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두공장에서 갑피 작업 중인 제화노동자들. (제화노조 제공)

“탠디에서만 16년을 일해 왔는데 노동자가 아니라니 말이 됩니까?”

6일 아침 7시 서울 관악구 소재 유명 구두업체인 탠디 본사 겸 공장 앞에서 김용월(56)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본사 앞에는 김씨를 비롯해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 20여명이 모였다. '제화노동자 근로자성 인정·퇴직금 지급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 위해서다. 김씨를 비롯한 구두제작자 19명은 서울일반노조 제화지부(지부장 정기만)와 함께 지난달 말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탠디·알프제화 등 4개 업체를 상대로 총 3억여원의 퇴직금 지급 소송을 제기했다. 평균연령 50세인 이들은 한 사업장에서 3년에서 최대 26년까지 일했지만 도급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라는 이유로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 

◇4대보험 없애고 작업대 대여비용 공제해=김용월씨는 ‘갑피’ 기술자다. 가죽을 자르고 미싱으로 박음질해 신발 윗부분을 제작하는 ‘갑피’ 작업은 신발 밑창을 만드는 ‘저부’작업과 더불어 구두 제작의 핵심공정이다. 김용월씨는 중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구두공장에 들어가 구두 제작기술을 배웠고 1998년 탠디에 입사했다. 16년간 매일 아침 탠디 본사 내 작업장에서 공장장과 현장팀장으로부터 그날 생산모델과 생산량이 담긴 작업지시서를 받아 구두를 만들었다. 성수기 기준으로 대개 오전 6~7시부터 밤 10~11시까지 일했는데 출퇴근시간 또한 작업량에 따라 관리됐다. 6년간 탠디에서 일했던 홍노영(52)씨는 “사장도 매일 두 번씩 작업장을 돌면서 출근이 좀 늦거나 작업속도가 느리면 욕하고 자르라고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용월씨는 “구두기술이 도제식 시스템으로 전수되다 보니 제화산업 현장에서는 노동법이 안 지켜져 20년 전에는 수습이라며 월급 3천원을 받기도 했다”며 “그래도 정식으로 취직한 뒤에는 별도 근로계약서를 쓰진 않았어도 정규직 대우를 받았다”고 했다. 생산단가에 따라 건당수수료조로 임금을 받았지만 4대보험에도 가입됐고 작업복과 오후 간식도 제공받았다.

그런데 2000년께 사측은 기술자들을 개인사업자로 등록하게 하고 도급계약을 체결했다. 김용월씨는“직원들에게 주민등록 등본을 제출하라고 한 뒤 동의 없이 임의로 변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뒤로 사측은 작업복 제공도 중단했고 심지어 작업대 대여비용이라며 매달 급여에서 100원씩을 공제했다. 올해부터는 명절 상여금도 없앴다. 노영씨는 “우리는 도급계약 전후로 똑같은 형태로 일하고 있는데, 사측이 근로자성을 지우기 위한 꼼수를 부린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한편 구두 제작단가는 올리지 않고 물량은 줄이기 시작했다. 김용월씨는“제작시간이 오래 걸려 많이 못 만드는 운동화류를 만들게 하면서 단가는 안 올리니 실제 수익이 줄어들었다"며 "특히 오래 일한 직원들이 있는 공장 물량을 점점 줄여 나중에는 하루에 40켤레도 못 만들고 급여가 반토막 났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가 참다못해 지난 5월 퇴직을 결정한 이유였다.

하루 평균 15시간을 작업대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구두를 만들다 보면 목과 어깨·허리가 심하게 아팠다. 밀폐된 공간에서 먼지와 구두접착제를 들이마시는 통에 머리도 아팠다. 그러나 병가조차 없어 다들 그냥 견뎠다. 정 아프면 퇴직해야 했다. 16년차 직원인 김용진(56)씨가 그랬다. 김용진씨는 재작년(2012년) 간암 수술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퇴직을 결정했다. 김용진씨는“나 외에도 매년 한 명씩은 간암으로 죽는 동료가 생겼다”며 “이 정도면 작업현장을 검사하거나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노동자성 인정해 법제도적 보호해야=그러나 사측은 이들이 개인사업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로 인해 퇴직금뿐 아니라 실업급여 또한 못 받은 이들은 생계를 위해 각자 다른 구두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김용월씨는 “우리가 원하는 건 단순히 퇴직금이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우리 또한 노동자임을 인정받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화지부에 따르면 서울지역 제화노동자는 3천여명에 달한다. 정기만 제화지부장은 “제화노동자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면서 4대보험이나 퇴직금 미보장은 물론, 회사가 부도나 임금을 못받아도 체당금을 신청하지 못하고 심한 경우에는 도망간 사장 대신 채무변제책임자로 몰리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제화노동자의 노동자성을 인정해 이들의 처우와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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