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직업병이 잇따라 발병하고 있는 반도체산업에서 보건관리대책을 강화한다. 사업장 자체점검과 외부 모니터링을 병행해 보건관리 감시체제를 보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기업들을 강제할 방안이 없는 데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한 기업의 화학물질 정보 비공개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업장 보건관리추진단 구성, 정부 모니터링위원회 가동

노동부는 10일 이 같은 내용의 ‘반도체업체 보건관리 이행제고 방안’을 발표했다. 노동부는 2007년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발생을 계기로 집단역학조사(2008년)와 정밀작업환경평가연구(2009~2011년), 보건관리 개선계획 수립·이행 모니터링(2009~2012년)을 실시하면서 작업환경 개선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자주 바뀌는 반도체 생산설비와 취급 화학물질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이행제고 방안을 마련했다.

노동부는 주요 반도체업체 노·사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보건관리추진단을 연내에 구성해 보건관리 계획과 실행·평가·보완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개선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삼성전자(2개)·SK하이닉스반도체(2개)·엠코테크놀로지코리아(2개)·동부하이텍(2개)·매그나칩반도체(2개)·페어차일드코리아반도체(1개) 소속 11개 사업장이 대상이다.

노동부는 이와 함께 외부 모니터링을 이중으로 강화했다. 노동부 지방관서 위주의 모니터링 방식에 더해, 전문가그룹이 참여하는 모니터링위를 별도로 만들어 전문성을 보완하기로 했다. 모니터링위는 사업장 보건관리추진단 활동을 평가하고 보건관리방향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 6개월마다 회의를 열어 △업체별 개선추진 실적과 추진계획 △사업장 보건관리 추진단 운영실적 △지방관서 모니터링 결과를 검토해 종합의견을 제시한다.

각 사업장은 모니터링위의 의견을 반영해 보건관리를 보완하게 된다.

모니터링위에는 노동부·안전보건공단·대학교수 등 10여명이 참여한다.

반도체 사업장에서 다루는 화학물질 정보도 보강한다. 노동부는 각 사업장에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제출받아 유해성 정보가 적정하게 기재돼 있는지 검토할 예정이다.

기업이 영업비밀을 이유로 공개하지 않는 성분에 대해서는 내년 1분기에 점검·분석을 실시해 산업안전보건법과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규제대상에 포함되는지 판단하기로 했다. 같은 시기에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될 위험이 큰 협력업체 노동자를 대상으로 작업환경·보건관리 점검을 실시한다.

“MSDS 대책 실효성 떨어져”

노동부의 이번 대책은 자율관리에 의존했던 반도체 사업장 보건관리를 정부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반면 각 기업과 사업장이 보건관리추진단을 의무적으로 구성할 의무가 없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공유정옥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간사는 “기존 대책과 비교해 소폭 진전된 것은 맞지만 행정적인 권고에 불과하기 때문에 실제 어떻게 진행되고 어떤 성과를 낼지는 불투명해 보인다”고 우려했다.

노동부는 업계 관계자들을 모아 설명회를 개최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방침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행정지도 차원이라서 기업들이 법적의무를 갖는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 사업장 보건문제의 심각성 때문에 무작정 거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업비밀을 이유로 한 업체들의 물질안전보건자료 미공개에 대한 대책이 미흡하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보건실장은 "외국업체가 화학물질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책임주체가 불분명하고, 업체가 영업비밀이라고 주장하면 이를 확인할 길이 없다"며 "정부 대책에는 이를 보완할 법적·제도적 장치가 없다"고 비판했다.

반도체 사업장에서 피해를 당한 노동자들에 대한 대책과 뇌종양·백혈병 발병사례가 급증하고 있는 LCD 사업장 대책이 빠진 것도 아쉬운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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