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태우 기자

“이만수를 살려 내라! 가해자는 사죄하라!”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에 고성이 울려 퍼졌다. 상복과 붉은 조끼를 입고 나타난 노동자와 시민들의 등장에 아파트 주민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경책을 들고 교회에 가던, 혹은 자동차 트렁크에 골프백을 넣던 주민들이 일제히 발걸음을 멈췄다.

주민들은 지난 7일 사망한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고 이만수씨를 추모하기 위해 열린 결의대회를 한동안 지켜봤다. 민주노총과 서울일반노조가 주최한 이날 결의대회에는 조합원·시민 20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지난달 7일 이씨가 분신한 103동 앞에서 가해자 할머니의 사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103동은 인격모독·폭언으로 이씨의 분신을 초래한 할머니가 살고 있는 곳이다. 이씨는 병원에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이달 7일 끝내 숨졌다.

김선기 서울일반노조 대외협력국장은 “바로 이 자리가 이만수씨가 인권침해를 견디다 못해 분신한 곳이며, 바로 저 위에는 가해자인 할머니가 살고 있다”며 “그럼에도 할머니는 지금까지 사과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씨와 함께 일했던 신현대아파트분회 조합원과 참가자들은 이씨가 분신한 곳에 서서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일반노조 조합원인 김아무개씨는 “예순 살도 안 된 정정한 양반이 좀 참지 왜 그랬냐”며 “이씨가 다른 아파트에서 근무할 때는 칭찬을 그렇게 많이 받았는데 여기 와서 할머니 때문에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은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날 결의대회에는 신현대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다. 오상훈 민주노총 서울본부 사무차장은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지 44년이 지난 지금 부의 상징인 강남에서 노동자가 자신의 몸에 불을 댕긴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참담하다”며 “입주자대표회의는 (이씨의 사망에)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경비노동자를 관리하는 주체로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씨의 아내인 유아무개씨는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유씨는 “남편이 건강하게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는데 사고가 발생한 지 한 달 만에 사망해 원통하다”며 “입주자대표회의와 가해자인 할머니는 지금이라도 장례식장에 와서 사과를 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 분신사건 해결과 노동인권 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가해자·입주자대표회의의 사과와 재발 방지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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