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호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김영삼 정권은 운동권에서 개혁이라는 단어를 차용해 ‘변화와 개혁’을 선언했다. 김대중 정권은 구조라는 단어를 차용해 구조조정이라는 말을 일상화했다. 그러나 그 단어들이 가진 긍정적 이미지와는 달리 자본계급 정권들이 추진한 ‘개혁’은 자본축적 체제를 신자유주의로 바꾸는 것, 구조조정은 정리해고와 고용의 비정규직화 즉 개선이 아닌 개악이었다.

이번에는 박근혜 정권이 구조와 개혁이라는 두 단어를 묶어 구조개혁이라는 말을 유행시키고 있다. 구조개혁 대상은 공공·노동·교육·금융 네 가지라고 하는데, 이것은 국제통화기금(IMF) 통치 당시의 기업·금융·공공·노동 4대 부문 구조조정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이번에는 실세인 재벌은 손볼 일이 없고 교육까지 자본의 필요와 요구에 맞게 뜯어고치겠다고 한다. 이처럼 문제는 항상 뜯어고칠지 말지가 아니라 뜯어고치는 방향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크게 보아 자본계급과 노동계급으로 나뉘어 한쪽은 칼자루를 쥐고 있고 다른 한쪽은 맨손으로 마주 서 있는 계급사회다. 국가가 여기에 개입해 힘의 불균형을 다소라도 완화시켜 주지 않으면 노동계급은 살아가기가 아주 팍팍해진다. 그래서 노동에게 특별한 권리(노동 3권)를 조금 인정해 줬고, 약간의 보호장치(근로기준법)도 양보해 줬다.

그리고 노동할 수 없을 때의 생계대책으로 실업급여와 노령연금을, 또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도록 교육과 의료에서 약간의 공적 지원을 제공해 줬다. 이것들은 자본주의가 하나의 지배·착취 체제로서 지속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치러야 할 비용이다. 그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노동계급이 노동력을 재생산하지 못하게 된다. 이미 자본주의가 발달한 이른바 선진국이나 그 문턱에 이르렀다는 우리나라에서 이 문제가 심각하다. 청소년 인구와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한다. 그러면 경제성장은 멈추고 이른바 만성적 저성장시대(Secular Stagnation)가 온다. 나아가 이런 상태가 심화하고 장기화하면 노동대중이 체제에 저항하게 된다.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에서 이미 이런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다.

현실이 이런데도 박근혜 정권은 새해 들어 연일 기자회견과 정부부처 업무보고에서 구조개혁을 하겠으며, 그중 첫 번째로 노동시장 구조를 개혁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를 극단까지 밀고 가겠다는 것인다. 해고를 자유롭게 하고(평가에 의한 일반해고 허용), 고용형태를 자유롭게 하고(근로자파견 업종 제한 폐지), 임금을 자유롭게 하고(호봉제 폐지와 직무급 및 성과급 체계화), 심지어 연장근로 수당을 50%에서 25%로 깎는 것까지 개악하려 하고 있다.

이렇게 나가다 보면 아마 미국처럼 사용자가 노동조합 설립에 반대 캠페인을 벌일 자유를 인정하고, 노동조합 활동도 부당노동행위 대상에 포함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쁜 나라로 바뀔 것이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지는 의료자본의 탐욕을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시코’를 보면 알 수 있다. 일본도 비슷하다. 지난 연말 <절망의 나라와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이 번역·출판됐다. 이 책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젊은이들이 희망하는 바가 적어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일본에서는 ‘사토리(득도得道)세대’라고 부른다고 한다. 21세기 판 비극이다.

박근혜 정권의 구조개혁은 노동계급에 대한 선전포고다. 자본은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해 “총력전을 펼쳐야 한다”거나(조선일보), “치밀한 전략과 전광석화 같은 실행력”을 발휘해야 한다거나, “개혁전선 넓히지 말고 ‘노동’에 집중하라”고 말해 왔다.(매일경제)

자본의 이런 요구를 그대로 받아안고서 박 대통령은 3월 안에 노동개혁을 매듭지으라고, 노동에 초점을 집중시켜 전광석화 같은 총력전을 펼치라고 정부와 여당을 닦달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노동운동은 자본과의 싸움에서 매번 주동적이지 못하고 방어적이었다. 그런 피동적·방어적 대응으로는 계급투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겼다는 것은 실은 비긴 데(현상유지에) 지나지 않으며, 비겼다는 것은 실은 진 데(양보에) 지나지 않는다. 또는 그 과정에서 여성·청년 등 힘없는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전가한 것이었다. 그 결과는 세계 최저의 출산율과 최고의 자살률이다. 노동운동이 뼈아프게 반성해야 할 지점이다.

최근 KAIST 미래전략대학원에서 박성원 박사가 조사·발표한 바에 따르면 청년층(20~34세)을 대상으로 바라는 미래상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지속적인 경제성장"이 23%인 반면 "붕괴, 새로운 시작"이 42%였다고 한다.

노동운동은 진취적인 청년세대에 의거해 재벌과 관료의 결탁으로 이뤄진 옛 질서를 붕괴시키고 노동 중심의 새 질서를 만들어 내는 역사적 사업에 주동적·공격적으로 떨쳐나서야 한다. 전태일 사상과 정신으로 무장한 노동계급은 담대하게 그 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전태일을따르는사이버노동대학 대표 (seung7427@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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