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공공지출 축소는 곧 빈곤선 확대를 의미합니다. 사회적 불평등이 확대되는 것이죠. 이는 국가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가 소수에게만 집중될 경우 내수시장 축소는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경제의 악순환을 막기 위한 소득의 재분배 전략이 시급한 이유죠.”

이사벨 오르티스(Isabel Ortiz) 국제노동기구(ILO) 사회보장국장의 말이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와 국제노사정기구연합(AICESIS)·국제노동기구(ILO)가 20일 오전 ‘사회적 보호 최저선 이행 촉진을 위한 사회적 대화 기구의 역할’을 주제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콘퍼런스 참석차 방한한 오르티스 국장을 <매일노동뉴스>가 만났다.

- 공무원연금 개혁 문제가 한국 사회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공공지출을 줄이려는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이번 연금개혁에 대해 ‘공적연금 본연의 취지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많은 국가들이 재정안정을 이유로 급여 축소나 수급연령 상향, 기여율 인상 같은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적절한 급여보장을 통한 노후소득 보전이라는 연금제도의 취지가 퇴색한다. 그 결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연금개혁을 비롯한 긴축재정 정책을 폈던 유럽국가를 보라. 빈곤이 심화하고 있다. 유럽 인구의 24%가 빈곤상태에 빠져 있다.”

- 한국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대목은 연금개혁이 추진되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국의 논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선에서 의견을 밝히자면, 연금개혁에 앞서 사회적 대화는 매우 중요하다. 충분한 대화 없이 연금개혁에 나섰던 유럽 국가들이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겪었던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연금의 이해 당사자들과 충분한 논의 없이 밀실에서 만들어진 정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 또 애초에 잘못 설계된 제도는 다음 정부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 보수적 성격이 강한 박근혜 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에 성공했다. 다수의 복지공약이 후퇴하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결국 최근에는 담뱃값 인상 같은 간접세 인상으로 돌파구를 찾고 있는데.

“공공지출을 늘리려면 세수 확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소비세 같은 간접세를 늘리는 방식은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간접세는 기본적으로 소득역진적 성격이 강하다. 다시 말해 부유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이나 같은 수준의 지출을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ILO 역시 증세를 통한 공공지출의 확대를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소득세나 상속세·법인세를 확대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 세계적 추세와 달리 공공지출을 늘리는 국가는 없나.

“좋은 사례가 있다. 바로 중국이다. 최근 중국은 사회적 보호를 확대하기 위해 정부 차원에서 과감하게 나서고 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연금제도를 수년 안에 완성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여기에는 사회적 보호를 통해 내수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반영돼 있다. 대표적인 저임금 국가였던 중국이 최근 들어 임금수준을 높여 가는 것 역시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굉장히 훌륭한 교훈을 중국이 보여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 오늘 콘퍼런스에서 소득의 재분배 전략을 강조했는데. 구체적인 실현방안이 있다면.

“대다수 국가들이 재정적 여력이 없다는 이유로 공공지출을 줄이려 한다. 내 생각은 다르다. 일부 저소득 국가를 제외하면 대부분 국가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사회보장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예를 들어 과도한 국방비용의 일부를 줄여 사회보장 지출을 늘리는 방식을 검토할 수 있다. 직접세 비중을 늘리거나 탈세 등을 강력하게 규제하는 방안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이 같은 방식이 이해당사자 간에 심각한 갈등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회적 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