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직장인과 달리 방송 보조출연자들은 나이를 먹고 경력이 쌓일수록 직무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우울증이 심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넘어지고 구르고 떨어지는 사고가 많았지만 안전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한국노총 산업안전본부와 장성미 이화여대 교수(예방의학)는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6층 회의실에서 열린 ‘방송 보조출연 노동자의 건강보호방안 마련을 위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최근 보조출연자 321명을 실태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떨어지고 넘어지고 구르고 … 안전사고 빈번


조사 대상자 중 72.0%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 중 “자신이 다쳤거나 다른 사람이 다친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안전사고가 흔하게 일어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들의 절반 이상(62.6%)은 “안전 관련 조치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고 답했다. 사고가 일어나면 76.1%는 “치료비를 자신이 부담한다”고 답했다. 제작자 부담과 산업보험 처리는 각각 10.9%와 12.0%에 불과했다.

이들은 프로그램 제작 과정에서 넘어지거나 구르면서 나타나는 타박상·겹질림·골절 위험(28.2%)을 가장 많이 느낀다고 응답했다. 말에서 떨어짐 등 추락 위험(18.5%)과 화재 위험(14.1%)도 느끼고 있었다.

프로그램 제작 현장에서 성희롱도 일어나고 있었으나 교육이나 예방 대책은 미흡했다. 성희롱 경험 여부 질문에 29.0%가 “성희롱을 당한 적 있다”고 답했다. “당한 적 없다”는 27.1%인 데 반해 절반에 가까운 43.9%가 해당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는 것도 특색이다.

83.2%는 “성희롱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성희롱 교육을 받은 사람은 100명 중 6명(5.6%)에 그쳤다.


우울증, 일반인에 비해 8배 높아


보조출연자들의 우울증세는 심각했다. 역학연구센터의 한국형 우울척도(CES-D)를 측정한 결과 조사 대상자 중 25.6%가 우울증 발병 위험군, 16.7%가 치료가 필요한 우울증군에 속해 있었다.

장성미 교수는 “보조출연자의 우울증 유병률(16.7%)이 한국 성인 평균(2%)보다 8배나 높았다”며 “나이가 많고 소득이 높을수록 우울증상을 보인다는 것이 일반인과 큰 차이점”이라고 분석했다.

직무스트레스 역시 경력이 많을수록 심각한 증세를 보였다. 연구팀이 한국 직무스트레스 평가도구(KOSS)를 활용해 보조출연자를 조사했더니 보조출연자들의 직무스트레스는 53.4점으로 일반인 평균(48.4점)보다 높았다.

경력 1년 미만과 1~3년에서는 각각 15.4%와 38.9%였던 고위험 스트레스군이 경력이 많은 5~10년과 10년 이상 집단에서는 각각 42.9%와 56.1%로 치솟았다. 직무스트레스는 일반적으로 직장에 처음 적응하는 사회 초년생 때 높고 경력이 쌓인 선배그룹이 되면 낮아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와는 반대되는 흐름을 보인 것이다.

보조출연자들은 일반인보다 관계 갈등(보조출연자 47.4점·일반인 평균 33.4점)에서 가장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어 직무 불안정(보조 59.7점·일반 50.0점), 조직체계(보조 60.4점·일반 50.0점) 순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장 교수는 “관계 갈등과 직무 불안정, 조직체계에서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은 일하는 현장이 강압적이고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에 놓인 보조출연자들의 노동문제가 고스란히 건강과 안전문제에 반영돼 나타나는 것 아니겠냐”고 설명했다.

한편 방송사와 보조출연자를 고용·파견하는 기획사들은 올해부터 프로그램 제작현장 안전설비는 방송사가, 안전교육은 기획사가 책임지는 표준계약서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한 보조출연자 기획사 관계자는 “제작현장의 사고는 대부분 넘어지고 떨어지는 안전사고가 많지만 대형사고일 경우에는 안전설비 미비가 주요 원인”이라며 “모든 책임을 기획사가 졌던 예전보다는 나아졌지만 보조출연자들에 안전을 위해 방송사나 기획사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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