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동
민주노총 해고자
복직투쟁
특별위원회 위원장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점에서 주로 사용하는 표현인 송구영신!

12월까지의 월력을 새로운 달력으로 교체하는 것 이외에 삶의 조건을 새롭게 바꾸는 계획과 목표를 세울 수 없는 사람들이 바로 해고자들이다.

과거를 회복해야 새로운 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송구영신이 어떤 의미가 있으랴.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임금을 받아 살아가는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인간은 노동과 그 대가인 임금지급이 조화로워야 그나마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노동자가 일정한 삶의 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정한 임금을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 상호 교환할 노동력을 유지해야만 한다. 상호 간의 교환비율이 등가교환에 가까울수록 노동자들의 삶이 안정화에 가까워진다.

이처럼 노동과 임금은 굴러가는 수레의 양 바퀴와 같이 필수불가결한 문제다. 양자 간의 균형과 조화에 균열이 생기는 경우가 위기시의 임금하락 또는 고용의 종료, 즉 해고다.

이런 경우에 노동하는 개인과 그를 중심으로 한 가족의 삶은 우선멈춤 상태가 되며 길어지면 장기멈춤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삶의 위기, 가족의 위기로 치닫게 된다. 대출과 카드 등의 금융수단이나 주변의 일시적 지원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해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같은 고용형태를 불문하고 장기해고자의 고통은 개인과 가족의 안온한 삶을 점차 파괴시킨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이들이 해고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복직 아니면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뿐이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복직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권리구제수단을 사용한다. 노동위원회와 법원을 통한 수단을 제외하면 전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방법들이다.

노사합의 또는 개별합의를 위한 사업장에서 요구와 호소, 다양한 사회적 압박수단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결과를 예단할 수 없는 방법들이다.

복직을 포기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 떠나지 않는 한 고통이 ‘장기화’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조건이다.

장기투쟁 사업장, 장기해고자는 이러한 연유에서 비롯된다. 구상할 수 있는 모든 투쟁수단을 동원해 본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 극한적인 농성이다.

7~8년씩 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십수년째 해고자투쟁을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심지어 최근 수년 동안 굴뚝으로 철탑으로, 농성장소가 바뀌는 경우도 다반사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다른 수단을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죽는 것 이외에 달리 방법을 찾기 어려운 노동자들이 내려올 기약 없이 하늘로 오르고 있다. 이른바 '고공농성' 등 극한적 투쟁수단에 낯이 익어 버렸다. 그만큼 제도적 수단과 조직적 결과로서 해고 이전의 삶으로 돌이킬 방법이 없는 사회가 낳은 시대적 살풍경이다.

각박한 세태에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거리의 사람이 되는 그 순간부터 삶의 시계는 멈춰 버린다. 이들에게 송구영신은 ‘의미없다’이다.

고통스런 오늘이 내일이며 그 내일은 절망감이 짓누르는 오늘의 연장일 뿐이다. 그나마 2014년 연말은 끈질긴 투쟁으로 씨앤앰 해고자 109명과 공공부문의 사회보험노조·도시철도노조·대구지하철노조·교원공제회 콜센터 해고자들이 복직한다는 낭보가 있어 2015년의 희망을 가늠하게 된다.

이처럼 현장으로 돌아가는 노동자들 이외에 여전히 거리에서 찬바람을 맞는 노동자들은 연말연시에 송구영신이 불가능하다. 거리의 사람들에게 계급적 연대와 사회적 연대가 절실한 이유다. 거리에서 버티는 노동자들이 2015년에는 진정한 송구영신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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