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케이블방송업체인 씨앤앰 비정규 노동자들이 12일 해고자 복직과 고용보장,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고공농성에 돌입했다. 사측이 대화를 거부하면서 장기화하고 있는 씨앤앰 사태의 돌파구를 찾기 위한 비정규 노동자들의 고육책으로 보인다.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지부(지부장 김영수) 소속 조합원 임정균(38)씨와 강성덕(35)씨가 이날 새벽 서울 중구 파이낸스빌딩 앞 20미터 높이의 옥외광고판에 올랐다. 이들은 "씨앤앰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노조 요구에 응답할 때까지 내려가지 않겠다"고 밝혔다.

지부는 임단협 체결과 회사 매각시 고용보장협약을 요구하며 올해 6월 파업을 벌였다. 사측은 직장폐쇄로 맞섰고 임금 20% 삭감안을 제시했다. 7월에는 원청인 씨앤앰이 협력업체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5개 협력업체 소속 조합원 109명이 고용승계를 거부당했다. 지부는 같은달 9일부터 이날까지 127일째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하지만 MBK파트너스가 올해 들어 "교섭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으면서 협력업체 노사 간 교섭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노조는 이날 오전 옥외광고판 아래에서 긴급결의대회를 열었다. 이종탁 노조 공동위원장은 "MBK파트너스가 씨앤앰 매각가를 높이려고 노조 파괴와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들이 대량 해고됐고 이대로 가면 더 많은 노동자들이 밀려나게 될 것"이라며 "김병주 MBK 사장이 직접 나와 조합원에 대한 선별해고를 철회하고 구조조정을 중단하겠다고 밝히지 않으면 고공농성자들과 함께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노조는 이날 "국내 금융권과 공적연금이 반사회적 투기자본에 투자해 먹튀와 노동자 탄압을 조장해서는 안 된다"며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함께 국민연금공단과 은행들에 대한 특별감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금융위원회에 제출했다.


[긴급인터뷰] "아빠가 좋은 회사 만들어서 돌아갈게"

옥외광고탑 오른 강성덕씨와 임정균씨


20미터 높이 옥외광고판 위는 전날 밤 내린 비에 젖어 미끄러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배처럼,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파이낸스빌딩 앞 옥외광고판에 오른 강성덕씨와 임정균씨가 수화기 너머로 전한 상황이다.

씨앤앰 협력업체 노동자인 성덕씨와 정균씨는 몸을 고정할 끈과 휘발유를 옆에 두고 옥외광고판 위에 섰다. 이들은 바람에 자꾸만 뒤집어지는 현수막을 바로 펴고 또 폈다. 이들은 12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절대 내려가지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성덕씨와 정균씨는 서울 용산과 경기도 일산 소재 협력업체에서 일했다. 지역도 업체도 달랐지만 노조활동을 통해 형·동생 사이가 됐다. 성덕씨는 올해 7월 업체가 폐업하면서 해고됐다. 그 후 지금껏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노숙농성을 했다. 노조가 주는 생활기금은 자녀를 키우는 조합원들을 위해 양보하고 실업급여로 버텼다. 그것도 지난달 끊겼다. 그는 "투쟁이 힘들고, 다른 업체로 갈 수도 있었지만 도망갈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8년차인 제 월급이 여전히 200만원이고, 휴일도 없다. 기본적인 노동법도 지키지 않는 게 케이블통신업계 전반의 현실이다. 어디를 가도 똑같다면 여기서 싸워서 고쳐 보고 싶다."

성덕씨는 "거대 투기자본이 회사를 쥐락펴락하고 국민연금이 거기에 투자해 우리가 낸 연금을 우리를 해고하는 데 썼다면 그들이 우리 문제를 책임져야 할 진짜 사장 아닌가요"라고 되물었다.

정균씨는 해고자는 아니지만 해고자들을 볼 때마다 미안함에 괴로웠다고 털어놓았다.

"다들 동지이기 전에 형·누나·동생인데…. 미치겠더라고요."

그는 "투쟁이 길어지고 어떻게든 이 문제를 알려야 하는데 힘없는 노동자 입장에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며 "누군가 (고공농성을) 해야 한다면 내가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용산에서 13년 동안 일하면서 업체가 4번이나 바뀌었다는 정균씨는 "우리가 고용불안 없이 안정적으로 일하고 휴일에 아이들과 마음 편히 놀이공원도 가고 싶다는 바람이 무리한 요구냐"고 반문했다.

옥외광고탑에 오르기 전날 정균씨는 어린 세 아이와 부인 얼굴을 보고 말할 용기가 안 나 편지만 써 놓고 왔다고 했다. 편지에는 "사실 많이 두렵다. 처음 해 보는 거라…. 하지만 해고자들도 내 가족 같아 하루하루가 너무 아프다. 내 선택을 이해해 줘. 애들이 아빠 왜 안 들어오냐고 하면 좋은 회사 만들기 위해 당분간 못 들어온다고 잘 말해 줘"라고 적었다.

정균씨는 "꼭 이겨서 부끄럽지 않은 아빠로 돌아가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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