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톨게이트 요금수납원 한일례(44)씨는 2007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한국도로공사 로고가 찍힌 유니폼을 입고 수원톨게이트 영업소에서 일했다. 4.95제곱미터(1.5평) 남짓한 요금소 안에서 주말·공휴일 구분 없이 24시간 3교대제로 근무했다. 톨게이트를 지나는 차량 요금을 징수하는 일은 똑같았지만 그새 사장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최저임금에 8시간을 곱한 돈이 한씨의 기본급이었다.

지난해 말 들어온 세 번째 외주업체 사장 A씨는 한씨를 포함해 직원 10명의 고용승계를 모두 거부했다. 특별한 사유도 없었다. 10명 중 7명이 공공연맹 전국톨게이트노조 수원지부 조합원이라는 사실밖에는.

사장 A씨는 신규채용을 택했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현장방문에 나선 뒤에야 "수의계약서에는 고용승계 조건이 없고, 근무평가가 좋아도 옆 사람 물을 흐리면 안 돼서 그랬다"고 말했다. 노조가입이 해고사유였던 것이다.

전국 335개 톨게이트 영업소에서 고속도로 통행요금을 수납하는 노동자는 7천200여명이다. 도로공사는 2009년 경영효율화를 이유로 영업소 전체를 외주화했다.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신분도 도로공사 기간제에서 용역업체 간접고용으로 바뀌었다. 외주화는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노동자는 잘리고, 업자는 부당이득 챙기고

도로공사는 수의계약이나 공개입찰을 통해 톨게이트 용역계약을 맺고 있다. 지난해 265개(79%) 업체가 수의계약으로 영업권을 얻었다. 업체 대표들은 대부분 도로공사 희망퇴직자다. 나머지 70개 업체도 희망퇴직자들이 핵심 보직인 사무장을 맡고 있다. 도로공사가 자격요건을 공사 정년예정자나 관련 회사 경력자로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신기남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과 톨게이트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영업소 규모에 따라 2~5명이 공동으로 업체 대표와 사무장을 맡는다. 매달 도로공사에 자신의 급여와 직원 인건비, 영업소 운영비를 산정해 청구한다. 이에 따라 지급되는 기성금(용역비)은 영업소당 월 4천만~5천만원 수준이다. 연간 총액은 2천800억원에 달한다.

도로공사 직원인 영업소장은 각 영업소에 상주하며 직원 교육과 업무지침 전달, 평가 등의 업무를 수행했다. 수원톨게이트 요금수납원 박근정(46)씨는 “세 명이나 되는 사장들이 수납원 명단에 이름을 올려 월급을 이중으로 타 가면서도 직원 동향을 감시하거나 텃밭을 가꾸는 일만 한다”며 “서류결재도 영업소장에게서 받았다”고 말했다. 도로공사가 운영과 관리를 하고 있으면서도 중간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외주업체 사장이 수익을 가져가는 기형적 구조인 셈이다.

이런 구조는 운영비리로 이어졌다. 도로공사가 지난해 7월 벌인 통행료용역이행실태 전수조사에 따르면 영업소 320곳 중 25곳이 직원 업무일수 축소, 연장근로수당 축소 지급, 최저임금 미달, 보험료 과다 공제 등으로 경고나 시정지시를 받았다. 송미옥 톨게이트노조 위원장은 "도로공사가 기성금 세부지출 내역을 제대로 감시하지 않기 때문에 사장들이 인건비를 아껴 자신의 수익으로 가져간다"며 "도로공사 조사 결과보다 훨씬 더 많은 곳에서 비리가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업체 사장들은 수납원들을 적게 채용하거나 해고한 뒤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수법으로 임금을 빼돌리기도 한다. 워크넷 채용공고를 보면 각 지역 톨게이트 요금징수원들의 급여는 140만~170만원에 불과하다.

수의계약을 하게 되면 공개입찰보다 수납원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다. 수의계약서는 직원의 고용승계 이행을 의무조항이 아닌 비계량지표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2013년 군자영업소 직원 11명이 고용승계를 거부당했다.

법원은 직접고용 판결, 도로공사는 항소

톨게이트노조는 도로공사가 운영자 비리 방지대책을 세우고 정부의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계약조건에 100% 고용승계를 명시하라는 것이다. 법원 판결대로 도로공사가 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도 주문했다.

최근 서울동부지법은 노조가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수납원들이 외주용역회사가 아닌 도로공사의 직원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톨게이트 요금수납원들이 도로공사 사업장 영업소의 지휘·명령을 받아 도로공사를 위한 근로에 종사했다"며 "도로공사와 외주업체가 맺은 용역계약은 실질적으로는 근로자 파견계약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도로공사는 지난 19일 항소했다. 공사 관계자는“국토교통부 직원이 5천명인데 7천명이 넘는 인원을 직접고용하라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법원의 최종 판결이 나오면 따르겠다”고 밝혔다. 도로공사는 불법파견 소지를 줄이기 위해 영업소에 상주하던 소장들을 지사로 불러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기남 의원실 관계자는 “당장은 어렵더라도 별도 법인을 세워 영업소를 준직영화하는 방법도 있다”며 “잘못된 외주화 정책으로 운영의 불투명성 문제나 공공성 약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도로공사가 직접운영하거나 제도를 개선해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톨게이트 영업소는 이명박 정부의 공공부문 선진화 계획에 따라 2009년 외주화됐다. 뒤이은 박근혜 정부도 공공부문 조직·인력을 축소하는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도로공사 톨게이트 영업소와 유사한 사례가 잇따를 가능성이 높다.

전선미 공공연맹 조직국장은 “계약기간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뿐 업무가 그대로 이어지는 경우에는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준용할 필요가 있다”며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서 용역근로자를 위한 보호조치를 보다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상시·지속적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정규직 전환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공공기관 용역근로자 보호지침도 청소나 시설관리업무 노동자에 한해 적용된다. 근본적인 보완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민간사업자 톨게이트, 근무일수 쪼개고 인력 줄이고

정규직 1명을 파트타이머 2명으로 … 소송 대비해 '사용자성 지우기' 나서



민자고속도로에서도 톨게이트 영업소는 외주화돼 있다. 서울고속도로㈜는 국토교통부와 계약을 맺고 민자고속도로인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을 운영하는데, 양주 등 6개 톨게이트 영업소 운영을 외주로 돌렸다.

130여명의 요금수납원들은 외주업체 소속으로 주 6일, 24시간 3교대로 일한다. 16시간 연장근무도 해야 한다. 요금수납원 김지윤(49·가명)씨는 "3교대로 돌아가니까 말번(22시~06시) 근무일 다음날 초번(06시~14시) 근무가 잡힐 때가 있어 한 달에 세 번씩은 16시간을 계속 일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본급은 최저시급에 맞춰져 있다. 외주업체(한덕엔지니어링)는 2013년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이라고 판결하자 지난해 교통비·상여금을 비롯한 각종 수당을 없애 버렸다. 시급 인상효과를 막기 위해서였다. 원청인 서울고속도로는 과업지시서를 통해 외주업체에 "직원 서비스평가 때 몰래 동영상을 촬영하라"고 지시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서울고속도로는 이와 함께 교통량 감소와 하이패스 무인정산기 도입을 이유로 인력감축을 추진 중이다. 예컨대 정직원 1명을 고용하는 대신 계약직 파트타이머 2명을 고용해 근무일수를 줄이고 차량 통행량이 많은 시간대 위주로 일하게 하는 것이다. 올해 2월부터는 파트타이머 직원 8명에게 각각 매달 5일씩만 일하라고 통보한 상태다. 요금수납원 이원숙(가명)씨는 "5일이면 20만원밖에 못 받기 때문에 그만두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민주연합노조 서울고속도로톨게이트지부에 따르면 서울고속도로는 최근 영업소에 상주하며 업무지시·관리를 하던 영업소장들을 본사로 복귀시켰다. 대신 협력업체 직원인 사무장들을 소장으로 임명했다. 요금소와 직원 명찰에서도 서울고속도로 로고를 지웠다. 지부는 최근 진행된 톨게이트 노동자들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결과를 보고 회피수단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훈 민주연합노조 조직국장은 “서울고속도로 지분 86%는 국민연금공단이 갖고 있는데 이사 5명 중 3명이 국민연금공단 이사인 만큼 둘은 사실상 한 몸”이라며 “사실상 공공기관 성격을 띠는 만큼 정부 지침에 따라 시중노임단가를 적용하고 고용승계를 명문화해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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