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시설을 초토화한 뒤 특허권만 빼 가는 ‘기술 먹튀’ 논란이 제기됐던 하이디스테크놀로지가 결국 이천공장을 폐쇄하고 LCD 생산을 중단하기로 했다. 380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일자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최악의 해외매각이 끝내 ‘제2의 쌍용차 사태’를 불렀다.

◇하이디스 "경영상 해고 불가피"=7일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지회장 이상목)에 따르면 제이슨 린 대표이사는 이날 오전 사내게시판을 통해 공장 폐쇄 결정을 공지했다. 린 대표는 “회사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가능한 모든 방안을 검토하고 시도했다”며 “하지만 이런 각고의 노력에도 생존전략을 마련하지 못해 공장을 폐쇄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린 대표는 이어 “생산부문은 지속적인 손실을 기록해 왔고, 향후 산업 및 사업 전망을 고려하면 경영정상화의 희망이 없다”며 “회사는 앞으로 노동조합과의 대화를 통해 직원 여러분께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사전 통지 및 관련 협의 참여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지회와 하이디스노조에 전송했다. 회사는 공문을 통해 “노조와 고용안정위원회를 구성해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를 피하기 위한 방법과 해고자 선정기준 등 제반사항에 대해 성실히 협의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요식절차에 돌입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구조조정은 하이디스의 대주주인 대만 이잉크 자본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이잉크측은 “(본사의) 경영사정이 좋지 않아 더 이상 하이디스를 지원할 수 없다”고 밝힌 상태다.

◇노조 "기술유출 목적 달성 뒤 먹튀"=현대전자 LCD사업부로 시작한 하이디스는 현대전자가 부도 처리된 뒤 2002년 중국의 비오이그룹과 2008년 대만의 이잉크사에 연이어 매각됐다.

이 과정에서 두 외자기업에 의한 기술유출 의혹이 불거졌다. 급기야 국내공장의 LCD 생산량마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도 3차례나 휴업이 이뤄지는 등 공장 가동이 원활하지 않았다. 두 번의 매각을 거치며 직원 3명 중 2명이 회사를 떠났다.

하이디스의 몰락은 이잉크 자본의 경영방식에 기인한다. 이잉크사는 하이디스를 인수한 뒤 설비·연구개발 투자를 하지 않았다. 대신 특허기술을 이용해 영업을 하는 방식으로 이익을 취했다. 국내 생산물량은 해외 자회사로 빼돌렸다. 실제 하이디스 영업이익의 대부분은 특허기술을 공유한 대가로 외국 동종기업으로부터 받는 로열티다. 생산부문에서는 적자가 지속되고 있다.

이잉크사에 앞서 하이디스를 인수했던 중국 비오이 자본도 마찬가지 수순을 밟았다. 비오이그룹은 기술을 공유한다는 명분으로 양사의 전산망을 통합해 기술을 빼 갔다. 이어 하이디스를 인수한 지 7개월 만에 중국공장에서 하이디스 기술을 활용해 LCD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2008년 검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비오이는 하이디스의 기술자료 4천331건을 유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이디스의 사례는 해외자본의 먹튀 행각에 따른 기업 부실화가 대규모 정리해고로 이어진 쌍용차를 떠올리게 한다. 2009년 해고된 쌍용차 노동자들은 6년이 지나도록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직원들은 이날 하이디스의 구조조정 결정에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부기 하이디스지회 수석부지회장은 "생존전략을 찾겠다며 재매각을 추진해 온 회사측은 인수의향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법인을 분리해 특허권과 이천공장을 분할하는 데 동의하면 매각이 성사될 수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펼쳤다"며 "비오이도 이잉크사도 처음부터 하이디스의 원천기술을 빼돌리는 것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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