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때문에 기업들이 겁이 나서 인력을 뽑지 못하고 있는 만큼 노동시장의 개혁이 반드시 필요하다”, “정규직이 늘어나는데 월급도 계속 오르니 기업이 감당할 수 없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조금씩 양보를 해 윈-윈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연공서열형 임금체계의 경직성이 심각하다.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사람과 막 입사한 사람의 연봉 차이가 제조업의 경우 2.8배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은 2배에 가깝다”, “과도한 연공형 임금체계는 생산성과 보상의 미스매치로 인해 중장년 근로자의 조기 퇴출, 대기업·정규직과 중소기업·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확대, 정규직 신규 채용 회피 및 비정규·간접고용 확산 등을 일으킨다”

최경환 부총리겸 기획재정부 장관·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정부의 또 다른 관료들이 말했다. 이들 중 누가 어떤 말을 했는지 구분할 필요조차 없다. 지금 이 나라에서 권력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최근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노동시장의 양극화가 질 좋은 일자리 창출을 막고 우리 경제를 저성장의 늪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비정규직과 정규직 간 임금격차, 노동시장의 경직성, 일부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 등은 노사 간, 노노 간 갈등을 일으켜 사회통합을 가로막는 대표적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2월1일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 없는 내년(2015년)이 구조개혁 적기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서 드디어 정부는 입사 초반에 호봉제, 중반부터는 직무·성과급제, 후반부터는 임금피크제를 각각 적용하는 복합 임금체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를테면 숙련도가 올라가는 입사 후 10년까지는 호봉제를, 성과 등이 본격적으로 차별화되는 11∼20년차는 성과·직무급을, 퇴직이 가까워지는 21년차부터는 임금피크제를 복합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고 언론은 7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했다.

2. 지난 11월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세르지오 호샤 한국GM 대표의 말을 인용해 "한국시장에 투자를 더 확대해 달라고 본사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며 "고용 경직성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고 임금상승률은 꾸준히 올라 경영에 어려움이 많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말하고는 고용노동부가 "직무와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의 개편을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는 기업 규모·업종별 임금모델을 개발·보급하고 있으며 임금피크제 지원금도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니 이미 정부, 노동부는 대기업 정규직 임금제도를 개편하기 위한 노동시장의 개혁을 추진해 왔던 것이다. 이제 박 대통령 임기 중 선거가 없는 유일한 해인 내년에는 노동시장 개혁을 마무리하겠다고 하고 있다. 이렇게 말을 쏟아내며 권력의 결의를 선언하고 이제 구체적인 개혁의 방안까지 거론하고 있다.

임금제도로 보자면 입사한 사람의 연봉 차이가 제조업의 경우 2.8배나 돼서 투자하고 싶어도 외국자본은 투자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배가 높으니 겁이 나서 도저히 투자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외국자본만이 아니라 수백조원의 사내유보금을 보유하고 있는 국내자본조차도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겁나는 대기업 정규직 임금제도고 겁나는 대한민국 임금제도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미 대규모 투자를 해서 공장 등 시설의 가동하고 있는 기업들이 불쌍하기조차 하다. 어쩔 수 없이 정규직 노동자를 통해 생산을 할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재용 부회장이, 현대차그룹의 정몽구 회장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대규모 투자한 공장·시설 등을 볼모로 붙잡혀 있는 것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대한민국 회장님들이 안쓰럽다. 그래서 나는 생각해 봤다. 이 나라 임금제도가, 노동자가 국내외 회장님들을 겁을 집어먹도록 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3.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무한 사람과 막 입사한 사람의 연봉 차이가 제조업의 경우 2.8배라서 겁을 집어먹고 정규직을 뽑을 수가 없다니 어째야 하겠는가. OECD 회원국 평균으로 줄이는 것이 방법이겠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 권력은 이렇게 하겠다고 입사 초기에는 호봉제·연공급제 임금제도로 그대로 두고 이후 직무 성과급제·임금피크제로 복합 임금체계 방안을 고안하고 있단다. 어떻게 해서라도 자본의 애로사항을 해결해 주려는 정부 관계자의 복합적인 고민이 이러한 방안에 담겨 있는 것이 틀림없다. 회장님들의 걱정을 덜어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고 나라 경제를 살리려는 고심이 복합적으로 방안의 이름과 내용에서 읽힌다. 그 진정성을 나는 의심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어쩌나. 이 복합적 임금체계 방안은 실현되기 어렵다. 복합 임금체계 방안으로는 2015년에 노동시장의 개혁을 해 낼 수가 없다. 호봉제·연공급제 임금제도에서 복합체계의 임금제도로 변경하려면 노조와 체결한 임금제도 관련 단체협약을 변경해야 한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이라면 정규직노조라는 대한민국 노동시장의 장애물 하나는 없는 것이지만 그래도 불이익변경이라면 근로기준법 제94조에 따라 근로자들 과반수의 집단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노동자 아무개가 불만을 품고 노동자 임금권리를 저하시키는 ‘나쁜’ 제도라고 선동이라도 한다면 사업장에서 도입된다고 장담할 수가 없다. 설사 도입했다고 해도 ‘나쁜’ 제도라고 폐지해야 한다고 산별노조와 노총이 지침을 만들어 노조가 해마다 교섭을 요구해 온다면 그걸 들어주지 않으면 파업 등 쟁의로 막대한 생산차질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인데 지켜 낼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거창하게 노동시장의 개혁을 말했지만 말만 남게 된다. 개혁의 결과는 없게 되는 ‘나쁜’ 개혁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말 것이다. 이 방안은 회장님들의 걱정을 덜어 줄 방안이 아니었다고 평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그때서야 애당초 복합 임금체계 방안을 고심하게 된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를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한 직장에서 30년 이상 근무자와 신입사원의 임금 차이가 2.8배라는 것, 이것은 장기근속자가 많은 임금을 받아서가 아니라 신입사원이 적은 임금을 받아서는 아닐까.

4. 대한민국 노동자 평균이 2.8배인데 OECD 회원국 평균이 그 절반이라면 대한민국과는 달리 신입사원이라도 장기근속자와 크게 차이 없는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이 대한민국 장기근속의 노동자가 OECD 회원국 장기근속 노동자보다 많은 임금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진 않는다. 대한민국 정규 노동자가 2.8배이라고 스웨덴(1.1배)·네덜란드(1.3배) 등에 비해 2배 이상 더 받고, 심지어 일본(2.5배)·독일(1.9배)보다도 크다고 더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떤 정부 관계자도 30년 장기근속자의 경우 대한민국 노동자가 스웨덴·네덜란드·일본·독일의 노동자보다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는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심지어 경총 등 사용자단체도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시간당 임금수준을 비교해서 대한민국 노동자가 세계 최고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제 7일 매일노동뉴스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호봉제·연공급제 임금제도인데, 임금수준은 다음과 같다. 기본급은 △초임 119만5천원 △5년차 146만1천원 △10년차 167만2천원 △15년차 181만7천원 △20년차 206만9천원이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에서 법정수당의 기준인 기본급과 제 수당이 포함된 통상급은 △초임 129만7천원 △5년차 163만9천원 △10년차 188만9천원 △15년차 206만6천원 △20년차 229만4천원이었다. 참고로 대한민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2014년 월 108만8천890원(시급 5천210원), 2015년 116만6천220원(시급 5천580원)이다. 신입사원의 초임은 기본급과 통상급이 최저임금을 조금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것이 그토록 심각한 문제라고 하는 노조가 있는 제조업의 대기업 정규직 임금수준이다. 지난주 칼럼에서 살펴본 것처럼 대한민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은 OECD의 주요 회원국들에 비해서 크게 낮은 수준이다. 절반 안팎에 불과하다. 거기서 30년을 근무하고서 지급받게 되는 임금 수준이 초임의 2.8배라는 것이 오히려 서럽다. OECD의 주요 회원국 노동자들의 초임이 그 나라 최저임금을 겨우 넘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초임 수준으로 보자면 대한민국 정규 노동자의 2배 정도다. 그것이 30년 장기근속하면 대한민국 정규 노동자의 절반만큼 인상된다는 것이니 대한민국 정규 노동자가 30년을 장기근속하고서 퇴직할 때가 돼서야 OECD의 주요 회원국 노동자 수준의 임금을 지급받게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국내외 자본의 투자를 진작시켜 나라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부로서는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알려 줘야 한다. 전혀 겁먹을 것이 아니었다고. 30년 동안 정규 노동자를 맘껏 장기 사용해도 안심해도 된다고 회장님들이 괜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주면 될 일이다. 2013년 현재 588조원에 이른다는 20대 그룹의 사내유보금을 마음껏 신규투자해서 대규모 공장·시설을 증설해 정규직 노동자를 대거 채용해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OECD의 주요 회원국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는 것이라고 말해 주면 될 일이다. 정규직 초임이 현저히 낮으니 공장·시설 가동 즉시 자동차·조선 등 생산물의 대당 노동자 인건비가 대폭 낮아질 것이다. 그러니 노동생산성이 크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저 공장과 시설을 증설해서 거기에 사용할 노동자를 신규채용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니 당장이라도 노동부·기획재정부 등은 이런 사실을 국내외 자본에 홍보하면 될 일이다. 복합적으로 고안할 일이 아니라 이렇게 단순하게 홍보할 일이다. 진정으로 국민경제를 걱정한다면. 그리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이 나라 노동자의 권리를 저하시키는 것이 권력의 소명이라고 여기고 있지 않다면.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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