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봉석 기자

“민주노조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2003년부터 6년간 전북 부안군 위도라는 섬에서 홀로 근무를 했습니다. 6년을 어떻게 견뎠는지, 서러움이 복받칩니다. ‘다시는 노조활동을 안 하겠다’고 서약하고 나서야 2009년 서울로 발령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4월 시행된 명예퇴직을 거부했더니 저를 CFT(Cross Function Team)로 발령을 내더군요. IT엔지니어로 일하다 지금은 (CFT에서) 아파트를 다니며 상품광고 전단지를 돌리고 있습니다. 내 인생을 바친 회사. 하루라도 인간답게 회사를 다니고 싶다는 바람은 정말 꿈일 뿐일까요.”

KT CFT에서 일하는 박진태(57)씨는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KT 직장내 따돌림 증언 및 실태조사 보고 토론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씨는 KT에서 37년8개월을 일했다. 내년이면 정년이다. 그런 그의 유일한 바람은 KT가 사람과 일꾼을 존중하는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동료들은 물론이고 앞으로 KT를 다닐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

우울·불안에 시달리는 CFT 직원들

박씨와 같이 CFT에 발령받은 KT 직원들이 업무 배제·집단 따돌림 같은 직장내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FT는 올해 4월 KT가 명예퇴직을 진행한 후 이를 거부한 직원들을 배치한 신설조직이다. KT는 “현장지원 강화”를 설립이유로 내세웠지만 CFT 소속 직원들은 “탈법적 퇴출 프로그램”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과 인권운동사랑방·한국비정규노동센터·KT새노조 등 8개 단체 구성된 ‘KT 직장내 괴롭힘 조사연구팀’은 이날 토론회에서 공동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CFT 소속 직원 221명을 대상으로 8월11일부터 같은달 22일까지 진행됐다.

조사에 응한 CFT 직원 221명 중 85.5%인 189명이 4월 명예퇴직을 권고받았다. 이를 거부하자 인사상 불이익을 경고받고(126명·복수응답) 기존업무에서 배제(123명)됐다. 심지어 계속적인 면담(77명)에다 모욕적인 언행(23명)에 시달렸다. 구성원들로부터 집단 따돌림(28명)을 당하기도 했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는 “회사측은 대부분 강압적이거나 불이익을 경고하는 수준에서 직원들에게 명예퇴직을 압박했다”며 “요구에 불응하면 비난과 따돌림 같은 비인격적 조치가 취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CFT 직원들을 대상으로 간이정신진단검사를 시행한 결과 대부분 우울·불안·적대감·강박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고 우려했다.

회사 내보내려는 '계획된 괴롭힘'

조사연구팀은 “핵심 문제는 직장내 괴롭힘이 기업의 퇴출프로그램에 의해 계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토론회에 증언자로 참석한 이남현 사무금융노조 대신증권지부장은 “직장내 괴롭힘은 직원을 의도적으로 괴롭혀서 회사를 그만두게 하려는 폭압적인 경영정책의 일환”이라며 “대신증권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 지부장에 따르면 대신증권은 2012년 노조 깨기 전문업체로 알려진 창조컨설팅과 계약을 맺고 전략적 성과관리체계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프로그램에 따라 명예퇴직에 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ODS(방문판매부)로 발령내고 영업업무를 시켰다.

이 지부장은 “회사측이 작성한 계획서를 보면, 외부에는 저성과자 교육프로그램으로 알리고 내부적으로는 어려운 과제를 부여해 잔류 의사를 없앤다는 목표를 세웠다”며 “괴롭히고 따돌리고 어려운 일을 시켜 사람을 극한 상황에 내모는 한편 3개월치 임금을 줄 테니 이제 그만 나가라는 식으로 회유하면 버티는 직원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사회학)는 “직장내 괴롭힘은 의도적 또는 의도 없이 적대적·위협적·모욕적·공격적인 행위를 통해 공포와 불안·감정적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것을 뜻한다”며 “노동자에게 분노·수치심·슬픔과 같은 부정적 정서를 경험하게 하기 때문에 이를 규제하는 나라에서는 개인의 존엄성을 해치는 행위로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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