 장연의·강세웅씨가 아래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장씨는 "지난해 SK브로드밴드가 최대 매출을 내 SK그룹의 효자가 됐는데 진짜 효자는 명절도 모르고 일해온 우리"라며 "SK는 명절날 그런 우리를 차가운 길바닥으로 내몰았다"고 지적했다. 강씨는 "오늘 아침 쌍용차 굴뚝 농성장에서 격려 전화를 받았다"며 "우리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분들도 있으니 기죽지 말자"고 말했다.

한편 노조는 23일 농성장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투쟁 일정을 재개한다. 다만 단식농성은 4명 중 2명만 계속한다. 나머지 2명은 각각 지난 17일과 20일 건강 악화로 응급실에 실려가 단식을 중단했다. 노조 관계자는 "농성이 길어지면서 당뇨를 앓고 있는 장연의씨나 나머지 농성자들의 건강도 걱정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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