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식 변호사
(법무법인 공간)

대상판결/ 대법원 2012다32690 임금

본 사안의 개요와 소송의 경과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이 적용되는 공공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정관 제35조제1항은 “직제·인사·복무·회계·재산 및 물품관리에 관한 규정의 제정 및 개정에 관한 사항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단 노사는 2008년 11월28일 3급 상당 이하 직원의 정년을 공무원 정년연장에 따른 경과조치에 준해 2009년부터 2010년은 58세, 2011년부터 2012년은 59세, 2013년 이후에는 60세로 각각 연장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그 후 공단은 2009년 5월18일 단체협약 체결에 따른 이행을 위한 인사규정 개정안을 공단 이사회에 상정했으나 부결됐다. 이에 공단은 5급인 갑에 대해 종전 정년 규정인 57세에 따라 2009년 6월30일자로 퇴사처분을 했다. 갑은 그 퇴사처분이 부당해고임을 전제로 위와 같은 단체협약에 따라 늘어난 1년 동안 근무했을 경우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서울서부지방법원 1심 재판부는 위 단체협약의 효력이 없다고 판단해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고, 이에 원고는 항소했다. 항소심을 담당한 서울서부지방법원 항소부는 아래와 같은 한국산업인력공단법(공단법) 시행령 제15조가 2008년 1월22일 삭제된 점에 주목해 단체협약의 효력을 인정한 다음, 1심 판결을 취소하는 원고 승소판결을 선고했다.

대법원 판결의 요지

이 사건에서 피고는 국가의 출연금이나 위탁사업 수입금을 주된 재원으로 삼아 근로자의 평생학습 지원, 직업능력개발훈련의 실시, 자격검정 등의 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산업인력의 양성 및 수급의 효율화를 도모하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과 국민복지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공단법에 의해 설립된 법인으로서, 공공기관운영법의 우선적용을 받는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에 해당한다.

그리고 구 공공기관운영법은 준정부기관의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과 자율경영 및 책임경영체제의 확립에 관한 필요사항을 정해 경영을 합리화하고 운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자 예산, 정관의 변경, 내규의 제정과 변경 등의 사항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이사회를 두도록 하고 이사회의 구성 및 임원의 임면 등에 관해 상세히 정하며 예산안의 확정·변경에 대해 이사회의 의결과 주무장관의 승인을 거치게 하고 경영지침 이행이나 위탁한 사업의 적정한 수행 등에 관해 감독을 받도록 하는 등 준정부기관의 관리·운영 전반에 대해 국가의 엄격한 감독을 규정하고 있다(제17조·제40조·제51조 등). 아울러 구 공단법 역시 비슷한 취지에서 중요사항을 심의·결정하기 위한 이사회를 두게 하고 매사업연도의 사업계획 및 예산을 작성하거나 변경할 때 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며 노동부 장관이 업무를 지도·감독하게 규정하고 있다(제12조·제18조·제22조 등).

한편 정년연장은 필연적으로 인사규정의 변경과 예산 지출 및 신규 고용 규모 등의 변동을 수반하는 것이어서, 그 내용 확정이나 이행을 위해 이사회의 의결이 필요한 중요사항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러한 피고의 성격과 설립 목적, 운영자금의 조달 및 집행 과정, 국가의 관리·감독에 관한 여러 규정, 정년 연장의 예산의 지출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피고가 단체협약에 따라 정년 연장을 위해 개정하려던 인사규정이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지 못한 경우 비록 단체협약의 내용을 반영한 것이라 하더라도 위 인사규정은 아무런 효력이 없고(대법원 2011.4.28 선고 2010다86235 판결 등 참조), 나아가 기존 인사규정과 저촉되는 정년 연장에 관한 단체협약의 내용 역시 피고나 피고의 직원에게는 효력을 미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은 그 판시와 같은 이유만을 들어 단체협약에 따라 원고의 정년이 58세로 연장됐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준정부기관이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 제한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이 점을 지적하는 상고이유 주장은 이유 있다.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다음과 같은 중대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공공기관운영법을 적용받는 공공기관(본 사안의 피고는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인데, 공공기관운영법 제5조는 공공기관을 ‘시장형 공기업’, ‘준시장형 공기업’, ‘기금관리형 준정부기관’, ‘위탁집행형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구분하고 있다)의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의 경우 예산의 변동을 수반하는 인사규정 등 내부규정의 변경에 관한 이사회 의결이 없는 경우에는 단체협약이 개정·시행됐다고 하더라도, 그 단체협약은 효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간단하게 말하면 그런 경우에 있어서 취업규칙이 단체협약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결론은 “단체협약에 정한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한 기준에 위반하는 취업규칙 또는 근로계약의 부분은 무효로 한다”고 함으로써 취업규칙과 단체협약 간의 우열관계를 규정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33조제1항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으로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법리다. 노조법 제33조제1항은 헌법 제33조에서 규정한 노동 3권 중 단체교섭권과 이에서 파생하는, 역시 헌법상 기본권에 해당하는 단체협약 체결권의 규범적 효력을 보장하기 위해 규정된 것이다. 즉 노사가 집단적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 등 근로자 대우에 관해 정한 ‘단체협약’에 대해 사용자와 근로자가 개별적 교섭을 통해 정한 ‘근로계약’과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하는 ‘취업규칙’보다 우선하는 효력을 인정하는 것이 위 조항이다. 요컨대 이 조항을 통해 헌법상 기본권인 단체교섭권의 발현체(發現體)인 단체협약의 취업규칙과 근로계약에 대한 우위가 확보되고, 이는 ‘노동 3권 구현의 메커니즘(mechanism)’인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의 결론은 이러한 메커니즘에 정면으로 어긋나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예산이 투입되는 공공기관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예산의 건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노동 3권 구현의 메커니즘을 뚜렷한 근거도 없이 근본에서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메커니즘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기본권 제한의 원리상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하는 법률상의 특별한 수권(授權)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법질서가 문란하게 되고, 법치주의의 근간이 허물어지게 된다.

대법원은 공공기관운영법 제17조·제40조·제51조 등과 공단법 제12조·제18조·제22조를 그러한 수권으로 본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을 비롯해 공공기관운영법 어디를 봐도 공공기관의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하거나 단체협약에 관해 규율하는 근거조항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위와 같은 조항을 비롯해 공단법 제12조를 봐도 그러한 조항은 없다. 공공기관운영법 제17조는 ‘내규의 제정과 변경’ 등을 심의·의결하기 위한 이사회를 둔다는 이사회 설치 근거조항에 불과하고, 동법 제40조는 공공기관의 예산편성에 관한 절차조항일 뿐이다. 또 동법 제51조는 공공기관에 대한 정부 감독의 근거조항일 뿐인데, 특히 이 조항은 “기획재정부 장관과 주무기관의 장은 공기업·준정부기관의 자율적 운영이 침해되지 않도록 이 법이나 다른 법령에서 그 내용과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경우에 한해 감독한다”고 정해 공공기관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공단법 제12조 역시 이사회 설치 근거규정에 불과하고, 동법 제18조는 산업인력공단 예산 편성에 관한 절차규정에 불과하다. 동법 제22조는 노동부 장관의 공단에 대한 감독규정일 뿐이다.

그럼에도 대법원이 이런 판단을 한 것은 일종의 법 해석을 통해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한 것이고, 이는 법률과 이의 수권에 의해서만 단체협약이 제한된다는 기본권 제한의 원리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이는 대법원의 권한인 법해석·적용의 권한을 뛰어넘는 일종의 법을 창조한 것으로서 입법권을 행사한 것에 다름 아니어서 권력분립의 원리에도 어긋난다. 3년여의 심리 후 선고된 판결 치고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법리로 일관한 납득하기 어려운 판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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