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성과자에 대한 해고 기준·절차 마련을 위해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는 가운데 전환배치·징계를 쉽게 하는 내용의 단체협약 개정 가이드라인까지 검토하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개별 노사관계뿐 아니라 집단적 노사관계까지 손대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고용노동부가 13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한 합동업무보고에 포함됐다. 기획재정부와 노동부·국토교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공정거래위원회가 함께 업무보고를 했다.

정부 "경영권 침해 단협 조항 바꾸자"

이날 업무보고에서 노동부가 제출한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동시장 구조개선 보고서’는 지난달 23일 나온 ‘노동시장 구조개선의 원칙과 방향에 대한 노사정 기본합의’와 같은달 29일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 정부안에 담긴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노동부가 노사관계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으로 “배치전환 규제 등 단체협약 중 불합리한 내용의 개선, 부당노동행위·불법파업 근절 등 불합리한 협약·관행을 개혁하겠다”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의 힘이 강하거나 활동이 활발한 사업장의 단체협약은 대부분 조합원에 대한 전환배치나 인사이동시 노사가 합의하거나 노조의 동의를 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회사 징계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하는 내용의 단협을 체결한 사업장도 적지 않다. 조합원들의 고용안정을 꾀하고, 회사의 보복성 인사조치를 막는 조항이다.

노동부는 이런 조항이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보고,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개정을 유도하겠다는 방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기업에서 공장이나 부서 간 물량차이로 전환배치가 필요한데 노조 동의를 받도록 한 단협 조항에 가로막히거나, 노사 동수의 징계위에서 노조가 징계 안건을 부결시키는 사례가 많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노동계 "유노조 사업장 단협 무력화 의도"

노동부는 지난달 29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통해 저성과자에 대한 전환배치·해고,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취업규칙 변경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노동부는 이날 업무보고 내용이 비정규직 종합대책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만들게 되면 노조의 힘이 약하거나 노조가 없는 사업장 노동자들이 피해를 볼 것으로 우려된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이날 업무보고에서 노조의 힘이 강한 사업장의 단협을 손보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노동시장 전반에서 유연성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송영섭 금속노조 법률원장은 “전환배치는 경영권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근로조건과도 직결되는 문제이고, 법원도 징계절차를 근로조건과 연관된 것으로 보고 관련 단협 조항의 유효성을 인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송 원장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쉽게 하려는 정부가 노조가 있는 사업장의 단협까지 무력화시키려 한다”고 비판했다.

장기적인 고용안정과 회사 경영안정을 위해 전환배치가 필요하더라도 정부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방식은 실효성이 낮다는 의견도 나온다.

박태주 고용노동연수원 교수는 “현대자동차를 예로 든다면 노조가 전환배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고용불안과 노동강도 강화를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환배치를 해고의 전 단계로 악용하는 사업장이 많은 현실에서 노조가 거부감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는 “노사 합의하에 예상되는 문제점을 완전하게 해소한 뒤에 전환배치를 해야지 정부가 가이드라인으로 찍어 누르면 노조의 반발만 부를 뿐”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노동부는 이날 노동계가 요구해 온 △출퇴근재해에 대한 산재보험 보상방안 △감정노동 종사자의 업무상질병 인정기준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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