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일 오후 민주노총 주최 전태일 열사 44주기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들이 박근혜 퇴진 구호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본대회 장소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앞으로 행진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을 위한 민주노총 전국노동자대회가 9일 오후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개최됐다. "내가 민주노총이다, 산 자여 일어나라"는 슬로건을 걸고 열린 이날 대회에는 전국에서 모인 민주노총 조합원 3만여명(주최측 집계)이 참가했다.

이날 대회는 노동시간 확대나 기간제 사용기간 연장을 골자로 한 노동관계법 개악을 잇따라 추진하고 있는 박근혜 정권에게 퇴진을 요구하기 위해 마련됐다. 아울러 내년이면 창립 20주년을 맞는 민주노총이 지난 19년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다음달 3일부터 1주일간 창립 이래 최초로 진행하는 임원직선제의 분위기를 고조하기 위한 자리로 준비됐다.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은 “44년 전 전태일 열사가 불꽃이 되고, 27년 전 노동자 대투쟁의 물결을 지나며 우리는 투쟁을 통해 인간임을 확인해 왔다”며 “전태일 열사의 결실이자 산 자들의 희망인 민주노총은 이제 임원직선제라는 과업을 완수함으로써 더 큰 하나가 될 것이고, 더 넓고 더 강하게 단결해 기필코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전태일 노동상 수상

이날 대회의 첫 순서는 전태일 노동상 시상식으로 꾸려졌다. 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가 올해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회는 삼성전자와 도급계약을 맺고 운영 중인 전국 50여개 서비스센터에 소속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구성돼 있다. 근로기준법 준수 같은 준법투쟁을 시작으로 열악한 노동조건을 고발하고, 무노조 경영의 대표주자인 삼성의 경영방침에 변화를 촉발한 점이 인정돼 심사위원 전원의 찬성으로 수상자에 뽑혔다. 지난해 지회가 만들어진 뒤 노동자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위영일 지회장은 “과분한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며 “간접고용 철폐투쟁을 벌이고 있는 전국의 모든 비정규 노동자들과 기쁨을 함께 나누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경비노동자들도 대회장을 찾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 소속 경비노동자들은 상복을 입은 채 무대에 올랐다. 이들은 최근 분신 사망한 고 이만수 신현대아파트 경비노동자의 영정을 품에 안은 상태로 “아파트 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경비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것도 모자라 입주민들로부터 온갖 비인간적인 모욕에 시달리며 고된 노동을 하고 있다”고 고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들은 이어 “오늘 아침 고인이 근무했던 서울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 앞에서 집회를 벌였다”며 “이제라도 입주자대표회의는 경비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는 책임 있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월호처럼 침몰하는 사회, 힘 모아 구하자”

민주노총은 이날 대회에서 정부와 자본을 상대로 "모든 노동자의 기본권 보장"과 "모든 국민의 생명과 안전·존엄 보장"이라는 두 가지 요구안을 제시했다.

민주노총은 노동기본권 문제와 관련해 △간접고용·특수고용·공공부문 등 모든 비정규직의 노동기본권 보장 △전교조·공무원노조 탄압 중단 △노조파괴 분쇄 △노동악법 폐기와 노동관계법 전면 재개정 △공공기관 가짜 정상화 즉각 폐기 △통상임금 정상화와 노동시간단축 △공적연금 개악 중단을 요구했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요구안으로는 △철도·의료 민영화 저지와 영리병원 도입 중단 △산재사망 처벌 강화와 원청사용자 책임 강화, 기업살인법 즉각 제정 △생명·안전업무 외주화와 비정규직 사용 금지 △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했다.

이와 관련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대회장을 찾아 눈길을 끌었다. 고 박성호군의 어머니 정혜숙씨는 “침몰해 가는 우리 사회를 세월호처럼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며 “세월호 선장과 같이 제 욕심 채우기에 급급한 재벌기업과 정부에 맞서 노동자와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세상을 일으켜 세우자”고 호소했다.

한편 이날 본대회에 앞서 민주노총 서울본부·금속노조·건설산업연맹·공무원노조·사무금융연맹·서비스연맹이 서울 각지에서 사전대회를 갖고 노동권 보장과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했다. 노동자들은 사전대회가 끝난 뒤 서울 청계천로 영풍문고 앞에서 본대회가 열린 대학로까지 2시간에 걸쳐 가두행진에 나섰다. 지난 8일 저녁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에서 열린 노동자대회 전야제에는 5천여명의 노동자가 참석해 "박근혜 정권 퇴진"과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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