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지난 12일 오전 강원도 춘천시 강원도청 앞 교차로에 겨울바람이 휘몰아쳤다. 교차로 건너편에 마련된 천막 두 동이 떨듯이 펄럭거렸다. 지난달 9일 세워진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 농성장과 이달 4일 자리 잡은 강원도 5개 의료원지부(속초·영월·원주·강릉·삼척) 공동농성장이다.

영월의료원 간호사 한기순(49)씨는 밤샘근무를 마치자마자 달려왔다. 함준식 속초의료원지부장이 "밤새 서서 일하고 오느라 힘들었겠다"고 말을 건네자 한씨는 "천막에서 난로를 켜면 공기가 너무 나빠지고 끄면 또 추워지고는데 지부장님은 매일 여기서 숙식하시느라 힘드시겠다"고 걱정했다.

무기한 농성 중인 함 지부장을 비롯해 5개 지부가 교대로 천막을 지키면서 매일 세 차례 1인 시위를 한다. 맞은편 언덕 위 도청에서 내려다보이는 자리인데도 강원도청 관계자는 보이지 않았다. 김광래 강릉의료원지부장은 "농성이 시작된 뒤 강원도는 노조와 대화하지 않고 있다"며 "도청 회의실도 개방하지 않고, 쓰려면 이용료를 내라고 한다"고 혀를 찼다. 함 지부장은 "강원도가 속초의료원 문제를 방관하더니 이제는 의료원 전체를 외면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사태 키운 강원도 '의료원 경영혁신대책'

속초의료원은 2014년부터 직장폐쇄·조합원에 대한 부당 전환배치·단체협약 해지 통보로 파행운영을 거듭했다. 그해 박승우 원장은 응급실 근무표 조작과 노사관계 파탄 문제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불려 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속초의료원은 별다른 개선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해 12월 이사회를 열어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법 적용과 각종 수당 삭감, 무기계약직 정원 확대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원 정관·규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노사갈등이 심화하고 있는데도 강원도는 손을 놓고 있었다. 아니 "노사 문제에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함 지부장은 "3월2일이면 단협이 해지되지만 교섭을 포함해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라며 "강원도나 도의회가 문제를 알고 있으면서도 박 원장이 강원도 지침을 가장 잘 지키고 있다는 이유로 내버려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원도는 지난해 2월 지방의료원 경영혁신대책을 발표하면서 감사원과 도가 불합리하다고 지적한 단협을 개정하라고요구했다. 의료원 정관·규정 개정도 강원도가 주문한 것이다. 경영평가 결과에 따른 임원 보수 삭감과 해임, 기관 해산청구 근거를 마련하는 한편 연월차보전수당 등 단협에 근거한 각종 수당을 삭감하고 무기계약직 정원을 늘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 강원도에 노사정위 구성 요구

시작은 속초의료원이었지만 다른 의료원들도 지난달부터 차례로 이사회를 열고 정관·규정을 개정하고 있다. 강원도는 2015년 경영개선 추진 업무보고에서 '불합리한 규정 개정'을 추진과제로 명시했다.

노조에 따르면 강원도는 규정개정을 하지 않은 의료원에 대해 지원금 삭감계획을 밝히면서 경영개선과제 이행계획 합의서 체결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의료원장이 도가 제시하는 불합리한 제도개선을 약속하고, 제도개선 불이행 사유에서 단협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김광래 강릉의료원지부장은 "적자를 이유로 수년간 임금의 50~70%씩만 지급한 탓에 2012년에는 직원들이 대출을 받으려 뗀 재직증명서만 120건이 넘었다"며 "아직도 2008년 임금표를 적용하는 최저임금법 위반사례가 발생하고, 임금체불이 심각해 고용노동부 강릉지청에서 찾아왔을 정도인데도 적자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반발했다. 강원도에 따르면 5개 의료원 전체 체불임금은 총 59억5천만원이다.

한기순씨는 "한 달에 딱 3번 쉬고 모든 수당을 다 포함해도 신규 간호사 연봉이 2천500만원 수준"이라며 "저임금으로 인력이 자꾸 이탈하는 바람에 간호사들이 야간근무를 많이 할 수밖에 없어 만든 슬리핑데이 수당마저 개선과제에 포함시킨 강원도가 현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지부들은 강원도에 노사정위원회 구성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 지방의료원 적자는 공공병원이라는 특성과 강원도 지원이 시설개선 수준에 그친 데 따른 구조적 문제다. 이에 따라 강원도·의료원·노조가 경영개선에 대한 대안을 함께 논의하자는 것이다.

김천옥 영월의료원지부장은 "노사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적은 없었다"며 "강원도가 합리적인 논의 대신 밀어붙이기로 일관한다면 갈등이 심화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복용 노조 강원본부장은 "강원도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이행의지를 밝히며 경영개선대책을 강요하고 있는데, 법도 아닌 지침으로 공공의료기관을 파행으로 이끈 지자체는 전국 어디에도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합원들은 이날 오후 강원대병원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했다. 1인 시위에 참여한 한 간호사는 "24년간 간호사를 했는데 보상은커녕 이런 일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다"고 한숨을 쉬었다. 강원도 관계자는 끝내 보이지 않았다.
 

[상자 인터뷰] 함준식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장
"정상화 출발점은 박승우 원장 퇴진"

함준식(49·사진) 보건의료노조 속초의료원지부장은 1993년 방사선사로 속초의료원에 입사했다. 그는 "노가다 일"이라고 말했다. 몸을 못 가누는 환자를 직접 옮기며 엑스레이를 찍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디스크나 근골격계질환도 흔하다. 그래도 공공의료에 대한 자부심을 잊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함 지부장은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속초지역 공공의료 거점인 속초의료원을 꼭 정상화해야 한다"며 "그 출발점은 박승우 원장 퇴진"이라고 말했다.

- 농성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강원도청 앞 노숙농성은 내가 담당하고 조합원들은 속초의료원에서 1인 시위를 한다. 오늘(12일)이 농성 35일째다. 집에 딱 두 번 들어갔다. 싸움이 너무 길어져 조합원들이 지칠까 걱정이다. 조합원들이 잘 따라와 주고 있어 고맙다."

- 속초의료원 상황은 어떤가.

"정규 간호인력을 충원하지 않고 간호조무사에게 간호사가 해야 할 일을 맡긴다. 의료사고 우려가 높다. 비조합원을 승진시키고 조합원을 그 밑에 배치하는 갈라치기 전략도 쓰고 있다. 내게는 6개월째 임금을 주지 않고 있다. 명예훼손·업무방해 고소고발도 계속하고 있다. 내게 걸린 소송만 해도 5천만원짜리 손해배상 가압류를 포함해 11건이다. 의료원측은 지난해 직원들을 고소하느라 변호사비로 5천300만원을 썼다. 올해 예산에도 4천만원을 잡은 것으로 안다. 박승우 원장은 교섭대표다. 그럼에도 교섭에 나오지 않고 있다. 단체협약을 해지할 때까지 시간을 끌고 노조를 위축시키려는 것 같다."

- 박승우 원장에 대한 강원도의 입장은 어떤가

"강원도가 비공식적 경로로 이달 말까지 사퇴 권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속초의료원 파행이 묵인하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는 뜻이다. 박 원장이 사퇴 권고에 반발하면서 연줄을 동원한 것 같다. 강원도의회 사회문화위원회가 강원도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논의했다가 새누리당 소속 도의원 몇 명이 이를 거부해 성명서를 채택하지 못했다."

- 속초의료원 노사갈등을 어떻게 풀어 갈 생각인가.

"박 원장이 퇴진해야 한다. 그리고 신임 원장과 단협을 체결할 것이다. 박 원장의 국정감사 위증죄 혐의에 대한 기소 여부가 16일쯤 나올 것 같다. 기소가 확실시되면 강원도도 박 원장을 그대로 두기는 어려울 것이다. 3월까지 박 원장을 퇴진시키지 않으면 집중투쟁을 벌일 계획이다. 박 원장이 퇴진하다고 끝이 아니다. 규정을 일방적으로 개정하려는 강원도의 정책을 바꿔야 한다.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한 싸움을 계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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