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차 때문에 실랑이를 벌였던 상대방은 반지하 연립주택에 사는 벤츠 모는 청년이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산을 파서 주거지역을 만든 전형적인 달동네이자, 전국에서 반지하 연립주택 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지중화가 불가능해 전선줄이 어지럽게 엉켜 있고, 주택들은 소방도로를 확보하지 못한 채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리고 빠뜨릴 수 없는 달동네 주택단지 풍경으로 수많은 차들이 진기명기에 나올 만한 기술로 주차돼 있다.

그런데 이런 곳에 벤츠가 떡하니 주차돼 있었던 것이다. 보통 소매용 1톤 트럭이나 연식 10년 이상 된 승용차들이 주차돼 있어야 할 곳에 벤츠가 있었다. 약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은 서로 이해하는 분위기상 그냥 쓱 지나갔는데 이럴 수가, 백미러로 본 내가 스쳐 치고 간 차는 벤츠, 그것도 최고급 모델 중 하나인 S클래스였던 것이다.

되돌아와 차 주인에게 전화를 했고, 20대로 보이는 젊은이가 차가 주차돼 있던 연립주택의 지하층에서 올라왔다. 새로 산 차라며 화부터 내는 통에 나도 화를 내며 집보다 비싼 차를 왜 이렇게 주차해 놨냐고 역성을 냈다. 결국 보험처리로 끝냈다.

황당한 것은 그 차 주인이 사는 집이 전세 5천만원도 되지 않는 반면 그 차는 시가 1억원이 넘는 차였다는 사실이다. 실랑이를 벌이면서도 도대체 “누구냐 넌”이라는 영화 속 최민식씨의 대사가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나중에 그 또래 사촌동생에게 물어보니 낮에 알바를 하면서도 차는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20대들이 많다고 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어차피 급여를 저축해 집을 살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집은 작게, 하지만 당장 뽐낼 수 있는 차는 큰 것을 산다는 것이다. 3년이나 5년 할부로 외제차를 계약해 급여 절반 넘게 할부금으로 내고, 2년 정도 타다가 중고차로 팔아 미납 할부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하면, 좋은 차를 나름 싸게 타고 다니며 실증 날 때쯤 차를 바꿀 수 있다고 한다. 거리에 돌아다니는 고급 외제차 중 상당수는 젊은 사람들이 모는데, 알고 보면 대부분 소득의 상당수를 쓰는 할부차들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20%대에 달했다. 80년대부터 90년대 초에 노동시장에 진입한 노동자들은 소득의 20%를 모아 집을 사고, 노후에 대비했다. 1차 베이비부머로 불리는 80년대 고도성장을 경험한 노동자들은 생애주기로 소득을 나눠 소비하고 저축하는 게 가능했기 때문이다. 당시는 어느 정도 노동시장이 안정돼 있었고, 소득 증가도 매년 이뤄졌다.

하지만 외환위기 이후 한국 노동시장은 극단적으로 불안정해졌다. 98년 이후 주기적으로 대규모 정리해고가 발생했다. 평생직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은 공공부문 일부를 제외하고는 찾아볼 수 없게 됐다. 기간제와 간접고용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특히 젊은 노동자들은 최근 <미생>이란 드라마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했듯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가릴 것 없이 불안이 일상이 된 삶을 산다.

구조적으로 ‘완생’이 될 수 없다면, 어쩌면 ‘미생’의 최고선택지는 반지하 연립주택에 살며 1억원 넘는 외제차를 ‘폼생폼사’ 정신으로 가지고 있는 게 최선일 수도 있다. 물론 이렇게 현재의 소득을 모두 쓰고, 그것도 부채를 늘리는 방식으로 소비해 버리는 것은 문제가 크긴 하다. 부채가 계속 커져 이자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자산이 축적되지 않아 벼락부자가 되는 게 아니면 현재 상태를 벗어날 가능성이 더욱 줄어든다.

그렇다고 저축을 하면 달라지는 게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일을 해서 버는 소득이 늘어야 저축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나이 들수록 소비할 일은 많아지는데 소득이 정체되면 자산이 늘어날 수가 없다.

최근 소득세 자료를 이용한 분석에 의하면 90년대 중반 이후 실질임금 상승은 상위 10% 소득자만의 일이었다. 나머지 90%의 평균을 보면 실질임금이 20년째 정체다. 2013년 말 상위 10%의 연평균 임금이 1억원인 데 반해 나머지 90%의 연평균임금은 2천300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90%도 뜯어보면 이 중 상대적 상위 소득자는 미약하게라도 인상됐고, 하위소득자는 아예 하락했다. 현재 한국은 최저임금·4대 보험·퇴직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700만명에 달한다. 또 700만명이나 되는 자영업자는 일부 전문직을 제외하면 가구당 월소득이 200만원에 그쳐 부채만 증가하는 상황이다. 노동자 2천만명 중 미래 설계가 가능한 ‘완생’ 노동자 비율은 아무리 높게 잡아도 20%가 되지 않는다.

정부는 '정규직 철밥통'을 없애야 비정규직과 청년노동자가 살 수 있다며 해고를 쉽게 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외치고 있다. 정책이라기보다는 선동에 가까워 보인다.

창조경제를 이야기하며 성장을 부르짖지만 이처럼 불평등한 구조에서 모두에게 성장의 열매가 조금이라도 나눠지려면 2~3% 성장으로는 어림도 없어 보인다. 80년대와 같은 두 자릿수 성장이 아니라면 성장으로 뭔가 나아진다는 이야기는 안 하는 게 낫다.

현재의 노동운동도 대안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 싸우지 못하는 문제만이 아니라 노동운동이 열심히 싸워도 그 결과가 일부에게만 미친다는 것이 더 뼈저린 한계다.



* 6개월 동안 개인 사정으로 칼럼을 쉬었습니다. 소득불평등에 관한 최근의 다양한 논의를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하는 것으로 2015년 칼럼을 재개하려 합니다. 제도의 안정성까지 위협하는 극단적 소득불평등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한동안 쟁점이 될 것 같습니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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