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

"복수노조 시대, 노조파괴의 바이블."

2013년 10월 삼성그룹의 이른바 ‘S그룹 노조대응전략’ 문건에는 삼성이 어떻게 무노조 경영이라는 범죄를 공공연히 유지해 왔는지 그 적나라한 속내가 드러난다. 문건을 보면 △사전에 노조설립 움직임을 확인하면 해당 불만세력을 회유 및 포섭하고 △노조설립을 막지 못하면 신속하게 복수노조를 설립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 신설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라고 지도한다. 교섭권과 쟁의권이 박탈된 식물노조상태에서 △세 확장을 막기 위해 노조설립을 추진했던 핵심 세력과 단순 세력을 분리 △내부 분열을 위해 노조활동을 문제 삼아 핵심 세력에 대한 징계 및 민형사상 손배소와 고소 △단순 세력에 대해서는 유인책과 경제적 불이익으로 위협하는 탈퇴 종용을 주문하고 있다.

실로 충격적인 것은 이러한 노조파괴 전략이 노조설립을 막고자 하는 기업들의 바이블이 됐다는 것이다. 인천의 자동차 휠 제조업체인 핸즈코퍼레이션에서도 노조설립 과정에서 동일한 상황이 반복됐다.

노조를 막기 위한 노조의 창궐

핸즈코퍼레이션은 자동차 휠 제조에서 국내점유율 48%를 차지하는 세계 5위의 휠 전문제조기업이다. 자동차 휠을 주조하는 공정은 용해로에서 틀을 찍어 내는 고열작업이 24시간 교대로 계속된다. 땀을 비 오듯 쏟아 내며 일해도 정수기나 소금 등 탈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시설도 충분치 않아, 매년 여름이면 수십 명이 일사병으로 쓰러지는 그야말로 고되고 험한 일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회사는 자율휴게시간제라는 핑계로 노동자들의 휴게시간을 빼앗아 계속 일을 하도록 했다. 노동자들은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이, 점심도 돌아가면서 겨우 밥만 먹고 와서 계속 일해야 하는 열악한 조건에 있다.

몇몇 노동자들은 최소한의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노조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올해 3월16일 야간근무조 동료들에게 노조 가입원서를 돌렸다. 야간근무가 끝나자마자 사장님이 모시고 오라고 했다며 회사 상무와 인사부장이 그의 집 앞에 들이닥쳤다. 면담 이유는 간단했다. 노조설립만은 안 된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라며 회유가 시작됐다. 이에 굴하지 않고 노동자들은 이튿날 금속노조에 가입해 지회를 설립하고 교섭을 요구했다. 그러자 회사는 조합원수를 기재하지 않았다는 꼬투리를 잡으면서 교섭요구사실공고를 미뤘고, 그 틈을 타서 노조설립을 막아 왔던 현장관리자들을 중심으로 제2 노조를 설립했다.

교섭권 막자 노조설립 주도한 집행부 줄줄이 징계

제2 노조의 현장순회는 자유로운 반면 핸즈코퍼레이션 공장에 처음 노조를 띄운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선전전은 늘 가로막혔다. 조합활동을 위해 연차휴가를 쓰면 시기변경권을 내세워 무단결근이라며 징계를 운운하기 시작했다. 조합원 확보에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핸즈코퍼레이션지회는 교섭권 확보에 실패했다. 지회가 휴게시간 보장을 요구하며 체불임금으로 고소를 하자 회사의 반응은 “회장님을 감히 고소했다”는 노여움 그 자체였고, 바로 집행부들에게 해고 및 정직 징계로 답했다. 조합활동을 위해 사용한 연차휴가는 무단결근이라고, 휴게시간에 업무지시 상황을 입증하기 위한 영상촬영은 영업기밀 보호지침 위반, 휴게시간의 무료노동에 대해 문제제기하면서 연장근로 전 저녁식사시간(휴게시간)을 보장해 주지 않아 연장근로에 대한 동의를 철회한 것을 두고는 업무지시 불이행이라고 했다.

특히 노조설립을 주도했던 이들에 대해서는 개인신상정보와 출신학교에 대한 표적조사가 진행됐다. 그중 학력이 부정확하게 기재된 것을 찾아내 부지회장을 학력 허위기재라는 이유로 해고했다. 회사는 집행부를 징계한 다음날 고소장 명단에 있는 조합원들을 개별면담하면서 금속노조에 계속 남아 있으면 인사상 불이익이 불가피하다고 협박했다. 고소 취하와 노조 탈퇴를 종용하기 시작했고, 선전홍보활동을 한 부지회장에게는 해고자 신분을 문제 삼아 건조물 침입으로 고소했다.

부당노동행위 제도의 실종

회사와 교섭대표노조는 단체협약을 체결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회사는 교섭대표노조에게만 타임오프와 노조사무실을 제공했다. 성과급 등 임금인상은 교섭이 아닌 노사협의회에서 합의했고, 금속노조 핵심간부만 불이익을 줄 요량으로 징계자·산재자에게는 지급을 제한하는 조건을 걸었다.

사업장에 있던 누가 보더라도 복수노조를 통해 교섭권을 박탈하고 노조를 무력화하는 시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정작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어떠한 규제도 취하지 않았다. 인천지방노동위원회는 연차휴가에 대한 시기변경권을 행사할 회사운영상의 불가피한 사정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어 복귀지시에 응하지 않고 연차휴가를 사용한 것은 징계사유로 삼을 수 없다고 밝혔고, 결국 징계양정이 과도해 부당징계에 해당된다고 판정했다.

그러나 사용자가 노조에 대한 노골적인 비방과 탈퇴 발언을 수차례 했어도 사규위반이 노조설립 이후에 집중된 탓인지 노조활동을 이유로 한 부당노동행위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했다. 노조에 적대적인 의사가 의심되지만 징계사유로 삼을 수 있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는 아니라는 논리다.

과연 어떤 노동자가 이런 논리를 납득할 수 있을까. 부당노동행위를 막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이 없다면, 복수노조 허용은 단결의 자유를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제 손을 더럽히지 않고 노조를 파괴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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