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오표 공인노무사(발전노조 법규부장)

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2가합105340 판결


1. 사건의 경위


한국발전산업노동조합(발전노조)은 2001년 7월 정부의 전력산업 민영화 정책의 일환으로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에서 분할된 발전부문의 노동자들이 설립한 산업별노조다. 발전노조는 쟁의권을 사전에 봉쇄하는 직권중재제도가 존재했던 2002년과 2006년, 필수유지업무 제도가 도입된 2009년에 각각 파업을 했다. 2001년 노조 설립 이후 유니언숍을 유지해 왔다. 2009년 정부(국무총리실 박영준 국무차장·청와대 이영호 고용노사비서관)는 노사관계 회의에서 강성 노조에 대한 적극 대응을 주문하고, 공공부문 선진화를 내세워 노조에 대한 탄압을 지시했다. 발전회사들(특히 당시 5개 발전회사를 대표하는 주관사인 한국동서발전 주식회사)은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2010년 초부터 2011년 도입되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설립 허용을 앞두고 강성인 발전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단계별 계획을 수립해 이를 청와대에 보고하고 시행하기 시작했다.

먼저 발전회사들은 2009년 11월 직권중재로 체결된 단체협약마저 일방적으로 해지했고, 2010년 2월 실시된 발전노조의 임원선거에 개입해 회사가 반대하는 특정 후보의 득표 수준에 따라 발전회사와 사장을 평가했다. 동서발전은 다음으로 기업별노조 추진위원회를 앞세워 ‘민주노총 탈퇴 및 기업별노조 전환을 위한 투표총회’(이를 Plan A라고 함)를 시도했으나 부결됐다. 이 계획은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와 같이 발전노조 조합원의 성향을 배(겉과 속이 모두 하얗기 때문에 회사쪽 성향의 조합원을 의미함), 사과(겉은 빨갛지만 속이 하얗기 때문에 회사의 회유와 관리를 통해 회사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성향의 조합원을 의미함), 토마토(겉과 속이 모두 빨갛기 때문에 노조쪽 성향의 조합원을 의미함) 등의 과일로 분류해 회유·관리한다는 것이다. 동서발전은 Plan A가 실패하자 사장(이길구)이 직접적으로 나서서 기업별 노조설립 계획(이를 Plan B라고 함)을 세워 발전노조를 탈퇴하게 하는 작업을 시행했고, 관리자들과 기업별노조 추진위원회가 앞장서서 사업소 이동과 보직·인사고과·승진 등의 노동조건, 인사상의 불이익을 악용한 회유와 압박 등을 동원해 개별 조합원들에게 심각한 인권침해를 자행했다. 이로 인해 발전노조 동서본부의 조합원은 1천370명에서 246명으로 감소하게 됐고, 발전노조는 동서발전과 대표이사·노무관리자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를 하게 된 것이다.

2. 판결의 의미


이 판결의 의미는 두 가지 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첫째 피고 회사가 2011년 2월7일 노사합의서가 부제소합의(소송을 제기하지 않기로 약정하는 것)라고 주장했으나, 이 판결에서는 이 노사합의서는 이미 제기해 진행 중이던 일체의 소를 취하하기로 하는 내용일 뿐 장차 그와 관련된 일체의 소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 부당노동행위의 수규자인 사용자에게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규정과 같이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 또는 그 사업의 근로자에 관한 사항에 대해 사업주를 위해 행동하는 자’를 말하고, 방조라 함은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접·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이므로 부당노동행위에 있어서 불법행위의 방조자는 공동행위자로 봐 공동불법행위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동서발전과 대표이사의 행위는 노조의 조직 또는 운영에 개입하는 행위로서 헌법상 보장되는 근로자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행위이자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1조제4호에서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이므로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노무관리자들의 행위는 불법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방조행위로서 공동불법행위를 구성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 판결은 부당노동행위라는 불법행위의 책임이 단지 회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담당자와 사업주를 위해 행위하는 자에게까지 미친다고 판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것이다.

3. 결론을 대신하여


이 판결은 손해배상책임의 범위와 관련해 한국동서발전의 불법행위로 인한 발전노조의 재산상 손해에 대해 회사의 회유·설득·종용으로 인해 탈퇴한 조합원들이 탈퇴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급했을 조합비 상당액으로 보면서도 발전노조의 조합원 감소가 한국동서발전과 노무관리자의 불법행위로 인해서만 생긴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재산상의 손해가 없다고 판단한 부분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한국동서발전이 작성한 문건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재산상의 손해를 인정하지 않은 부분은 부당노동행위의 성격상 탈퇴한 조합원이 직접 진술을 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특별한 방법이 존재하지 않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너무나도 형식적인 판단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회사의 부당노동행위로 인한 발전노조의 조직적 피해나 당시 조합원들이 겪었을 인권침해를 금전으로 회복할 수 없겠지만 과연 이 금액이 합당한 손해배상액인지 여전히 의문이다. 그와 별개로 한국동서발전과 노무관리자들에게 아무런 형사적 처벌이 없었다는 사실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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