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속노조

자동차 생산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는 도급이 아닌 파견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법원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제품 양산에서 출고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기업의 지휘·명령을 받으며 일해 왔다면 해당 노동자들은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특히 옛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상 고용의제 규정을 적용받는 노동자라면 이미 원청기업의 정규직 지위를 확보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법원의 판단이다.

창원지법 제4민사부(재판장 신상렬)는 4일 한국지엠 창원공장에서 일해 온 사내하청업체 노동자 5명이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들이 피고(한국지엠)의 근로자지위에 있음을 확인한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형사·민사 재판부 모두 불법파견 인정=한국지엠 창원공장이 도급의 형태로 위장한 불법파견을 행하고 있다는 판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형사사건에서 이미 유죄가 인정된 바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2월 한국지엠 대표이사와 6개 사내하청업체 대표들이 파견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대법원은 “하청업체들이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 없이 근로자파견 사업을 행하고, 한국지엠 대표이사는 파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제조업 직접생산 공정업무에 위법한 근로자파견 역무를 제공받았다”고 판시했다. 해당 판결로 한국지엠 창원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847명이 불법적인 상태로 일해 왔음이 증명됐다. 이들은 대부분 옛 파견법상 고용의제 적용 대상자들이다. 2년 이상 근무했다면 정규직 지위가 인정된다.

대법원 판결 이후 한국지엠은 정규직 노동자와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업무공정을 분리하는 방식으로 불법파견 대상자의 정규직 전환을 회피했다. 그러자 금속노조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는 5명의 소송 참가자를 모아 지난해 6월 민사소송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고, 이날 1심 판결이 선고됐다.

창원지법의 판단 역시 대법원과 다르지 않았다. 재판부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직접생산 공정에 대해 △컨베이어 라인에서 혼재돼 근무하는 근로자들은 전체 생산공정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고 △정규직과 하청노동자들이 혼재돼 동일한 업무를 수행했고 △한국지엠이 하청노동자들의 근태를 관리하면서 작업배치권과 결정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를 들어 “원고들은 하청업체에 고용된 후 피고의 작업현장에 파견돼 피고로부터 직접 지휘·명령을 받은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다”고 판시했다.

◇간접생산공정도 불법파견=재판부는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 포장·자재보급 업무 같은 간접공정에 대해서도 “근무시간 등 근로조건의 설정·관리방식이 직접생산공정과 다르지 않고, 피고의 관리자들이 업무에 대한 지휘·명령권을 행사했다”며 “간접생산업무 또한 자동차 생산업무의 중심인 컨베이어벨트의 생산속도 및 일정에 연동돼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시했다. 간접공정에 투입된 하청노동자 역시 한국지엠과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소송에 나선 노동자 5명은 모두 98년에서 2003년 사이에 입사한 뒤 지금까지 업체를 바꿔 가며 근무하고 있다. 옛 파견법상 고용의제 적용자들이다. 재판부는 "옛 파견법에 따라 원고 5명 모두 계속근로기간 2년이 만료된 다음날로부터 피고에 고용된 것으로 간주된다"며 "모두 피고의 근로자지위에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옛 파견법의 고용의제 규정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한국지엠의 주장에 대해 “고용의제 조항은 사용사업주와 파견근로자 사이의 사법(私法) 관계에서도 직접고용관계 성립을 간주함으로써 근로자파견의 상용화·장기화를 방지하고 그에 따른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것”이라며 “고용의제 조항으로 침해되는 기업과 사업주의 계약체결의 자유보다 파견근로자의 고용안정이라는 공익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판결에 따라 국내 주요 완성차업체의 불법파견 관행이 불법에 해당한다는 사실이 재확인됐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금속노조 경남본부는 이날 오후 한국지엠 창원공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지엠은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촉구했다. 한국지엠 창원비정규직지회는 창원공장에서 일하는 750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추가 소송인단을 꾸려 2차 소송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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