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어떤 사람이나 단체를 대신해 그의 의견이나 태도를 드러내는 일로서의 대변(代辯)을 말한다. 노동조합운동이 어려운 이유야 안팎으로 여러 가지겠지만, 안부터 살펴보면 대변의 문제가 있다. 대변은 영어로 represent다. 나타내고 드러내고 보인다는 뜻을 가진 present를 re, 즉 ‘다시’한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다시 드러내고 보이는 것’을 말한다.

노동조합은 무엇을 다시 드러내고 나타내고 보이는 데 실패하고 있는 것일까. 조합원은 자신의 상태와 조건과 요구를 드러내고 나타내고 보여 준다. 이를 ‘다시’ 드러내고 나타내고 보여 주는 게 노동조합의 역할이다. 그 바탕 위에서 조합원의 권리와 이익을 지키고 더 낫게 만드는 게 노동조합의 임무다.

대의원대회 같은 노동조합 의사결정의 공식기구에서 대의원들은 자기 개인이나 속한 정파의 상태와 조건과 요구를 ‘나타내고 드러내고 보이게’ 하는 데 익숙할 뿐, 조합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에는 서투르다. 대의원대회의 ‘대’는 큰 대(大)가 아니라, 대신할 대(代)다. 조합원이 ‘말하는 것(presentation)’을 노동조합의 공식 의사결정 기구에서 ‘대신 말하는 것(representation)’이 대의원이 할 일인데, 이게 잘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대변의 다른 말은 대표(代表)다. 노조 지도자라는 말이 있고, 노조 대표자라는 말도 있다. 지도는 ‘어떤 목적이나 방향에 따라 가르치고 이끄는 것(lead)’으로 어느 조직과 단체에나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도가 조합원의 상태·조건·요구를 정확하게 대변하는 기반 위에 서 있지 않다면, 다시 말해 지도와 대표가 서로 어그러져 동떨어질 때 노동조합은 자기 역할과 임무를 제대로 이뤄 낼 수 없다.

노동조합의 공식적인 회의 단위와 의사결정기구가 권위를 잃는다. 사업계획은 실속이 없어진다. 사업 집행도 힘이 없다. 제대로 된 사업 평가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계획과 집행과 평가가 따로 놀게 되는 것이다. 대변하는 능력, 즉 대표성이 무너지니 지도력도 무너진다. 지도력이 훼손되니 대표성도 훼손된다. 대표성과 지도력이 물고 물리면서 서로를 부정하고 거부하는 악순환. 이것이 현재 한국 노동조합운동이 맞닥뜨린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합원을 대변하고 대표하는 노동조합의 능력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조합원의 상태와 조건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요구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지금 노동조합운동이 가진 실력에 비춰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가려내고, 실현가능한 것에 자원과 인력을 집중해야 한다. 여기서 그쳐선 안 된다. 집행의 결과로 이뤄진 성과를 차분하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계획을 짜야 한다. 사업의 계획과 집행과 평가가 서로를 북돋우고 돕도록, 즉 선순환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의원대회를 비롯한 노동조합 각급 단위의 공식조직과 기구를 정상화해야 한다. 대의원대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중요한 의사결정의 책임을 바로 조합원에게 미루는 식의 실패한 대변제와 무너진 대표성을 갖고는 현재의 난관을 돌파할 수 없다.

누구나 현장 강화를 말한다. 현장 강화는 교육·선전·조직·정책·교섭 등 노조의 일상활동을 튼튼히 하고 그 수준을 높임으로써 현장 조합원을 제대로 대표하고 대변하는 것에서 비롯한다. 현 시기 노동운동의 발전에는 위대한 지도자보다 제대로 된 대표자가 필요하다. 지도력과 대표성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지 않고 균형과 통일을 이루는 지점이 위기 돌파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사람이 튼튼하기 위해서는 대변(大便)을 잘 눠야 하고, 조직이 튼튼하기 위해서는 대변(代辯)을 잘해야 한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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