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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고-비정규직 종합대책 무엇이 문제인가 ③] 비정규직 양산 가속화할 준비되지 않은 시간제 일자리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최혜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부장

외환위기 이후 급증한 비정규직이 사회문제가 되자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격차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법을 만들었다. 2001년 7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비정규직 근로자 대책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지 5년여 만이었다. 법에는 노동계가 요구한 사유제한이 빠지고 기간제한만 어정쩡하게 들어갔다. 그래도 사용자들에게는 기간제한이 눈엣가시였던 모양이다. 정권이 바뀌자마자 기간제한을 없애야 한다고 주문했고, 이명박 정부는 집권 2년차를 앞두고 덥석 받아물었다. 2년을 4년 혹은 3년으로 늘리지 않으면 100만 해고대란이 일어난다고 위기감을 조성했다. 근거가 미약해 여론의 반발만 샀고, 법 개정을 추진하던 주무장관은 물러났다. 박근혜 정부가 집권 2년차 막판에 다시 기간제한을 4년으로 풀겠다고 나섰다. 파견 업무를 확대하고, 정규직 고용을 완화하는 내용까지 세트로 묶었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박근혜 정부의 비정규직 대책을 평가하는 기고를 보내왔다. 5회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고용노동부가 2014년 12월 노동시장을 유연화해 정규직 채용 여력을 확대한다며 노동시간단축과 탄력적 활용을 발표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발표한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의 핵심인 시간제 일자리와 연결되는 내용이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여성고용과 장시간 노동 환경을 개선해 고용률을 높이고자 시간제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여론은 싸늘하기만 했다.

시간제 일자리는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라는 부정적 인식이 강하다. 정부가 시간제 일자리 도입을 발표했을 때 노동계와 여성계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제도라고 거세게 비판했던 것을 보면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인식과 우려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정부는 정규직과의 차별 금지, 최저임금과 4대 보험 등 기본적 노동조건을 보장하겠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하고 미흡해 보인다.

노동부는 연장근로시간의 총량규제와 근로시간 저축계좌제 등을 포함해 전체적인 노동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에 명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을 위한 내용이 아닌 노동력 사용의 유동성을 통해 노동비용을 절감하려는 사용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다. 더욱이 새누리당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개악안과 맞물리면서 임금을 낮추려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물론 시간제 일자리가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성의 시간제 일자리 비중이 60%가 넘는 네덜란드의 경우 경제위기에도 대량 실업 가능성이 낮고 세수가 늘어나 복지국가를 유지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 네덜란드는 높은 실업률에 대응하고자 시간제 일자리를 도입했다. 당시 노동조합이 시간제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건 차별금지, 노동시간 결정권 보장 등 시간제 일자리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규제를 요구하면서 정책 방향이 질적 개선에 맞춰졌다. 기업도 계절적 요인이나 생산수요 변동에 유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노동비용을 절감할 수 있게 됐다.

이처럼 노·사·정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밀어붙이는 고용률 70% 달성 로드맵과 비정규직 대책으로는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측면을 담보할 수 없어 오히려 비정규직이 양산될 것이다. 진짜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를 통해 고용률을 높이고 경제의 선순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인식의 변화다. 한국은 장시간 노동이 만연한 데다, 노동시간의 양으로 노동의 질을 파악하는 습성이 있다. 이는 장시간 노동을 부추김과 동시에 시간제 노동자의 근무평가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 잦은 초과근무와 갑작스런 업무지시는 시간제로 일하면서 전일제로 일하는 것과 다름없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이러한 행태를 바꾸고, 시간제 일자리 특수성을 반영한 인사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전일제 정규직과의 차별 금지, 공정한 승진 기회, 현실성 있는 최저임금 산정, 노동시간 선택권 등 시간제 일자리의 질적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구체적인 제도가 전제돼야 한다. 전일제에서 시간제로 전환했을 경우 기존 업무상 지위나 위신의 저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 밖에도 노동시간을 단축하기에 여전히 부족한 사회적 인프라, 여가시간보다 소득 증가가 우선인 노동자의 선호, 장시간 노동이 더 많은 소득을 보장하는 수당 체계 등 꼼꼼히 짚어 봐야 할 지점이 적지 않다. 시간제 일자리에 대한 법제상 보호뿐 아니라 단체협약 등을 통해 질적 수준을 높일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해 봐야 한다.

노동은 생계다. 준비되지 않은 시간제 일자리와 노동시간단축은 낮은 임금수준에 따른 생계유지의 어려움 탓에 여러 개의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하는 비정규직만 양산할 뿐이다.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 대책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우리는 노동자로 온전히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제대로 된 대책을 요구한다.

최혜인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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