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3년 12월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했다. 정기성·일률성·고정성을 갖춘 임금만 통상임금이라는 전제조건이 붙었다. 어떤 임금 항목이 특정 시점의 재직자에게만 지급될 경우 그것은 통상임금이 아니라고 부정됐다. 고정성에 해당하는 ‘재직자요건’이다.

재직자요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엇갈렸다. 첫째, 복리후생 수당, 설·추석·하계휴가·창립기념일 수당은 재직 사실이 지급조건이다. 반면 정기상여금은 재직자요건을 부여해 통상임금성을 부인해선 안 된다. 둘째, 임금 항목의 성격을 불문하고 재직자요건이 통상임금 여부를 좌우하는 절대적 기준이 된다는 해석이다. 전자는 ‘소극설’, 후자는 ‘적극설’이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통상임금 판결은 적극설을 따른 것이다. 현대차 상여금시행세칙이 재직자요건으로 수용됐다.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상여금시행세칙은 취업규칙에 해당되는데 노조 동의를 얻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묵살됐다. 법원은 제정된 지 20년 된 상여금시행세칙이 관행으로 굳어졌다고 해석했다. 이에 따르면 ‘15일 미만 근무자에게는 상여금 지급이 제외된다’고 규정돼 있다. 법원은 94년 제정된 옛 현대차의 상여금시행세칙이 옛 현대정공까지 적용됐지만, 옛 현대차서비스는 배제된다고 판결했다. 대표소송단 23명 중 현대차서비스 출신 노동자 5명이 여기에 해당된다. 법원은 현대차서비스 출신 5명 중 영업직(3명)은 연장근로시간을 측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현대차지부가 일부 승소한 것 같지만 사실상 패소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중앙지법의 판결은 한마디로 ‘아이러니’다. 법원은 정기상여금을 소정 근로의 대가이기보다 ‘포상금’처럼 취급했다. 통상임금이 확대되는 옛 현대차서비스 출신 조합원은 '성골', 그렇지 않은 현대차와 현대정공 출신 조합원은 '진골'로 분류했다. 5만1천600명의 조합원 가운데 약 8.7%(5천700명)만 현대차서비스 출신이다. 결과적으론 법원은 현대차의 ‘낮은 기본급과 복잡한 수당체계’를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사실상 사측에 힘을 실어준 모양새다. 법원은 통상임금을 임금문제로만 접근한 셈이다. 반면 통상임금은 가산임금의 기초다.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을 책정하기 위한 기준이기에 노동시간단축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소수만 통상임금이 확대돼 사용자 입장에선 초과근로수당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다. 사용자 스스로 노동시간단축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번 판결이 적용되면 형평성 논란만 커질 듯 보인다. 현대자동차 내부뿐만 아니라 현대차 계열사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 기아자동차의 경우 상여금 지급에 있어 재직자요건을 규정하지 않았다. 소송을 벌이고 있는 기아차지부는 현대차지부와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로 확대하면 사업장마다 희비가 엇갈릴 것이다. 이렇게 되면 현대차에서 촉발된 형평성 논란은 전 계열사로 확대된다. 법원은 갈등 해소보다 갈등을 부채질한 셈이다.

그간 법원마다 통상임금 판결은 오락가락이었다. 지난해 르노삼성자동차(부산지법), 한국지엠(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의 경우 법원은 재직자요건이 있어도, 이것을 결정적 잣대로 삼지 않았다. 재직자요건을 소극적으로 적용한 셈인데 현대차 판결과 대비된다. 법원은 현재까지 재직자요건이 전제된 상여금의 통상임금 여부에 대한 통일적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은 셈이다. 때문에 통상임금 문제를 소송으로 끌고 가는 것은 노사 모두에게 좋은 해법이 아니다. 노사 간 단체교섭이나 노사협의기구에서 통상임금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되레 낫다. 현대차 판결은 이를 웅변하고 있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