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두 차례 ICC 등급심사 보류를 받은 국가인권위원회가 2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ICC 승인소위 권고의 실효적 이행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인권·시민단체는 이날 토론회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인권위 혁신 없는 토론회 참여를 거부한다”고 비판했다. 연윤정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세계국가인권기구 국제조정위원회(ICC) 가입시 받은 A등급에서 B등급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인권위는 지난해 3월과 11월 잇따라 ICC 승인소위원회로부터 등급심사 보류를 통보받았다.

인권위가 2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 31층 슈베르트홀에서 ‘ICC 승인소위 권고의 실효적 이행을 위한 토론회’를 긴급하게 개최한 것도 이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인권·시민단체는 인권위와 토론회장 앞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갖고 “인권위 혁신 없는 토론회는 의미가 없다”고 반발했다.

◇인권위 B등급 전락 위기=ICC 승인소위는 지난해 두 차례 등급심사를 보류하면서 인권위에 △인권위원 선출·임명 방식 투명성 확보 △인권위원과 직원 구성의 다양성 확보 △인권위원 인선에 대한 통일기준 마련 △인권위원 인선과정 공개 △광범위한 협의증진 위한 절차 마련 △구성원의 면책조항 마련 등을 권고했다. 해당 권고를 이행하지 않으면 올해 3월로 예정된 승인소위 심사에서 B등급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해 발생한 군사쿠데타를 옹호한 태국 인권위도 B등급 하락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CC의 이 같은 권고는 인권위원 선출·임명 방식이 투명하지 않고 시민단체와의 협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현재 인권위원은 대통령(4명)·국회(4명)·대법원장(3명)이 지명한 인사 중에서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과정이 투명하지 않고 정치적 판단이 작용하면서 무자격 인권위원이 임명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실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동성애 혐오 발언을 한 최이우 목사를 인권위원에 임명한 바 있다.

◇인권·시민단체, 토론회 참여 거부=최근에는 현병철 위원장의 발언이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현 위원장은 이달 12일 인권위 전원회의에서 “다른 나라 NGO는 ICC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데 우리나라 NGO는 국론이 분열될 정도로 이의제기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민변 소수자인권위원회는 “한국 인권상황 후퇴와 인권위 독립성 훼손, 무자격 인권위원 구성에 대해 전혀 성찰하지 않는 태도”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인권위는 2009년 현 위원장 취임 뒤 모든 회의록에서 인권위원 이름을 익명으로 처리했다”며 “밀실운영과 반인권적 결정을 용이하게 하고 무자격 인권위원들의 무책임한 발언을 부추기는 회의록 익명처리를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인권·시민단체는 현 위원장 사과와 회의록 실명공개를 요구했으나 수용되지 않자 이날 토론회 참여를 거부했다. 당초 토론자로 참석할 예정이었던 김병주 변호사(대한변협 인권위원)가 불참한 배경이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인권위 토론회장 앞에서 “현 위원장 사과와 인권위 혁신 없이 진정성 있는 토론회는 불가능하다”며 피케팅을 벌였다.

◇인권위 토론회서도 비판 이어져=인권위는 3월 ICC 승인소위 심사를 앞두고 국가인권위원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상임위원 인사청문회 도입·여성 인권위원 5인으로 확대·영역별 인권위원 자격 규정을 골자로 하고 있다. 개정안은 2월 임시국회에 제출된다. 인권위는 또 △독립적인 업무수행과 시민단체 교류협력 △선출·지명기관 후보추천위원회 구성 등의 기준을 담은 ‘인권위원 인선 가이드라인’도 내놓았다.

하지만 토론자로 나선 신수경 새사회연대 상근대표는 “사회적 소수자를 포함해 다양성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장하나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 이보라 보좌관은 “인권위는 시민사회를 협력적 파트너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은 “현병철 위원장이 즉각 사임해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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