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성희 기자

지난달 29일 저녁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양주톨게이트 인근, 빠르게 달려가는 자동차들 너머로 유니폼을 입은 여성 30여명이 모였다. 양주톨게이트를 비롯해 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 요금을 징수하는 수납원들이다. 이들은 지난달 27일부터 원청인 ㈜서울고속도로 본사가 있는 경기도 양주시 양주톨게이트사업소 앞에서 임금·단체협약 체결과 원청의 책임 있는 행동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수납원 박선희(48)씨는 "더는 억지로 웃을 수 없어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고객이 내민 돈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잡았다가 "더러운 X이 왜 내 손을 만지고 XX이야"라는 욕설을 들은 적도 있다. 온몸이 떨렸지만 참고 웃으며 다음 차량을 맞이해야 했다. 고객을 가장한 본사 CS평가 담당자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다.

"CS평가 점수가 낮거나 고객이 기분 나쁘다고 민원이라도 넣으면 쫓겨나요. 참을 수밖에 없죠."

스트레스는 원형탈모를 불렀다. 한숨을 쉬며 모자를 벗는 박씨의 뒷머리가 휑하다. 붉은색 립스틱을 발라 화사한 얼굴이 감춘 속병이다. '붉은색 립스틱'도 알고 보면 고객 응대의 기본이라며 서울고속도로가 정한 CS평가 항목이다. 웃고 있지만 아픈, 노동자들은 그렇게 겉과 속이 다르다.

"8년째 일해도 임금은 제자리"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은 서울고속도로가 운영하는 민자고속도로다. 서울고속도로는 양주·불암산·고양 등 6개 톨게이트 영업소를 소유하고 있다. 2년 단위로 계약하는 위탁업체에 톨게이트 운영·관리를 맡긴다. 위탁업체 소속인 110여명의 수납원들은 24시간 3교대로 일한다. 1년마다 근로계약서를 쓴다. 모두 40대 여성들이다. 주말과 야간까지 주 6일을 일하고도 통장에 찍히는 돈은 월 180만원에 불과하다. 일급제로 주는 급여는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만큼만 올랐다. 올해는 하청업체가 바뀌면서 최저임금 인상률도 지켜지지 않았다.

수납원들은 올해 5월부터 민주연합노조 서울고속도로톨게이트지부(지부장 김옥주)를 결성하고 위탁업체인 ㈜한덕엔지니어링과 교섭을 진행했다. 쟁점은 임금이다. 김옥주 지부장은 “8년째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데 업체가 바뀌면 호봉을 인정받지 못하고 연차도 사라진다”며 “임금이 1년차 직원과 똑같다”고 전했다.

그런데 사측은 10월부터 교섭을 거부하고 있다. 회사는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노조의 교섭단위 분리신청을 기각했다는 이유를 들었다. 한덕이 관리하는 광주·남양주톨게이트에 별도의 톨게이트노조들이 설립돼 있으니 교섭창구를 하나로 만들어 오면 교섭을 하겠다고 뻗댄 것이다. 특히 6월에 교섭을 시작하면서 중단하기로 했던 CS평가와 인사이동을 11월부터 재개하겠다고 밝혀 노동자들에게 충격을 줬다. 2008년부터 진행된 CS평가는 그야말로 저승사자다.

2명 중 1명은 골병 … 수납원 잡는 CS평가

20가지 항목으로 구성된 CS평가는 수납원들에게 공포 자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수납원은 작업대 위에 두 손을 모아 올린 채로 허리를 90도 돌려서 왼쪽 차창 밖 고객에게 눈을 맞추며 목례를 한 뒤 활짝 웃으며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해야 한다."

"두 손으로 공손히 돈을 받고 친절하게 영수증을 건네준다."

"화사해 보이는 메이크업과 단정한 머리 모양을 해야 한다."

양주톨게이트는 하루 평균 2천여대의 차가 오간다. 매뉴얼대로 움직이니 몸이 성할 리 없다.

한은미(42)씨는 "의사가 보통 척추측만증은 오른쪽으로 휘는데, 무슨 일을 하길래 왼쪽으로 굽었느냐고 묻더라"며 "온종일 좁은 요금소에 앉아 큰소리를 내야 하고 무리한 자세를 강요당하는 탓에 2명 중 1명은 성대결절이나 근골격계질환을 앓고 있다" 고 전했다.

원청인 서울고속도로 CS담당자는 고객을 가장해 불시에 찾아와 차량 1대당 응대시간인 7초 안에 CS항목 20개를 평가한다. 수납원들이 속한 위탁업체 CS담당자도 월 2차례씩 불시에 테스트를 한다. 평가점수가 낮으면 인사발령 대상이 돼 거리가 먼 영업소로 배치되거나 파트타임 직원으로 전환된다. 김옥주 지부장은 "덕소에 사는 수납원을 고양톨게이트로 보내 버려 결국 그만두게 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감정노동 또한 심각하다. 돈을 내던지거나 바닥에 흘린 뒤 주우라고 하고, 도로요금이 비싸다고 욕을 하기도 한다. 응대시간이 늦다고 "야, 앞차 운전하는 놈이랑 사귀냐? 니가 제일 느려"라고 막말을 하는 고객도 부지기수다. 수납원의 손을 주무르며 "일 끝나고 만나자"고 하거나 "왜 웃느냐, 어젯밤에 뭐 좋은 거 했느냐"며 지분거리는 사람도 있다. 일부러 하의를 벗고 몸을 보여 주는 '바바리맨'도 있다. 그래도 수납원들은 웃어야 한다.

성희롱에, 징수금 모자라면 물어내야

위탁업체의 횡포도 만만찮다. 회사는 수납원들에게 착오로 발생한 부족금을 물어내게 한다. 이를 ‘현취’라고 하는데, 매달 7만원을 급여에서 공제한다. 한은미씨는 “신입직원의 경우 하이패스 카드를 충전하다 1만원을 10만원으로 잘못 입력하는 실수가 잦아 피해가 더 크다”고 귀띔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성 관리자들이 성희롱을 하기도 한다. 지부 관계자는 "팀장들이 회식자리에서 여직원들이 앉을 자리까지 지정하면서 노래나 술시중을 강제하고, 심지어 노래방에서 테이블 위에 누우라고 명령하는 일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결혼한 뒤 첫 직장이라는 한은미씨는 “그저 안 잘리려고 참고 살았지만 정말 더 이상은 못 참겠어서 노조를 만들었다”며 “사측이 노조를 인정해 임단협을 체결하고, 나아가 원청이 우리를 직접 고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옥주 지부장은 “우리를 부리는 위탁업체뿐만 아니라 원청과 대주주인 국민연금공단까지 책임질 곳이 3곳이나 되는데 아무도 우리와 대화하지 않으려는 것은 너무하다”며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이번에 바로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외곽순환고속도로 86% 소유한 국민연금 관리·감독 '엉망'
"정부가 인수해 통행료 낮추고 고용안정 보장하라"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의 최대 주주는 국민연금공단이다. 86%의 지분을 갖고 있다. 간접고용 폐해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공단은 2008년 ㈜서울고속도로에 3천억원을 대출해 주고 20~48%의 이자를 받고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최근 국민연금에서 받은 서울고속도로 주식회사 운영상황에 따르면 서울외곽고속도로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천219억원이었는데, 국민연금에 1천317억원의 이자를 지급했다. 매년 통행료 수입과 정부로부터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지원을 받고도 과도한 이자로 인해 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부구간은 적자를 이유로 요금이 계속 올랐다. 양주톨게이트가 있는 송추IC~통일로IC 8.9킬로미터 구간의 통행요금(승용차)은 3천원이다. 1킬로미터당 337원이다. 같은 민자고속도로인 평택~시흥 도로가 1킬로미터당 72.8원인 것을 감안하면 4배를 훌쩍 넘는다. 감시가 없는 탓에 도덕적 해이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에는 임직원들이 1년 동안 법인카드로 2억원을 쓴 일이 발각되기도 했다.

서울고속도로는 비싼 요금을 받으면서도 인건비를 줄이려 간접고용 비정규직으로 채우고 있다. 게다가 차량 통행이 많은 시간에는 파트타임 직원을 쓴다. 파트타임 노동자들은 낮에만 근무하는데,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나면 야간근무 역시 똑같이 시킨다. 간접고용 비정규직에 비해 월급은 50만~60만원이 적다. 3개월차 파트타임 수납원인 한상희(41)씨는 “회사가 정규직 전환을 전제로 고용하고도 결원이 생기기 전에는 전환을 안 해 준다”며 “수습 3개월이 끝나 이젠 야간근무까지 시킨다는데 언제쯤 정직원이 될지 기약이 없다”고 호소했다. 그의 월급은 120만원이었다.

민주연합노조 관계자는 "구조상 지속적인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 결국 주민들은 최고 수준의 통행료를, 비정규직은 최저 수준의 임금과 고용불안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공부문의 출자지분이 50% 이상인 법인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는 만큼 정부가 고속도로 운영권을 인수해 통행료를 낮추고 비정규직의 고용을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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