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첫 임원직선제를 앞두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4명의 위원장 후보를 인터뷰해 연속으로 싣는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독자 여러분의 판단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 4명의 위원장 후보들에게 같은 취지의 질문을 했음을 알린다.<편집자주>
 

▲ 정기훈 기자


2009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안은 말 그대로 전쟁터였다. 경찰헬기에서 최루액이 쏟아져 내리고, 노동자들은 ‘산 자’와 ‘죽은 자’로 나뉘어 처절하게 싸웠다. 끝내 살아남지 못한 해고자들은 올해로 여섯 번째 혹독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쌍용차 정리해고 투쟁의 총괄사령관 한상균(52·사진) 전 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이 민주노총 임원직선제에 출사표를 던졌다. 노동운동의 명망가나 특정 정파의 수장들만 민주노총 위원장에 도전하라는 법은 없다.

기호 2번 한상균 후보는 “싸워 본 사람은 투쟁 앞에 의연하다”며 “잦은 잽이 아닌 묵직한 훅을 날리는 무게 있는 민주노총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권과 자본의 노동유연화 공세에 맞서 즉각적인 총파업을 조직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민주노총을 투쟁사령부로 재편하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한 후보는 “누구나 통합과 혁신을 말하지만, 기울어진 초가삼간에 앉아 세로로 갈라먹고 가로로 찢어먹는 것은 통합도 혁신도 아니다”며 “땀 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열정을 통합하고, 낙담의 연못에서 물을 빼는 혁신을 이뤄 가겠다”고 말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3일 오후 서울 합정동 국민카페에서 한 후보를 만났다.


- 민주노총 창립 이래 처음으로 치러지는 임원직선제에 위원장 후보로 출마했다. 다른 후보와 차별화되는 본인의 강점은 무엇인가.

“관록이나 테크닉으로 민주노총이 처한 위기를 돌파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민주노총 위기의 본질은 정파 대립이 아니라 지도부와 현장의 괴리다. 쌍용차 출신 한상균, 서울지하철 출신 최종진, 전교조 출신 이영주(위원장·수석부위원장·사무총장 후보) 후보조는 이명박·박근혜 정부에 맞서 투쟁해 왔고, 그 힘을 바탕으로 이번 선거에 출마했다. 명망가가 아닌 내 옆에서 일하는 활동가들이 임원이 된다는 것, 그것이 민주노총 직선제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 선거운동 기간이 중반을 넘어섰다. 당초 예상했던 것만큼 선거열기가 느껴지지 않는데.

“조합원들이 지금의 민주노총에 거는 기대가 그 정도라는 뜻 아닐까. 선거운동을 할수록 민주노총과 현장을 제대로 연결시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낀다.”


“저녁까지 기다리다 죽을 판…‘아침이 행복한 노동’ 만들고파”


- 민주노총 조합원 67만명이 이번 선거에서 투표권을 행사한다. 그런데 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은 여전히 어렵고 딱딱하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2번 후보조의 공약을 설명한다면.

“지난 대선 당시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노동자들의 현실은 ‘저녁이 오기 전에 다 죽게 생겼다’는 것이다. 정부와 자본의 공격에 의해 노동기본권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파업이라도 하면 손배가압류 폭탄을 맞아 패가망신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매일 아침 눈뜨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그래서 나는 ‘아침이 행복한 노동’을 만들고 싶다.”


- 즉각적인 총파업 투쟁을 강조했다. 그런데 투쟁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는 없지 않나. 무엇을 위해 투쟁할 것인가.

“이번 선거에 출마한 모든 후보가 투쟁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 전재환 후보는 2016~2017년 총·대선에 맞선 준비된 투쟁을 얘기한다. 그러나 2015년 투쟁이 없다면 2016년과 2017년을 기약할 수 없다. 허영구 후보는 ‘선 혁신 후 투쟁’을 강조한다. 자칫하면 임기 3년을 집안싸움으로 허비할 수 있는 위험한 발상이다. 투쟁과 혁신은 따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싸움을 하나로 모아 낼 것이다. 그 힘으로 ‘노동자 살리기 총파업’에 나설 것이다. 그래야 강한 민주노총을 만들 수 있다.”


-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 결의로 중앙단위 노사정 대화에 불참하고 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발언력을 축소시키는 부작용을 동반하고 있는데.

“노사정위나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차원의 노사정소위 같은 사회적 대화기구들은 하나같이 자본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모두 노동의 양보를 전제로 대화하자고 한다. 따라서 지금의 민주노총은 사회적 대화기구에 참여할 힘도, 능력도, 이유도 없다. 투쟁을 해야 교섭력도 생긴다. 투쟁을 통해 확보된 힘으로 정부를 ‘노동자 테이블’에 앉혀야 한다.”


“노동자 들러리 세우는 사회적 대화는 하지 않겠다”


- 민주노총의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재정 안정화가 중요하다. 현재 민주노총은 건물 임대료 외에 일체의 정부 보조금을 받지 않고 있다. 반면 지역본부나 산별연맹은 정부나 지자체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사업을 하고 있다. 일관된 방침이 필요해 보이는데.

“민주노총이 정부로부터 정치적·재정적 독립을 유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재정부족에 허덕이는 지역본부나 산별연맹 일부가 정부 보조금을 받는 것도 현실이다. 재정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선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치적·재정적 독립의 원칙을 바로 세우면서, 자주성 강화를 위한 재정대책을 수립하겠다.”


- 조합원 직선제를 통해 당선된 위원장의 경우 과거 간선제 위원장보다 강력한 조직장악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 같다. 구상하고 있는 사무총국 쇄신방안이 있다면.

“사무총국의 관료화를 타파하고 현장성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를 위해 상임집행위원회 정무직화를 공약했다. 민주노총을 투쟁사령부로 재편할 생각이다. 관리 위주의 집행구조를 조직화와 투쟁 위주의 집행구조로 바꾸겠다.”


- 민주노총 내부에 10여개의 정파가 활동 중이다. 노동운동에 있어 정파는 득인가 실인가.

“정파는 노동운동의 중요한 동력이고, 흩어진 생각을 하나로 모아 수렴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정파가 없었다면 민주노총 건설도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정파 고유의 색깔이 흐려지고, 정파 자체가 선거기구로 전락해 버렸다. 공동의 적을 향해 힘을 모아 싸워야 할 판에 조직 내부의 투쟁동력을 갉아먹는 식은 곤란하다.”


- 민주노총의 조직 확대를 위해 비정규직 조직화는 중요한 과제다. 어떤 전략을 갖고 있나.

“비정규 노동자들이 노조가 필요 없다고 생각해 가입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노조 만들었다가 3년 넘게 홀로 싸워야 하는 현실에서 누가 선뜻 노조 결성에 나서겠나. 어렵게 노조를 만든 비정규 노동자들이 외롭게 싸우다 지쳐 쓰러지게 해서는 안 된다. 투쟁과 연결된 조직화가 중요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아름다운 연대’도 주목하고 있다. 씨앤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투쟁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민주노총이 보여 준 통상임금 대처 틀렸다”


- 올해 개별 사업장 임금·단체협상에서 통상임금과 임금체계 개편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임금체계 개악 반대’ 입장만 되풀이할 뿐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기간 대니얼 애커슨 GM 회장을 만난 뒤 통상임금 문제가 불거졌고, 그 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그때 민주노총이 임금 문제와 관련해 싸움을 조직하지 못한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민주노총은 현장의 통상임금 투쟁과 중앙의 법·제도 개선투쟁을 연결시키지도 못했다. 그러다 보니 현장은 소송으로 가고, 중앙은 국회 꽁무니만 쫓는 형국이 됐다. 정리해고가 만연하고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 육박한 상황에서 임금체계 개편은 정권과 자본이 추진하는 노동유연화의 마지막 퍼즐이다. 그런 만큼 무게를 실어 싸워야 한다. 소송 위주의 대응이 아니라 중앙 차원의 법·제도 개선투쟁을 힘 있게 전개해야 한다.”


- 내년이면 민주노총이 창립 20주년을 맞는다. 스무 살 민주노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민주노총은 인간사랑의 중심에서 가장 낮고 열악한 곳까지 끌어안는 너른 품을 보여 줘야 한다. 그동안 습관처럼 달고 다닌 무기력은 성장기의 성장통으로 끝내야 한다. 이제는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는 성깔 있는 민주노총, 끊임없는 실사구시로 새로움과 만나는 때깔 좋은 민주노총, 사람의 향기와 노동자의 품위가 느껴지는 맛깔나는 민주노총으로 나아가야 한다.”
 

기호 2번 한상균 위원장 후보는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장

77일간 쌍용차 정리해고 반대 옥쇄파업

정리해고 반대파업 이유로 3년간 구속수감

쌍용차 국정조사 실시·해고자 복직 촉구 171일간 송전탑 고공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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