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발표한 고용노동부 수장이 세간의 논란을 의식해 직접 설명에 나섰다. 지난 5일 기자간담회에서 이기권 장관은 35세 이상 기간제 고용기간 제한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의 정당성을 역설했다.

이 장관은 “기간 연장 때문에 기간제나 파견근로자가 늘어난다고 보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사용사유를 제한하면 (용역이나 도급으로 가는) 풍선효과가 더 클 것이라는 게 많은 학자들의 시각”이라며 노동계가 요구한 사용사유 제한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여기서 풍선효과는 직접고용 된 기간제의 고용기간을 제한하자 파견·용역 등 간접고용이 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기권 장관은 2009년 노동부 근로기준국장 재임시 기간제 고용기간 연장을 제안했던 당사자다. 2007년 비정규직 관련법 시행 후 기간제는 고용기간이 만료해 정규직 고용의무가 발생하는 시점이었다. 당시 노동부는 기간제 100만명의 대량해고를 경고했다. 이 장관이 기간제 고용기간 연장을 제안한 배경이다. 하지만 기간제 대량해고는 없었고, 노동부가 추진했던 기간제 고용기간 연장은 백지화됐다.

되레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대통령 선거를 거치면서 비정규직 규모 축소와 간접고용 억제방안이 떠올랐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조차 대기업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고용원칙, 공공부문 비정규직 무기계약직 전환, 사내하도급 법안을 공약했을 정도였다. 박근혜 정부 출범 후에는 고용률 70% 달성을 목표로 했지만 시간선택제 일자리 확산에 주력했을 뿐이다. 19대 국회 개원 후 첫 국정감사에서는 간접고용 규제가 부각됐다. 이 시점까지만 해도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보완하고 간접고용 규제방안을 마련하는 추세였다. 이런 흐름에서 보면 이기권 장관 취임 후 발표된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뜬금없는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나 국정과제와 비교하더라도 낯설다는 얘기다.

이 장관이 거론한 풍선효과와 관련해 스페인의 사례가 주로 거론된다. 스페인은 유럽연합 가입국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과 고용유연성이 높은 나라다. 유럽연합 평균에 비해 임시직 비율이 두 배나 많다. 스페인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적 실험을 벌였다. 80년에 노동법을 개정해 비정규직(임시직) 고용에 대한 5가지 사용사유 제한조치를 입법화했다. 정규직·임시직 모두 동일직무·동일임금도 적용했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는 일관되게 유지되지 못했다. 84년 사용사유 제한조치를 우회하는 고용촉진계약제가 입법화되면서 임시직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스페인 정부는 97년과 2006년에 사용사유 제한을 강화하고, 정규직 전환을 위한 보조금 지원방안을 발표하면서 정책 변경을 시도했다. 폭증하던 임시직은 잦아드는 듯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0년 경제위기가 닥치자 스페인 정부는 또다시 사용사유 제한 완화를 추진했다. 노동계의 강한 반발에도 정규직 전환보다 비정규직 해고와 노동유연성을 확대한 것이다.

스페인 사례는 사용사유 제한이 비정규직 축소를 위한 가장 강력한 대책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하지만 사용사유 제한을 완화했던 시기에는 파견과 용역이 혼합된 불법적인 고용관행이 극성을 부렸다. 이처럼 사용사유 제한을 풀었다가 또다시 죄는 식으로 정책이 오락가락하면 그 효과는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기간제 고용기간을 제한하니 간접고용이 증가한 우리나라 사례와 유사한 셈이다. 이른바 풍선효과다.

이를 고려하면 참여정부가 입법한 기간제 고용기간 제한은 그야말로 ‘각론적 접근’이었다. 풍선효과라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다. 그런데도 이기권 장관은 기간제 고용기간 연장이라는 각론적 접근을 되풀이하려 한다. 이 장관은 “고용기간 연장으로 비정규직은 늘지 않을 것”이라고 담대하게 말한다. 기간제 고용기간 제한을 추진했던 참여정부도 "비정규직 규모가 줄어들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풍선효과라는 부정적 결과가 나타나면서 공수표가 됐다. 이런 과정을 잘 아는 이 장관이 또다시 오류를 되풀이 할 이유가 없지 않나.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각론적 접근이 아니라 말 그대로 구조개혁을 위한 근본처방이어야 한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상시·지속적인 업무의 정규직 고용원칙을 천명한 데 이어 국민 생명·안전·위험 업무에 대해 정규직 고용을 추진하고 있다. 이처럼 전체 비정규직을 제한하되 간접고용을 강하게 규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모든 비정규직에 대해 사용사유 규정을 신설하되 특정한 사유가 있을 때만 비정규직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 각론이 아닌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꼴을 갖추자는 것이다. 그래야 정책 효과도 커지고 누적된다. 더할 나위 없이 ‘장그래 살리기’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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