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독일로 유학을 떠났던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이 학업을 마치고 1년 만에 귀국했다. 이주호 단장은 국제노동기구(ILO)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FES)·독일노총(DGB)의 후원으로 독일 카셀대학(Kassel)·베를린 경제법학대학(HWR Berlin)에서 '노동정책과 세계화'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박근혜 정부는 독일 경제모델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노동시장 개혁의 바이블로 보는 경향도 나타난다. 과연 그럴까. <매일노동뉴스>가 이주호 단장의 독일 유학기를 연재한다. 이 단장은 연재를 관통하는 제목을 '노동존중 복지국가와 노동운동의 새로운 도약을 꿈꾸며'라고 썼다. 매주 목요일자에 11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 베를린에 있는 독일노총 내부 모습
▲ 통합서비스노조 앞에 선 필자
▲ 프랑크푸르트의 독일 금속노조 전경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략기획단장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독일 노동운동 체험기를 연재한다. 오늘은 그 첫 번째로, 먼저 독일 노동운동의 현황과 특징을 개괄한다. 독일노총(DGB) 아시아 담당 국제국장이자 국제노동대학 동창인 프랑크 자하(Frank Zach)의 특강 자료와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에서 2014년 4월 발행한 <경제위기 이후 독일노총의 발전과 도전, 그리고 전략>을 참고했다. 통계는 2013년 말 기준이다.

노조 통계자료를 보다 보면 전체 통계에서 여성과 청년비율을 별도로 표시한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만큼 여성과 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의미다. 또 동부지역과 서부지역을 곧잘 구분한다.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통일된 지 25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동·서독 간의 격차는 독일 사회의 중요한 이슈인 듯하다. 이런 현상은 통일을 지향하는 한국 노동운동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위적 통일 논의를 넘어 통일 이후 남북 격차와 사회통합 문제를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독일 노동조합운동은 미국 서비스노조(SEIU)의 조직화 모델, 남아공 코사투(COSATU)의 사회운동적 노동운동 모델과 함께 ‘산별노조-종업원평의회’라는 이원화 모델(dual system)로 널리 알려져 있다. 독일의 노동조합은 19세기 베를린에서 담배생산 노동자와 인쇄공들이 조합을 만든 것이 그 시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각 산업별로 노조가 결성됐고, 49년 독일노총(DGB)이 탄생했다. 당시는 총 16개 산별노조로 출발했으나 이후 자체 통합 과정을 거쳐 현재는 8개 산별로 구성돼 있다. 독일노총은 국제노총(ITUC)·유럽노총(ETUC)과 경제협력개발기구 노조자문위원회(OECD TUAC) 소속이다.

동서독 통일 직후인 91년에는 조합원이 1천200만명에 육박했으나 그 이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독일에는 크게 3개의 노총이 있다. 독일노총(DGB)은 8개 가맹조직에 614만3천명, 독일공무원노동조합(DBB)은 39개 가맹조직에 127만1천명, 기독교노동조합연맹(CGB)은 16개 가맹조직에 27만3천명이 가입해 있다. 모두 769만명이다. 전체 노동자 대비 조직률은 18%다. 이는 50년대 이후 최저 수준이다. 이 중 여성 조합원 비율은 33%다.

독일노총(DGB)은 금속노조(IG Metall), 통합서비스노조(Ver.di), 광산업·화학·에너지(IG BCE), 건설·농업·환경(IG BAU), 음식료·숙박업(NGG), 철도·교통(EVG), 보육·교육(GEW), 경찰노조(GdP) 등 8개 산별노조로 이뤄져 있다. 이 가운데 금속노조는 조합원이 226만6천명으로 전체의 36%를 차지하는 가장 큰 조직이다. 통합서비스노조가 206만5천명으로 34%, 그 다음이 광산업·화학·에너지노조(IG BCE)가 66만4천명이며, 경찰노조(GdP)가 17만4천명으로 가장 적다. 여성 조합원 비율은 보육·교육노조가 70.7%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통합서비스노조 51.3%, 금속노조 17.7% 순이다.

한국에서 전교조 등이 조합원 자격 시비 등으로 법외노조화되는 것과는 달리 독일은 조합원이 되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다. 경찰·소방관·임시직·연금생활자·이주노동자 모두 다 자유롭게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학생도 가입 가능하다. 보육·교육노조는 대학 재학생이 한 달에 조합비 2유로를 내면 가입할 수 있고, 통합서비스노조도 월 2.5유로를 내면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의사들은 별도로 의사노조(Marburger Bund)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몇 년 전 대규모 파업으로 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1월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금속노조 중앙본부에 가서 조합원 현황자료를 보니 퇴직자노조 조합원 비율이 꽤 됐다. 전체 조합원 226만6천명 중 은퇴자 비율이 51만6천명으로 23%를 차지하고 있었다. 실업자 조합원도 21만4천명으로 10%, 이주노동자도 8%나 됐다. 학생은 1만4천여명으로 0.6%를 차지했다.

통합서비스노조의 경우 산하 13개 전문영역 중 보건복지 분야가 포함된 보건·사회서비스·복지·교회 분과가 36만7천816명으로 최대 조합원을 보유하고 있다. 고용돼 일하고 있는 조합원이 30만7천733명이고 이 중 풀타임이 16만4천966명, 파트타임이 12만8천54명, 은퇴자·실업자 조합원은 6만83명이다. 금속노조와 통합서비스노조에서 보는 것처럼 산별노조는 단순히 규모만 큰 것이 아니라 고용형태를 뛰어넘어 모든 노동자들 조직하고 있었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한국의 모든 중앙조직이 서울에 집중돼 있는 것과 달리 독일은 산별노조 중앙본부가 여러 도시에 흩어져 있다. 통합서비스노조와 철도·교통노조, 경찰노조만 수도 베를린에 있고 금속노조, 건설·농업·환경노조와 보육·교육노조는 남쪽 프랑크푸르트에 자리를 잡았다. 광산업·화학·에너지노조는 하노버에, 음식료·숙박업노조는 함부르크에 있다. 노동절 등 노조 중앙행사도 수도 베를린에서만 하지 않고 매년 지방을 순회하면서 개최한다.

독일에는 7만3천900개의 단체협약이 있는데 50%는 포괄단체협약이다. 대부분 지역 단위 산별에서 체결한다. 50%는 기업별 단체협약이다. 이 중 478개 단체협약은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협약으로 노동부가 고시하고 있다. 통합서비스노조의 경우 산별중앙교섭과 더불어 현장교섭이 활성화돼 공공에서 84개, 민간에서 2천개 등 총 2천84개의 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단체협약 적용률은 서부지역의 경우 98년 76%에서 2012년 60%까지 떨어졌고 동부지역의 경우 같은 기간 63%에서 48%까지 떨어졌다.

2008년 경제위기 후 독일 노조의 주요 정책방향은 임시·비정규 노동을 규제하고 단체협약 적용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법정 최저임금제 도입에도 힘을 쏟고 있다. 독일에 있는 동안 참석했던 노조집회의 대부분 구호는 "최저임금 8.5유로 쟁취"였다. 노조 내부적으로는 2000년대 중반 슈레커 캠페인(1900년대) 같은 조직화 사례를 포함한 조직화 논쟁 이후 사적 영역 등 새로운 직종에 대한 조직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조직화 노력 덕에 하향 추세가 멈추고 소폭이지만 상승세를 타기 시작했다.

우리는 80만명이 조직된 민주노총에 16개의 크고 작은 산별연맹이 있는데 금속이 15만명으로 최대 규모다. 이에 반해 독일은 200만명을 넘는 거대 산별이 2개나 있으면서 규모의 경제 효과를 최대한 살리면서 당면 과제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최근 한국은 비정규직 투쟁과 전략조직화가 노동운동의 최대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이 노동조합의 자체 조직정비, 즉 모든 고용형태의 노동자를 조직화할 수 있고, 규모의 경제를 활용한 대정부·대국회 법·제도화 교섭과 투쟁의 이점이 있는 산별노조로의 전환 없는 비정규직 투쟁은 사상누각이 될 수도 있다. 단기 대응에 머물면서 성과를 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다시 한 번 독일발 산별노조운동의 규모와 힘, 그 효용성에 주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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