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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46] “청계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다음날 동부경찰서 소속 경찰관 3명이 노동교실로 찾아와 노동교실 관리인 이양현씨와 재단사인 또 다른 이씨를 찾았다. 이양현이라는 사람은 풍천화섬 노동자들이 농성을 할 때 배포한 유인물을 만들어 줬고,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재단사 김씨와 얼굴이 예쁘게 생기고 쌍꺼풀진 눈의 재단사 이씨는 교육을 했기 때문에 찾는다는 것이었다. 재단사 김씨와 재단사 이씨는 다름 아닌 김세균과 장명국이었는데 그 이름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양현은 전남대 출신으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와 노동교실 관리를 하면서 조합원들과 친밀하게 지냈다. 이양현과 재단사 김씨·이씨는 풍천화섬 노동자들이 노조 결성식을 하지 않고 가두까지 진출한 끝에 경찰에 연행을 당하자 일단 자리를 피한 뒤 사태를 관망하고 있었다.

박숙녀 위원장 검거 실패, 화살은 노조로

두 사람을 찾지 못한 경찰은 노동교실 주위에서 잠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 종일 지키고 있어도 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튿날 경찰은 노동교실 안으로 침입해 서류를 뒤지고, 교실을 지키고 있던 배철수를 불법적으로 연행해 갔다. 경찰은 배철수한테 이양현과 재단사 이씨를 찾아내라고 몇 시간 동안 폭행을 가했다. 그러나 배철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경찰은 나오는 것이 없자 3천원을 주면서 양승조 총무부장을 잡는 데 협조해 달라면서 내보냈다. 경찰서에서 두들겨 맞았다는 얘기를 하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라는 위협도 가했다.

1976년 9월12일 밤 12시가 넘어 양승조와 배철수가 이소선의 집으로 잠을 자러 왔다.

"승조야, 왜 여기에 왔어? 좀 더 두고 보다가 괜찮다 싶으면 들어올 일이지."

"어머니, 괜찮을 거예요. 그동안 다른 곳에서 잠을 잤는데 박숙녀를 도피시킨 것까지 경찰이 알 수는 없을 겁니다. 박숙녀는 잡히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새벽에 경찰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잠자고 있는 양승조와 배철수를 끌고 가 버렸다. 소식은 즉각 조합원들한테 알려졌다. 날이 밝자 연행소식을 듣고 노조간부들은 동부경찰서로 몰려갔다.

그 시각 동부경찰서 경찰들은 노조간부들이 경찰서로 간 사이 경리 혼자서 지키고 있던 노조사무실에 들이닥쳐 경리장부를 빼앗아 갔다. 경찰은 경리장부를 빼앗아 가면서 "장부에서 100원이라도 착오가 나면 청계피복지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이소선은 이날 오후 조합원 20여명과 함께 동부경찰서로 갔다. 경찰은 경찰서 입구에서부터 철통같이 가로막았다.

"사람을 불법으로 연행해 놓고 면회도 못하게 막아?"

경찰은 이들의 항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막고만 있었다. 조합원들은 경찰서 입구에 주저앉아 소리를 질렀다. 한참을 소리 지르며 버티고 있으니까 계급이 조금 높은 듯한 경찰이 나왔다.

"면회를 하려면 몇 사람만 와야지 이렇게 집단으로 오면 해 줄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기 온 사람 중에 대표로 3명만 면회를 시켜 줄 테니 3명만 들어오시오."

"우리가 다 대표인데 누구는 들어가고 누구는 못 들어가는 것이 말이 됩니까?"

"아! 지금 조사 중이라 면회를 할 수 없어요. 특별히 시켜 주려고 하니까 3명만 들어와요."

"3명은 너무 적으니 6명 들어갑시다."

이에 그는 고민하는 척하다가 선심 쓰듯이 말했다.

"좋아요. 6명만 들어와요."

이렇게 해서 이소선을 포함한 6명이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 4층에 있는 정보과로 올라갔다.

4층 정보과 사무실 입구에 당도하니까 덩치가 집채만 한 형사 6명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이봐! 어디 가는 거야?"

"정보과에 면회하러 가는 거요."

"누구 맘대로 면회를 해! 정보과는 면회하는 데가 아니니까 내려가!"

숫제 명령조다. 밖에서 소란을 피우니까 면회를 시켜 주겠다고 기만한 것이다.

"야 이 새끼야! 면회시켜 준다고 해서 들어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라는 거야. 너희 놈들은 금방 한 약속도 이런 식으로 안 지키냐?"

이소선의 입에서 곧바로 욕이 나왔다.

노조간부 불법적 연행, 면회조차 금지

"이게 어디서 큰소리야, 큰소리가. 내려가!"

덩치가 우격다짐으로 밀어붙였다. 졸지에 당하는 것이라 밀려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소선은 하도 분해서 계단에 주저앉아 소리소리 질렀다.

한참을 싸우고 있으니까 정보과장이 내려왔다.

"이 여사, 이러지 마시고 돌아가세요. 양승조와 배철수는 우리가 조금 조사를 할 것이 있어서 그러니 조금만 기다리세요."

"왜 면회시켜 준다고 해 놓고 이제 와서 못 시켜 주겠다고 하는 거야? 사람 놀리는 거요, 뭐요?"

"지금은 조사 중이고 오늘은 늦었으니까 내일 오시면 면회시켜 드리겠소. 내일 오세요."

"당신들이 두 사람을 고문하고 있으니까 면회를 안 시켜 주는 것 아니야?"

"그럴 리가 있나요? 손은 안 댈 테니까 염려 마시고 오늘은 돌아가세요."

이소선은 저녁에 조합원들이 모여 노동교실에서 집회를 갖기로 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냥 경찰서에서 나왔다.

노동교실에 돌아와 보니 조합원들이 모여 농성을 하고 있었다. 조합원들은 불법연행 중지와 연행자 즉각 석방, 압수수색 영장 없는 불법적 장부 탈취와 ‘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발언 사과, 면회금지 철회를 요구했다.

저녁 9시30분쯤 됐을까. 정보과 형사 10여명이 농성장에 난입하려고 하자 조합원들이 문 앞을 가로막고 못 들어오게 했다. 경찰은 무조건 해산하지 않으면 전원 연행하겠다고 위협했다. 조합원들이 흥분해 해산하지 않을 움직임을 보이자 정보과장이 청계피복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에 대해 사과하도록 할 것이며, 면회금지 조치도 해제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농성은 밤 11시께 조합원들이 자진해산하면서 끝났다.

농성하는 청계피복노조 조합원들

9월14일 오후 이소선은 지부장·부녀부장과 함께 동부경찰서를 찾아갔다. 경찰은 어제와 달리 이들을 정보과로 안내하고 양승조와 배철수를 면회하게 해 줬다.

둘은 불과 며칠 사이에 얼굴이 형편없이 여윈 모습이었다. 말은 안 해도 심하게 맞은 표시가 났다. 이소선이 맞았으면 맞은 사실을 이야기해 달라고 하니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정보과 형사들이 정보과장이 만나고 싶어 한다며 이소선 일행을 정보과장실로 데리고 갔다. 이소선은 어차피 정보과장을 만나서 따질 것은 따져야 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을 양승조와 배철수한테 전해 주고 정보과장실로 갔다.

정보과장실에서 소파에 거만하게 앉아 있던 과장은 이소선 일행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시늉을 했다.

"여기 앉으시죠."

이소선은 시큰둥하게 앉으면서 말했다.

"왜 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 때리는 거요?"

"때리기는 누가 때려요? 그럴 리가 있나요."

정보과장은 과장된 몸짓을 하면서 변명을 했다.

"아니, 청계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든다면서? 한번 쑥대밭으로 만들어 봐! 어떻게 만드는가. 쑥대밭을 만들기 위해 양승조와 배철수를 잡아다 고문을 하는 거여?"

"누가 그런 말을 해요?"

"안 했어요? 청계노조에 와서 무슨 근거로 경리장부를 빼앗아 가는 거요?"

"잠깐 조사할 것이 있어 그런 겁니다."

"청계노조를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것에 대해서는 그냥 얼버무릴 거요?"

"그런 발언을 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누가 했는지 조사를 해서 잘못을 시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보과장은 노조에서 빼앗아 간 경리장부를 가져오라고 부하에게 지시했다. 장부는 즉시 도착했다. 장부 압수와 노동조합을 쑥대밭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정보과장의 공식적인 사과 정도로 끝냈다.

그 후에도 매일 밤 8시 이후 노동교실에서 집회를 하면서 그날그날 있었던 일을 공유하고 앞으로의 대책을 결정했다.

조합원들이 하루도 빠지지 않고 집회를 열어 당국의 불법 부당한 탄압을 규탄하자, 중앙정보부 관계자가 노조사무실에 찾아왔다. 그들은 집회를 하려면 사전에 집회보고서를 내고 모든 결의는 운영위원회나 대의원대회 같은 공식회의에서 하라고 위협을 가했다.

경찰이 양승조와 배철수를 연행해서 붙들어 놓고 있는 이유는 중심적인 인물을 잡기 위해서였다. 경찰은 이양현이나 재단사 이씨, 그리고 박숙녀를 잡아야 하는데 정작 구속시켜야 할 당사자들의 소재는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승조나 배철수에게 배후조종 혐의를 두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양승조는 뭔가 관계가 있는 것 같은데 뚜렷한 물증이 없고, 배철수는 아는 게 별로 없어 배후조종자로 적당한 인물이 아니었다.

경찰은 고민 끝에 배철수를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구류 4일에 처했다. 양승조는 직책이 총무부장이었기 때문에 장부상 2천원의 출처가 기록되지 않은 것을 트집 잡아서 추궁하기 시작했다. 2천원은 박숙녀를 도피시키기 위한 택시비였다. 경찰은 범인은닉 혐의로 양승조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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